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예지 작가님의 북토크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은 언제나 반갑다. 중국 무비자 입국이 발표되면서 애초에 15일이라고 공표한 체류 기간은 30일로 최근 수정되었다. 비자 없이 중국에 올 수 있는 것은 이곳의 내게도, 한국에서 오는 분들에게도 여러모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한국 도서관에 최근 들어 한국에서 오시는 작가님들의 북토크가 꽤 잦아졌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자리는 결국은 갔을 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코너에서 본 적 있던 익숙한 작가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에 신청서를 기입하는 손이 부산했다.
건물 아래층에 도착하여 도서관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여성 두 분과 탑승했는데, 두 분의 자연스럽던 대화가 나로 인해 잠시 정적으로 변해 이유 없이 죄송했다. 이어진 두 분의 귓속말에 왜일까 궁금해하기도 했다. 같은 층에 내린 우린 우연처럼 같은 장소, 같은 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도서관장님의 환영 인사가 내 뒤의 그분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제야 제대로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마주한 자리 옆에 '설렘'에게도 한 자리 내어주었다.
한분 한분 돌아가며 자신의 소울 푸드에 대해 , 엄마 음식에 대해, 음식에 얽힌 기억에 대해 나누는 시간.
작가님의 책을 발췌독하는 중간중간 나는 울음을 뱉지는 않았지만 속에서 뭔가 울음 비슷한 것이 자꾸 벌컥하며 끓어오름을 이따금 느꼈다. 결혼을 하고 엄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주 눈을 붉히게 된 건 내가 엄마의 마음을 예전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일까. 함께 참석한 분들의 에피소드를 들으면서도 내 뱃속에 차오르는 무언가의 느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조금은 뜬금없는 상황에서 눈물이 쏟아져 부끄러웠던 적이 많은 나는 이번에는 좀 담담하게 듣고 말할 수 있도록 마음의 시선을 좀 더 먼 곳, 좀 더 막연한 곳에 놓았다.
내 순서가 왔을 때, 나는 진실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엄마의 노동과 희생을 건조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엄마의 조미료 애착과 그것에 대한 나의 반감에 대해 말하며 눈에 물이 차오르지 않도록 노력했을 뿐이다.
실은 안다. 엄마의 음식이 얼마나 다채롭고, 순수하고, 오리지널인지를. 그것들을 언급하면 내 목은 끓어오르는 소리를 한없이 뱉어낼지도 모른다. “뭐 맛있는 거 해줄까?” 할 때 “안 먹어” 하는 심정으로 나는 엄마의 성의를 무심하게 자주 밀어냈다. 그것이 어떤 사랑이나 마음의 표현인 줄로 착각하면서 안 먹는다는 입에도 음식이 들어올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노년으로 접어든 엄마가 한없이 마음이 외롭다는 말을 해도 미동하지 않은 내게 엄마는 마음을 좀 알아달라는 표현을 외롭게 말했다. 엄마는 외로운 시간에 음식을 만들었다. 그것은 푸르게 우린 다슬기 육수로 얼어있기도 했고, 쑥반죽이라는 자유로운 형태로 냉동고 깊숙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엄마는 해마다 다슬기를 잡으러 천에 나가셨다. 물이 맑은 곳과 다슬기 서식지는 공용어휘가 아니듯, 일부러 찾아간 곳에 다슬기는 없었고, 지나다 들른 곳에는 다슬기가 흩뿌려져 있곤 했다. 다슬기를 발견한 엄마의 눈빛은 가족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동력을 뿜어냈다. 차 트렁크에 사철 준비되어 있는 투명 플라스틱 도구와 검은 봉지 몇 장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겁 없이 물에 뛰어든 모습은 흡사 해녀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엄마의 다슬기 잡이는 얕은 물에서 장난 삼아 노는 정도의 수준을 훨씬 벗어난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게 가슴까지 몸을 담근 엄마는 먹이를 찾아 잠수하는 오리를 떠올리게 했다. 마지막 한 마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엄마의 일념은 검은 봉지를 몇 장이나 가득 채워버렸다. 함께 거들기 시작했던 어느 누구도 엄마의 속도를 초월한 사람은 지금껏 없다. 신의 경지에 오른 솜씨는 입하(立夏) 즈음의 계절에 우리를 먹이고 또 먹였다.
