웃으며 운전하자구요.

by 엄민정 새벽소리

7시 45분.

아침 이 시간에 이 꽉 막힌 도로에 있었고, 저녁 이 시간에도 이 도로에 갇혀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2시간 후 내일 아침 이 시간에도 나는 이 자리에 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미미하게 전진하는 상태로 한 시간가량을 앉아 있으니 기어를 중립으로 옮겨 발끝의 피로를 덜어보지만 속 모르는 바퀴는 경사길을 따라 굴러간다.

발끝까지 내려간 혈액은 힘 있게 유턴하여 올라오지 못하고 종아리 즈음에서 서서히 감속한다. 겨우 가속도를 내 대퇴까지 올라온 혈액 일부도 앉은 자세로 굽어진 고관절에 자유롭게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다. 손목의 워치는 일어나서 움직이라는 알람을 보내지만 신경질적인 손가락이 화면을 두드려 입을 막아버린다.

지독한 교통 체증은 길 위에만 있지 않다. 몸이라는 우주 안에서도 정체는 내 말초 혈관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동력을 잃어버린 듯한 도로는 혈관 속에서도 상습 정체, 하지 정맥류를 만든다. 갓길로 먼저 빠져나가려는 얌체 운전자의 행렬에 공중의 드론은 구불구불한 혈관 같은 도로의 화면을 방출한다. 흐름을 잃어버린 곳에 질서는 희미해지고, 심장만이 의미 없이 재촉하듯 뛰고 있다. 차 앞유리에 붙은 안면 센서가 시선이 정면을 벗어나면 여지없이 알람으로 응징한다.


이미 눈의 초점은 흐리고 승모근은 뻣뻣하게 굳었다. 신나는 유행가도 몇 곡 지나갔고 모르는 이의 모르는 노래만 나오는 스피커에 관심은 진작 떠났다.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순간에도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 입장은 있기 마련이다. 호기롭게 머리부터 들이대는 차량을 모른 척 잔걸음으로 가깝게 붙는 뒤차들의 눈치 싸움이 가관이다. 검은 유리너머의 표정들은 1분 1초도 양보할 마음 없이 결연하다. 이런 상황은 마치 죄수들이 새로 들어온 죄수의 인면수심을 비난하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 이 상황, 어느 누구도 끼어들기를 해본 적이 없는 행동을 연기한다. 상대의 끼어들기를 비난하는 한숨을 연신 내쉬고 있다. 옆차 후방에 붙은 애교 섞인 스티커가 운전자가 전하지 못하는 양해를 대신 구하고 있다. 뒤차의 따라붙는 타이밍보다 옆차의 머리 넣기가 소수점 세 자리만큼 빨랐다.


Weixin Image_20241122172723.jpg 형아, 나 좀 껴주라.


쌩쌩 달릴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정체 속에서 보인다. 전투태세로 무장한 것처럼 보이는 운전자들도 실제로는 작은 것에 웃고, 다른 이를 웃기고 싶어 하는 좋은 사람들이다. 맥이 빠진 동공이 앞차들의 스티커에 서서히 초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미안한 표정이 상상되는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있고, 다른 이는 길 위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재치 있는 한 마디를 뽐내고 있다. 같은 말도 표현 방식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듯, 예쁘게 말하는 이에게 양보와 배려를 해주고 싶은 것은 어디서나 매한가지다.


Weixin Image_20241122172451.jpg 헉헉, 너희들 정말 다들 빠르구나!


Weixin Image_20241122172554.jpg 자신 있으면 추월해 봐


Weixin Image_20241122172547.jpg 퇴근 중입니다~ (출근은 천천히, 퇴근은 쏜살같이)


Weixin Image_20241122172503.jpg 제 차가 좀 어려서 철이 없어요.


Weixin Image_20241122172630.jpg 친구여, 더 다가오면 우리 뽀뽀할판이야.


Weixin Image_20241122172644.jpg 짱구 왈, "내 바지가 벗겨진 게 보인다면 당신이 너무 가까이 왔다는 뜻이에요."


Weixin Image_20241122172625.jpg 제가 성격이 좀 좋아요 (살벌한 권투 장갑)


Weixin Image_20241122172607.jpg 뭔데? 내 꽁무니만 따라다녀?


Weixin Image_20241122201003.jpg 장 보는 용, 마약운반용, 노가다용, 업무용, 가정용, 애 보는 용, 등교용, 출근용, 장난감용, 차주인은 싱글, 노인 탔음, 아내픽업용,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


용도를 나타내는 TMI가 어쩐지 내 눈에는 다정하고 귀엽다. 한대뿐인 차의 용도를 굳이 알려주는 그 귀여움에 미소가 난다. 그중 ‘아내픽업용’의 표지는 마주칠 때마다 운전자의 스위트함이 느껴진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짐작할 수 있는 '그'라는 사람의 정체에 대해 가만히 연구해 본다. (어차피 꼼짝없이 도로에 갇힌 처지에 무엇이든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1. 운전자(차주)는 남자일 것이다. 아내라는 호칭을 동성에게 붙이기엔 아직 이 사회에서 일어난 적이 없다.

2. 운전자는 기혼이다. 미혼이라면 붙였을 이유가 없음. 아니면 혹시 지금 결혼하러 가는 중?

중국의 결혼 풍습을 볼 때, 신랑은 먼저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픽업하고 식장으로 향하지 않던가. 그는 신부 픽업 중일지도 모른다.

3. 운전자의 아내는 지금 밖에 있다. 출근을 했을 수도 있고, 밖에서 친구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을 내서 아내를 데리러 가는 남편의 마음이 따뜻하다.

4. 예로부터 상하이는 음기가 세 여성의 기가 세다고 여기곤 했다. 여성을 대하는 남성의 희생적 태도가 그 안에 녹아있다. 콧대 높은 상하이 여인이 그냥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5. 바깥 여인이 탑승해도 아내로 보일 수 있는 착시 효과를 낼 수 있다.


진퇴양난의 도로 위에서 차에 붙은 깨알 유머가 건조한 출퇴근 길에 촉촉한 이슬이 되었다. 같이 웃자고 붙였을 스티커가 퍽퍽한 살코기 수육에 곁들이는 김치 한 점 같다. 때론 칼칼하고, 때론 목에 걸린 가시를 쓸고 내려갈 만큼 개운하다. 뼈 때리는 비유 속에 운전자는 은연중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우두커니 앉아 조금씩 앞으로 가는 일밖에 할 일이 없는 나는 스티커를 보고 운전자의 얼굴을 본다. 교통 체증을 마음의 체증으로 느끼지 않게 하는 그들의 유쾌함에 오늘도 이 길에서 한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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