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받을 때 나는 기도 한다

삶의 재구성

by 엄민정 새벽소리

젊은 암 경험자라 매년 MRI 검사를 받습니다. 건보에서는 이제야 생애전환기 검사를 내게 열어주었는데, 생애 전환이 좀 빨리 온 나는 건보의 뒷북에 좀 놀라지요. 검사가 요것뿐이라고? 역시 건강은 직접 챙기는 거지 누가 챙겨주는 게 아닌가 봅니다.

어젠 병원에 가며 마음을 좀 편하게 두었어요. 여전히 병원 공기를 맡으면 겁이 나지만, 겁은 결국 내가 만드는 것이었더라고요. 누가 떨게 한 일도 없는데 지레 겁먹고 지레 해석하고 지레 절망해서 지레 쓰러지는 레퍼토리를 이젠 그만하고 싶어요. 혼자 가기 두렵던 곳에 직접 운전해서 다녀왔습니다. 팔뚝에 거즈를 붙이고 단추도 마저 잠그지 못한 채 돌아와 식구들 밥을 챙기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라 믿으며 가만히 달래고 있습니다.


아차, MRI를 말하려다 샜네요.

기계에 들어갔어요. 지퍼에 금속이 달렸다는 이유로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요. 손은 만세 했고, 귀에는 헤드폰을 썼어요. 밖의 헤드폰과는 좀 달라요. 음악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소리를 막아주는 용도거든요. 효과가 있는 줄은 모르겠으나 안정감은 들더군요. 자, 이제부턴 내가 기계인지, 기계가 나인지 모르는 순간이 옵니다. 30분간 꼼짝없이 엎드려 괴로운 명상을 할 예정입니다. 온갖 소리와 공간의 압박이 나를 짓누를 겁니다. 때가 되면 손등에 조영제가 찌릿하게 주입되겠지요. 코에 주사약 냄새가 훅 끼치면 기계는 다시 신나게 작동할 겁니다.


야외공연장 스피커 케이블 접속불량음

숟가락으로 긁는 나무 빨래판

비 오는 날 맨발에 신은 크록스 마찰음

이상기온으로 잘못 도착한 열대 조류 울음소리 같은 것


크모크모크모크모크모크모

드륵드륵드륵

딱딱딱딱딱딱딱딱

쩌걱쩌걱쩌걱

찌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둥탁둥탁둥탁둥탁

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


차갑고 위압적인 기계음이 익숙해질 즘이면 검사는 거의 끝이 납니다. 단조로운 소리의 박자를 세며 나와 소음뿐인 지금, 이곳에 기도합니다.

'살아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를 더 주신다면 결코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밥 내 섞인 수증기 한 점조차 아까워 얼굴을 바짝 들이댑니다. 차가운 검사대 위를 견뎌온 내 몸에 이 온기를 가장 먼저 선물하고 싶어서요. 불안이 안도로 변하면, 기회가 되어 돌아온 나의 간절한 기도는 내 부엌을, 내 삶을 다시 생생하게 데우기 시작합니다. MRI 통 속의 소음은 어쩌면 생생한 삶을 비추는 일상의 불협화음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끝내 희열이라는 협화음을 찾아내는 것이 삶의 목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게 허락된 이 모든 찰나를 감히 행과 불행으로 나누지 않겠습니다. 그저 한 방울도 놓치고 싶지 않은 눈부신 삶의 조각들일 뿐이니까요.

이토록 입체적인 생의 한복판에 내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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