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게 친절한 철학
인간이 언어의 주인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주인이다.
<안상현, 미치게 친절한 철학>
걱정을 밥과 반찬처럼 먹으면서 그게 콩밥인 줄 몰랐지.
간장 종지만한 그릇을 끌어안고, 갇힌 줄 모른 채 일평생 죄수로 사는 곳.
굳어진 수갑과 족쇄가 나의 성난 발버둥을 더욱 옥죈다.
아기의 옹알이, 초등학생의 삐뚤빼뚤한 글씨, 누군가의 손짓 그리고 나의 발짓, 흘림체, 언어.
방직공장의 뒤엉킨 솜뭉치가 가늘고 매끄러운 한 줄의 실이 되었다. 실은 다시 온몸을 얽어 직물이 된다. 밤새 붙든 혼란한 것이 바로 이것인가. 성긴 바구니 위로 무참하게 얇실한 것들의 형체가 드리웠다.
빈약하고 가난한 것들의 아우성을 이불처럼 덮었던 지난밤.
더 이상 깊어질 수 없던 생각이 원대한 채로 쪼그라들어버린 밤.
언어에 사로잡힌 생각의 등덜미가 땀으로 축축하다.
쓰던 것을 관두고 문득 남의 언어를 엿본다. 종이 위에 빼곡한 생각. 누군가의 감옥.
종이 위에 포착되어 책이 됐구나.
'포착'
그래. 그건 바로 체포야. 감옥행이야.
언어 너머의 에덴동산을 넘보던 방금. 그리고, 기껏 다시 제자리인 지금.
나는 생각한다. 언어가 제공하는 대로.
탈옥을 꿈꾸던 무기수의 뱃속은 콩밥이 주는 포만감으로 이내 잔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