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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Jun 13. 2024

조금씩, 오랜 작별

첫 번째 글


 나: 당신은 소멸했는가?

 사나이: 그렇다. 그러나 나는 소멸 후에도 존재한다.




 가상의 대화 속에서 내게 굳건한 자신감을 보여준 사나이는 한때 나의 정신적 기둥이었으며 아픈 곳 없이 아프던 시절에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부표였다. 지금 나는 그때의 알 수 없는 무기력과 슬픔을 떨쳐버렸고, 바보 같이 굴었음을 후회하고 있으며,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가슴으로 실감한다. 나는 한마디로 괜찮아졌고, 언젠가 사나이가 했던 표현대로 '조금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충족되지 않은 갈증이 있으며, 그것을 해갈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일단 이야기하는 거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해. 나의 어렵고 힘들었던 일 년을 버티게 해준 사나이와 그의 시들에 대해. 물론, 그의 소설이나 수필에 대해서도 말하게 될 것이다.


 연구자도 아닌, 평범한 여자 대학생이 전문적인 연구자들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그 사나이를 뭐 어떻게 다루겠다는 걸까. 평범한 여자 대학생에게 맞는 방식으로 대하겠지. 나는 신중한 단어 선택을 제 일의 목표로 둔 감상 활동을 할 생각이다. 소개하고 싶은 구절을 그대로 옮기고, 나의 찰나적인 혹은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온 감상을 덧붙이고, 가상 속에서 사나이와 한두마디를 나누고. 고갈은 찾아올 것이다. 나의 체력과 열정이 고갈되지 않더라도 죽은 작가의 작품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므로. 나의 최종적인 목표는 어떤 전집 출간자처럼 "이제 이상으로부터 벗어나리라"하고 말하는 것이다.


 사나이는 기꺼이 나의 드라마가 되어주겠단다. 고양과 슬픔과 침묵과 반짝이는 순간이 있는 드라마가 되어주겠다고 온도 낮은 목소리로 허락했다. 나는 사나이의 허락을 받아들였다. 내가 가는 여정에 끝이 있다는 확신은 얼마나 안심이 되는가. 오늘로 시작된 긴 여정도 언젠가 끝이 나겠지만, 그 끝 너머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을 테니까. 새로운 무언가가, 내가 삶의 많은 것에 지쳐 침대에 한없이 가라앉을 때 눈꺼풀 위로 한가닥의 히스무레한 빛을 비추어줄, 새로운 애정이 있을 테니까. 그것에 대한 믿음이 나를 쓰게 만든다.




 저물녘 강가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할 무렵, 밤색 두루마기 한복 차림을 한 사나이는 멍하니 강가에 서서 사라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친구도 있고 애인도 있고 야구단 크기의 독자도 가뿐하게 거느리고 있는 조선의 천재 시인, 이상이다. 물론 천재라고 불리우는 젊은 문인에게 야구단 크기의 독자는 너무 적은 수다. 자신의 시를 알아주는 사람이 그토록 없는 것에 대한 슬픔일까, 아니면 해가 떠 있을 때는 그나마 거동하던 몸이 저녁이 되자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이 천근만근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망연자실일까, 아니면 그저 노을에 대한 한 푼짜리 감상인 걸까, 그의 눈빛은 조금 불행한 듯 보인다.




여울에서는도도한소리를치며
비류강이흐르고있다.
그수면에아른아른한자색층이어린다.

십이봉봉우리로차단되어
내가서성거리는훨씬후방까지도이미황혼이깃들어있다.
으스름한대기를누벼가듯이
지하로지하로숨어버리는하류는검으틱틱한게퍽은싸늘하구나.

십이봉사이로는
빨갛게물든노을이바라보이고

종이울린다.

불행이여
지금강변에황혼의그늘
땅을길게뒤덮고도오히려남을손불행이여
소리날세라신방에창장을치듯
눈을감은자나는보잘것없이낙백한사람.

이젠아주어두워들어왔구나
십이봉사이사이로
하마별이하나둘모여들기시작아닐까
나는그것을보려고하지않았을뿐
차라리초원의어느일점을응시한다.

문을닫은것처럼캄캄한색을띠운채
이제비류강은무겁게도도사려앉는것같고
내육신도천근
주체할도리가없다.


—한 개의 밤, 이상



 한 개의 밤, 한 밤의 불행. 내가 무척 좋아한 시다. 감정의 절제와 실험적 언어의 탐구를 통해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열고자 했던 사나이의 불행은 이토록 덤덤하게, 어둠 속으로 사그라지는 노을빛처럼 덤덤하게 그려진다. 물론 이 시를 처음 접했던, 감정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미숙했던 그때의 나는 작품 속의 불행을 덤덤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과잉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사나이의 가늘고 기다란 눈사부랭이에 눈물이 고였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착각에서 벗어나 다시 시를 읽어보라고, 과거의 미숙한 나에게 속삭인다. 그러면 사그라지는 노을과 사나이의 불행 사이의 차이가 느껴질 것이다.