그날 밤 다슬기는 불 위에서 퍼렇게 우러났다. 초록과 파랑의 중간쯤 되는 색의 국물은 식은 후 봉지에 담겨 냉동실로 직행했다. 진정한 노동은 지금부터 시작되는데, 늦은 시간까지 한자리에 앉아 바늘로 그 속을 하나씩 일일이 돌려 꺼낸다. 진저리가 날만도 하지만 “이게 간에 좋아”하는 엄마의 쌩쌩한 눈은 다슬기의 낱알을 모래알처럼 모으고 있었다. 이불 꿰매는 긴 바늘에 꼬치처럼 좌라락 꽂아서 입에 넣으며 오물오물하던 내 작은 입은 잠들 시간을 훌쩍 넘긴 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나를 뒤로한 엄마의 밤은 다슬기의 숫자만큼 길게 이어졌다.
다음 날 아침 식탁에 올라온 푸르고 까만 다슬기 살은 간장으로 간을 맞춘 채 밑반찬 사이에 제일 중심에 비집고 앉아 있었다. 숟가락 위에 소복이 올라온 다슬기의 수가 엄마의 지난한 시간인지도 모르고 고작 몇 초만에 뱃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버린다. 송구한 그 반찬을 당연하게 대하는 어린 나의 얼굴에 엄마의 뿌듯한 눈빛이 와닿는 줄도 모르고 입은 쉴 새 없이 오물거렸다. 어린 나는 그렇게 엄마의 시간을 먹고 키를 키우고 몸을 불렸다.
매년 봄, 엄마가 신앙처럼 지키는 계절 리추얼이 있으니, 그것은 초봄의 오염 없는 산골에 새로 돋아나기 시작한 어린 쑥을 뜯는 일이다. 삶아낸 어린 쑥과 불린 맵쌀을 가져간 방앗간에서 매년 엄마는 방앗간 사장님의 군말을 감당해야 했다. 쑥이 너무 많아 섬유질 때문에 잘 섞이지도 빻아지지도 않는다는 궁시렁이 매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다. “이렇게 해야 맛있어요.” 하며 뜻을 굽히지 않는 엄마를 뒤로하고 사장님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함박을 기계에 거칠에 엎어 넣지만 솜씨껏 곱게 빻아 엄마의 주머니를 기꺼이 열게 한다. 물과 섞여 치대고 뭉쳐져 여러 덩어리로 나뉜 반죽은 냉동고에 가득 쟁여 사계절 쑥개떡 맛을 잊을 만할 때마다 상기시킨다. 엄마의 냉동고에는 엄마만이 알아보는 무명의 봉지들이 차곡차곡 들어있다. 삶은 쑥, 일일이 파낸 알밤 속, 얼린 홍시들이 그것이다. 귀하디 귀한 것들이 그 안에 아무것도 아닌 듯 쌓여있다.
논값으로 배당받은 18포대의 햅쌀과 노란 호박고구마 수십 포대를 집에 쟁여두고도 멀리 있는 딸에게 보낼 수 없는 탓에 주변의 지인들만 신이 났다. 한아름 위에 한아름을 더해 겨우내 먹을 식량을 챙겨가는 이들이 놓고 가는 주전부리에 집에는 다른 모양의 정이 쌓여간다. 김장을 하지 않으려 해도 대문 앞에 가져다 놓는 김장거리가 엄마에게 일감을 얹어준다. 꽁꽁 언 손으로 절인 배추에 양념을 묻히지만 이웃의 인심에 올겨울도 다복하다. 겨울에는 한국에 들어오냐는 물음에는 이번에 거둔 홍시와 고구마를 딸 몫으로 얼마큼 남겨둘지 엄마의 계산이 들어있었다. “몰라요~” 하며 또 한 번 무심하게 답하지만 그 계산은 한겨울 유효한 채로 남아있을 것을 안다. 엄마는 늘 자식들 것을 남겨두고 베풀었다.
겨울이 시작되고, 첫눈이 한국에 다녀갔다는 방송에 눈 내린 고향집이 보고 싶어졌다. 짧아진 겨울 해처럼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도 짧게 남아 지금도 쉼 없이 짧아지고 있는데, 사람 소리 적막한 집에는 나이 든 엄마의 남편마저 벽처럼 말이 없어, 엄마의 수다 레퍼토리도 메아리 없는 산에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시간이 무섭도록 빠르게 흐른다는 엄마의 말씀에 오늘의 달력을 보며 배가 홀쭉해지도록 숨을 내쉰다. 올겨울 고향집 냉동고 속 깊이 박힌 쑥반죽을 꺼내 아랫목 뜨끈한 곳에 나란히 앉아 둥글게 쪄먹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