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쇠면서 신정도 꼬박꼬박 쇤다.

두 번의 새해, 너그러운 시작

by 엄민정 새벽소리

창밖의 폭죽 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의 적막을 깼다. 한순간 하늘의 별이 되었다가 금세 별똥별이 되어 떨어지는 불꽃이 창문을 화면 삼아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바야흐로 중국의 폭죽 시즌이다.

휴대폰 메신저는 진작부터 새해인사로 도배되었다. 서울에선 응집된 새해 전야의 흥분이 보신각 타종으로 전국에 흩뿌려졌을 터. 한 시간 후 상하이의 우리 집엔 딸아이가 친구들과의 영상 통화로 한 해의 시작을 떠들썩하게 경축했다. 같은 시간의 범역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덩이로 묶여 새해맞이 파도타기를 시작했다. 스마트폰 화면에 전 세계 곳곳의 풍경이 바쁘게 업로드된다.


설을 쇠면서 신정도 꼬박꼬박 쇤다. 한 해에 새해가 두 번이다. 생일도 기일도 한 번인데 신년은 매년 두 번씩이나 된다. 방금 나눈 신년인사를 음력설에 재차 전하며 메신저나 SNS에는 축복이 넘쳐흐른다. 학부모 단톡방에 처음 올라온 새해 인사를 복붙하여 발송인만 다르게 같은 말이 길게 반복된다. 새해 복을 빌어주는 교과서 같은 인사말의 틈 사이로 가벼운 껍데기와 헐렁한 겉치레가 떠다닌다. 축복은 고맙지만 일 년에 두 번, 그것도 한 달 차이를 두고 좀 번거롭다고 생각하면 내가 좀 유별난 것일까.


양력을 기반으로 살면서 음력 명절을 포기하지 않은 민족의 딜레마다. 신정과 설을 한 번만으로 규정하기에는 민족 풍습의 역사가 깊다. 국가 리더십이 한국 나이를 젊게 규정하였음에도 국민들은 여전히 한국 나이와 만 나이를 구분한다. 에스컬레이터의 두 줄 서기가 실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습관처럼 굳어진 행동(풍습)은 필요성의 인지와는 달리 쉽게 바뀌지 못했다. 양력설과 음력설은 모두 따르자니 번거롭고, 지나치기에는 허전한 것이 되어버렸다.




새해의 결심은 새 기운에 기대어 견고한 시작을 선포한다. 결심을 자문자답하다가 생각이 멈추는 지점에서 또 다른 자문자답이 시작된다.

새해를 앞두고 가슴 한 곳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작'의 부담감 때문인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가.

2025년의 끝자락에서 내가 후회할 것은 '시작'일까, '실패'일까.

나는 또 한 번의 실패를 축적할 것인가, 성공의 경험을 새롭게 쌓아갈 것인가.


퀴즈를 내며 정답을 맞힐 기회를 한 번만 허락하는 것보다 너그럽게 한 번 더 허락할 때 정답률이 훨씬 올라가기 마련이다. 신년이 양력과 음력으로 두 번인 것은 어쩌면 '시작'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주저함에 허락하는 추가의 기회일 수 있다. 한번 더 주어지는 신년에 축복과 결심이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이 매일의 과제임을 알면서도 새해의 신선함에 기대고자 하는 연약한 의지는 두 번의 기회를 딛고 '실패'에서 조금 멀어지고 싶은 것이다.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질 새해맞이가 앞으로 창창하게 남아있다. 못한다고 말하기 전에, 된다고 생각하고 해 본다. 추가로 주어지는 기회가 나를 해내도록 밀어주고 있다. 기회를 다 쓴 후에는 다시 자주 나만의 신년을 불러일으키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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