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비보에 나는 잠시 멍했다. 들은 것이 현실로 느껴지는 데에는 적잖은 시차가 있었다. 항공기의 회항과 사소한 기체 결함 소식은 일상의 귓가에 흔했다. 고스펙 파일럿과 꼼꼼하게 구성된 대응 매뉴얼이 웬만한 비행 문제를 커버한다는 믿음 탓에 나의 현실 자각 타임이 오래 지연되었다.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기자 음성의 높낮이에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심장이었다. 언어로 전달되기 훨씬 전에 이미 심장이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채널 몇 군데를 번갈아 돌리며 생존자 집계의 진전을 확인했으나, 생존자는 2명으로 굳어진 채 사망자의 집계만 뉴스별로 달리했다. 한국의 실시간 뉴스에선 이미 세 자리의 기함할만한 숫자가 집계되고 있음에도 이곳 중국엔 28명으로 오래 남아있었다.
밤 비행시간에 맞춰 하루 일정을 조정해 두고 공항에 도착했을 그들의 얼굴을 뇌리에 그려본다. 여행은 그 자체의 즐거운 기억과 다시 돌아가는 일상에 대한 기대를 포함한다. 김치가 그리운 이도 있었을 테고, 돌아가 전할 선물을 양손 가득히 들고 설렌이도 있었을 것이다. 뇌리의 그림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동동거리며 항공편을 놓친 승객 여부에까지 이어졌다. 문제의 항공편은 아침 비행기가 아닌 밤 비행기였지만 늦잠으로 놓칠 일말의 가능성까지 멀리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이 계속 엉뚱한 방향으로 거슬러간 건 단 한 명이라도 사고를 미연에 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그려본 망상이었다. 망상이 깊을수록 슬픔과 상실감이 짙어졌다. 현 상황을 믿을 수 없어 그렇고, 현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아 더 그렇다.
메이데이, 조난 신호.
메이데이에 대한 매뉴얼이 문득 궁금해졌다. 메이데이를 판단한 기장의 구조 요청에 정확히 무엇이 대응할 수 있었을지 아리송해진다. 그래서 그것이 구조를 바라는 절규였을지, 절망으로 바뀌어버린 비명이었을지를 감히 그려보기 어렵다. 그 순간 메이데이를 구세주처럼 부르짖으며 기대한 것은 생명이고, 삶이었다. 무지막지하고도 포악하게 다가오는 그림자 앞에서 꼼짝없이 복종할 수밖에 없는 인간. 찢어진 생살 밖으로 드러난 속살 같은 인간이 화마와 폭발과 마주한 순간을 생각하면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다. 삶이 성급히 끝나버리는 아득함과 허무함을 두고 공중의 기체(机体) 안의 승객처럼 지상의 인류가 할 수 있는 것도 기도뿐이다.
잠시 눈을 감았다. 놀란 가슴에 손을 얹고 화면에 눈을 고정하면 이 순간에 살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끔찍한 무력함을 느낀다. 생生과 사死가 마구 엉키고 엇갈리는 속수무책의 순간을 지나고 있다.
"추모합니다."
다섯 글자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고작 이런 글을 끄적거리는 것으로나마 기도를 대신하고 애도를 전한다.앓아눕고 통곡을 해도 줄지 않는 상실감에 남은 자의 후회만 덩그러니 남았다. 거대한 충격은 산 자의 기억까지 휩쓸어 버렸다. 검게 타고 무너져 내린 잔해를 뒤적거리는 일이 진행되며 유족과 생존자로부터 시작한 what if의 질문이 이 사회를 관통하기 시작했다. 일어날 틈만 부단히 찾고 있는 사고에 인류는 끝없이 무력하다.무력함 이전에 사고에 대비하는 철저함으로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다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