 어느 해 슬픈 날의 노을은 역류할 수 없는 시간의 물소리, 비류강의 잔잔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사그라졌다. 그러나 사나이의 불행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날 그 시각, 사나이의 눈 앞에서 저물어간 노을은 어둠 속에서 다시 솟아오를 수 없지만, 노을을 담은 사나이의 고요한 눈동자는 감기지 않았다. 사나이의 불행한 밤은 기억되고, 누군가에겐 동정을 받고 누군가에겐 비슷한 기억의 부상과 함께 잔잔한 위로를 불러오며 끊임없이 재생된다. 존재에 대한 냉혹한 물음만을 남기고 덧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던 밤은, 그의 능란한 언어에 의해 한땀 한땀 박제되어 이상 애호가들에게 오늘날까지 집요하게 읽히면서 온화하게 닳아간다. 그렇다. 나는 그때와 달리 <한 개의 밤>을 접하는 내 마음이 묘하게 온화해진 것을 느낀다. 나에게 읽히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기억되리란 것이 좋았다.


 나는 저날 밤 이상이 무엇 때문에 보잘것없이 낙백한 사람이 되었는지 굳이 캐묻고 싶지 않다. 누구나 저런 밤은 있는 법이니까.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밤, 차라리 가슴을 후비는 슬픔을 기대하게 되는 외톨이의 시간, 오직 위로만은 찾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 얼마간 지속될 때 비로소 스며드는 시의 목소리.




 이상 애호가란 말은 자두 애호가란 말만큼이나 상큼한 구석이 있다. 자두 애호가들의 달착지근한 미뢰는 물론 이상 애호가들에게 없는 것이다. 그 이름을 발음하고, 그 이름 적힌 시를 백 번 읽는다고 해도 허허로운 마음은 계속 허허롭고, 씁쓰름한 입맛은 계속 씁쓰름하다. 그러나 이상 애호가는 이상이 있기 때문에 힘이 난다. 어떤 것을 애호하는 사람은 전부 똑같을 것이다. 그것이 있다는 혹은 있었단 사실이 애호가의 마음을 비춘다.


 그러면 나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만이 아니라, 인간 김해경도 애호하는 독자라고 보는 것이 옳다. 물론 나에게 그 둘의 구분은 크게 의미없다. 이상의 고통을 김해경이 공감하고, 김해경의 기행을 이상이 감쌌다. 김해경이 피를 토할 때 이상도 아팠다. 각혈의 고통과 파멸해가는 거울 속의 자신에 대한 집착('병적 나르시시즘')을 시에 담아낸 사람은 이상. 그리고 구원의 향과 맛으로 천국의 길을 인도해줄 수도 있었을, 멜론 한 조각을 기어코 넘기지 못한 말라비틀어진 병자는 이상이자 김해경, 둘 다였다. 나는, 그가 저승 세계에서도 그만의 독보적인 언어를 휘날리는 은빛 펜촉으로 저승 세계의 틀에 박힌 질서를 난도질하고 있을 것을 믿는다. 저승사자 중에서 이미 여럿이 억압적인 태도를 취하려 들다가 어느 순간 휘말려 넋을 놓고 보게 되었겠지.


 너무 띄우기만 하나? 자두 애호가가 자두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자두 애호가가 호박을, 선풍기를, 코끼리를 다룰 수는 없다. 아니, 다룰 수야 있겠지. 그래도 역시 자두 애호가는 자두를, 향기나고 검붉은 그 최고의 과실을 다루어야 한다. 그는 내가 밑바닥에 있을 때 옆에 있어준 작가다. 지금 나는 수면 위로 올라와 에메랄드색 하늘에서 빛나는 오후 네 시쯤의 태양을 보고 있지만, 어둠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그에게 여전히 고마움을 느낀다. 조금씩 오래 작별하자. 찬바람이 불어도 봄볕이 들어도.

 



 세상 어디에도 이상의 묘는 없다.


 그는 일본에서 죽었고, 아내 동림이 그의 유해를 화장하여 미아리공동묘지에 묻었으나, 6.25 전쟁 후 묘지가 사라지면서 유실되었다.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이상은 진심으로 상처받는다기보단 자조할 것 같다. 무슨 에스프리를 묻겠단 것도 아니고, 그냥 고작 뼛가룬데 말야. 자신의 어여쁜 뼛가루 묻힐 자리마저 허락하지 않는 세상 때문에 그는 분노한다. "기가 차!" 저승길 동무 삼은 유정한테 세상에 대한 신랄한 감정을 실컷 표출하다가, 어느새 무익한 진지함은 진정시키고 그 타고난 실없는 유머 실력을 드문드문 발휘하며 저승길을 가는 그의 모습을 그려본다. 유정은 웃으면서도 눈빛에 슬픔이 감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다. 과장 조금 보태서 12시간 동안 느릿느릿 써나간 글이다. 오늘은 시작하는 글이라 담고 싶은 게 많아졌는지 분량도 길고 내용도 많은데, 다음부턴 다루고자 하는 <작품>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목표는, 내가 읽을 수 있는 모든 이상의 작품을 한 번 리뷰해보는 것인데, 어마무시한 과제가 될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시는 다 읽지도 못했다. 그래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구체적인 득은 따지지 않기로 한다. 그냥 하는 거다. 숨 쉬듯이 밥 먹듯이. 나의 삶에서 중요한 것을 드디어 보여주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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