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에서 태어났으니 비슷한 면이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 의견에 반대다. 딱 반대. 결사반대.
40년 전 연년생으로 내 밑으로 태어난 그 아이로 인해 나는 누나가 되었다. 동생으로 태어나고 싶었는데 원치도 않게 누나가 되어버린 것부터 좌우지간 밉상의 인연을 제대로 가지고 태어났다.
초등학생들이 즐겨보는 유튜브가 있다. 현실 남매를 콘셉트로 우당탕탕 좌충우돌 남매생활기를 그린 '흔한 남매'. (등장 캐릭터 두 분이 부부라는 것을 알고 후에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는지.)
그 둘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우리의 어린 날이 떠올랐다. 매일 싸우고 놀리고 울고 골리고 소리치고 약 올리고. 장난하는 것도 싫고 놀기도 싫으니 제발 나 좀 그냥 내버려 두면 했지만, 그럴 때마더 더 장난기가 살아나는 그 아이를 보며 눈을 흘기고 이를 바득바득 가는 시간이 어린 시절의 거의 모든 날이었다.
성격도 반대, 좋아하는 것도 반대, 생활시간도 반대. 나는 아침형 인간임에 반해 그 아이는 지독한 올빼미형이다. 음악을 전공하던 그 아이는 새벽마다 관악기를 뻥뻥 불어댔다. 돌돌 말린 관을 통해 모아진 소리는 나팔을 통해 온 방을 울리고 집 안을 흔들었다. 단독주택이었기에 망정이지 아파트에 살았다면 쫓겨나 집 없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밤에라도 연습을 하는 것이 기특한지 부모님은 본인들의 잠을 포기하더라도 아들이 충분히 연습을 하기를 바랐다. 나는 아니었다. 자다 깬 새벽 한두 시. 살기를 담아 그 아이 방문을 걷어찼다. 조용히 하라고. 잠 좀 자자고. 낮에 하라고.
그날 밤 나는 동생에 대한 이해심이 없다며 누나의 자격을 논하는 엄마에게 호되게 혼나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 장녀의 삶은 자주 억울한 일이 많았다.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그 아이는 성인이 된 후 혼자 일본 여행을 떠났다. 나는 여행에 가면 기본적으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숙소가 최우선 순위다. 컨디션을 좋게 만들어 여행을 더 풍성한 추억으로 만들기 위한 것도 있지만, 여행이라도 가서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여행은 내 시각에선 참으로 독특했다. 밥은 편의점에서 때우고, 잠은 길가 벤치에서 노숙하거나 24시 맥도널드에서 쪽잠을 자다 쫓겨난다. 가족 단톡방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그 아이의 여행의 일거수 일투족을 설명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래. 아들. 험한 것도 해봐라. " 하시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을 나는 안다.
톡방에 올라온 여행 사진 속에는 익숙한 옷을 입은 그 아이가 버젓이 웃고 있었다. 저거 내 옷인데!
오버사이즈로 입으려고 샀던 폴로셔츠인데, 예전 직장 동료의 다이빙 동호회의 단체복이었다. 등판에 적힌 멘트가 재치 있어 한벌 구해달라고 부탁했던 그 셔츠. 혼자 핫바에 맥주를 마시고 있는 그 아이 등에 쓰인 문구가 더 이상 재밌지 않다.
No honey
No money
쟤가 애인도 없고 돈도 없어 지금 저기서 저러고 있구나. 측은함에 웃픈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선자리를 마련하셨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무래도 엄마 마음처럼 조급하셨던 게다. 선자리에 나가기 전에 동생은 삼촌과 엄마로부터 여자가 좋아하는 것, 매너, 애프터 신청에 대한 코치를 귀 아프게 들었다. 미리 상대 아가씨를 본 적이 있는 아빠는 이번엔 아들이 마음에 들 것이 확실하다며 선보러 가는 아들 뒤통수에 못 미더운 당부를 하셨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가는 동생이 오래간만에 의젓해 보였다. 가서 무슨 말을 하며 대화를 이끌지 안 봐도 뻔하고 상식 밖의 말이나 안 하면 다행이라며 나는 괜히 삐딱했다. 동생이 선보러 가고 집안엔 적막이 흘렀다. 상대 아가씨의 부모님이 좋은 분들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엄마는 이미 사돈이라도 맺은 듯 들떠계셨다.
듣던 대로 아리따운 아가씨에 동생은 맘이 흡족한 채 돌아왔다. 그러나 그 후 두 번째 만남부터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눈치 없는 이 아이는 결국 세 번째 만남에서 오빠 동생 사이 하자는 말을 듣고 시무룩해졌다.
"그럼 인마, 오빠 동생 한다고 해야지. 사람일이 어찌 될 줄 알고!"
"결혼하고 싶은데 무슨 오빠 동생을 해요. 전 그런 건 싫어요."
대쪽 같은 심성은 융통성 부족으로 자주 드러난다. 아리따운 아가씨도 놓치고, 아가씨를 동생으로 둘 기회까지 놓쳤으니 이제 다시 마음에 드는 상대는 언제 올꼬.
마흔을 넘기고 아직 미혼인 동생에게 이젠 누구도 결혼을 묻지도 재촉하지도 않는다. 올해도 거의 지나간다. 결국 모든 것이 하늘의 계획 안에서만 가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