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늙어간다고 하는 고마운 권리, 육체의 감퇴라고 하는 영예,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p.187>
내가 노인을 경외하는 것은, 내가 힘겨워하는 삶의 시간들을 그는 다 살아냈기 때문이다. 백발로 덮인 주름지고 당당한 두상은 오늘도 기름을 발라 곱게 빗고 단장했다. 가까스로 얻은 삶의 훈장을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 이유 무엇인가. 훨씬 어린것들 사이에서 기죽을 이유 또한 무엇인가. 노화의 흔적, 그 훌륭한 흔적.
새치염색에 열심이던 미용사의 한마디는 우주를 관통할 만한 원대한 것을 품고 있었다. 손은 부지런히 새치를 가리지만, 입은 제 노릇을 할 양으로 쉴 새 없이 벙긋거렸다. 흰머리가 부쩍 늘어 고민이라던 손님에게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이랬다.
"해결책 알고 싶어요? 간단해요.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대기하던 의자에서 내 눈이 번쩍했다. 그리고 나는 커트만 조금 치고 나왔다.
이십 대엔 인생의 재미가 그 나이에만 몰려있는 듯했다. 삼십 대가 되고 보니 재미는 이십 대에만 있는 게 아니구나, 하며 안도했다. 사십 대가 되어보니, 그제야 재미란 놈의 성격을 알게 되었는데, 그건 찾는 족족 발견된다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찾기만 한다면 더 재밌어지겠구나.
찾아보기도 전에, 염색약과 피부시술이 색안경이 되어 눈을 가린다. 그것들이 나를 젊은 날에 가둘수록, 노인이 되어갈 나는 갈 곳을 잃는다. 길 잃은 노인의 노안老眼이 슬프다.
잎이 뻣뻣해지고, 단풍이 드는 건 영예다. 누군가는 그날을 살아보기 위해 뜨거운 눈물도 흘렸으리라. 늙어서 죽게 해 주세요. 늙어가는 나를 바라보는 일은, 다시금 나 자신을 경외의 시선으로 마주하는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