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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밤 May 15. 2020

이중섭과 마사코, 그리움이라는 영혼의 편지

이중섭의 그림편지, 그리움은 한 편의 詩가 된다

그때를 기억 하나요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새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을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 김광석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中



올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미스터 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나요? 대한민국을 트로트 열풍에 휩싸이게 한 주인공이죠. 그 열기는 아직까지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트로트라곤 1도 모르던 제가 이를 접하게 된 건 순전히 이 노래 덕분이었습니다. 트로트는 부모님 세대의 산물이라고만 여겼던 저를, 마지막 방송을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시청하며 응원하게 만든 마약 같은(?) 곡이라고나 할까요.. 아직도 '곱고 희던~'이라는 첫 소절만 들어도 가슴이 지잉- 하고 울리는 것만 같습니다.


이 노래 가사를 잠잠히 듣고 있노라면 생각나는 어느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소, 가족 등을 주로 그리며 향토적인 작품 세계를 가진 화가, 이중섭입니다.


이중섭(1916-1956)  /  흰 소, 1954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들 중에는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그림만으로 주목받는 경우, 그림보다 화가와 얽힌 스토리가 화제가 되어 그림까지 회자되는 경우, 그리고 그림과 삶이 일치하는 경우. 이중섭의 경우는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그의 삶과 떼어 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것이지요.

 

특히 그의 영혼의 단짝,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에 얽힌 그림 이야기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노래 못지않게 절절합니다. 그리고 이는 그가 살아생전 그렸던 그림들과 수십 통의 그림편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요. 애타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던 이중섭의 영혼의 편지들을 지금부터 함께 찬찬히 열어가 보려 합니다.





이중섭과 마사코, 어느 30대 부부 이야기


1916년 대지주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이중섭은 어려서부터 미술에 흥미와 재능을 나타냈습니다. 민족사학이었던 오산학교에서 공부하며 그는 자연스레 향토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의 작품에는 소, 어린이, 새와 달, 물고기 등과 같은 전통적인 소재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20살이 되던 해 일본으로 가 제국 미술학교에서 유학을 했고 이듬해 일본 문화학원 미술학부에서 공부하게 되는데요. 그리고 그곳에서 드디어 청년 중섭의 영혼의 단짝, 마사코를 만나게 됩니다.


(좌) 이중섭과 마사코의 결혼 사진  /  (우) 마사코와 아이들

학교를 졸업하고 원산으로 귀국한 이중섭을 따라 마사코가 그곳으로 건너오게 되고 1945년 둘은 정식으로 결혼하여 부부가 됩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며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을 이루었던 그때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이중섭은 그림으로 곱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가 그려낸 정다운 그림들을 한번 들여다봅시다. 그림 속 가족에게 둘러싸인 화가는 마치 이중섭 자신을 표현하는 것 같지 않나요? 봄을 만끽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선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그림들.. 언뜻 보기에도 좀 특이합니다. 대충 그린 드로잉 같기도 하고 판화 같기도 하고. 과연 그 정체는 무엇일까요?


(좌) 가족에게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1950  /  (우) 봄의 아이들, 1952-1953

이 그림들은 이중섭을 대표하는 기법 중 하나인 은지화입니다. 그 당시에는 담뱃갑을 감싸던 은박지 같은 종이가 있었는데, 넉넉지 않은 상황이었던 이중섭은 친구들에게서 이를 받아두었다가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껌을 감싸는 그 은박지 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할까요?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함께 머릿속으로 은지화를 그려봅시다. 

일단 껌을 사서 씹어야 합니다. 껌을 감쌌던 은박지 위를 뾰족하고 세밀한 도구(없다면 이쑤시개)로 살살 긁어 그림을 그려보세요. 그 위에 물감을 얇게 바르고요. 잠시 기다렸다가 닦아냅니다. 긁어서 파여진 부분에 물감이 채워지면서 오묘한 느낌의 작품이 탄생하겠죠? 이것이 바로 은지화입니다.


고려청자의 상감기법과도 비슷한 화법을 이중섭은 더욱 발전시켜나갔고 은지화는 그만의 독특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중섭의 그림 편지


그러나 찬란하게 빛나던 순간들도 잠시, 6.25 전쟁의 발발로 인해 부산, 제주 등을 전전하던 이중섭의 가족들은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게 되고, 결국 1952년 그는 마음 아픈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생활고와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아내와 두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게 된 것이죠.

 

그때부터 애달픈 기러기 아빠 생활이 시작됨과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화가 인생의 최고 걸작들(<소> 연작, <부부> 등)이 탄생하는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좌) 가족과 비둘기, 1956  /  (우) 춤추는 가족, 1953
길 떠나는 가족, 1954

가족을 향한 그의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일까요? 이 시기에는 유독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중 특히 아래 마지막 작품을 눈여겨보세요. <길 떠나는 가족>이라는 이 작품은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낸 수많은 그림 편지들 중 한 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떨어져 이별하게 된 현실과는 달리 그림 속 소달구지 위에서 희망찬 미래를 노래하며 행복해하는 가족의 모습이 더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총 60여 통으로 일본어로 쓰여 있는데 이는 일본어에 익숙한 아내와 두 아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합니다. 수십 통의 편지 중 특히 아내를 향한 이중섭의 애틋함과 사랑은 가슴 사무치도록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좌)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  /  (우) "나의 태현아, 건강하겠지. 아빠가 오늘 엄마, 태성이, 태현이와 소달구지를 타고 따스한 남쪽 나라로 가는 그림을 그렸단다."
나만의 아름답고 상냥한 천사여..
더욱더 힘을 내서 더욱더 건강하게 지내줘요.
화공 이중섭은 반드시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 씨를 행복한 천사로 하여
드높고 아름답고 끝없이 넓게 이 세상에 돋을새김해 보이겠어요.
자신만만 자신만만.
나는 우리 가족과 선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진실로 새로운 표현을, 위대한 표현을 계속할 것이라고.

내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편지에 종종 등장하는 표현인 '남덕'은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지어준 별명입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의미의 남덕. 아내를 향한 이중섭의 연정이 듬뿍 담겨있는 애칭이지요?


(좌) 마사코가 간직하고 있던 이중섭의 사진  /  (우) 이중섭의 아내, 마사코(남덕)

한편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쉬지 않고 작품을 그리는 남편을 생각하며 남덕, 마사코 역시 애절한 마음을 담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당신의 힘찬 애정을 전신에 느껴
남덕은 마냥 기뻐서 가슴이 가득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 나는 온 세계의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충분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간절한 그리움과 바람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채 그는 1956년 간염과 영양실조로 인해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리움이라는 한 편의 詩


(오른쪽 편지 중 일부) 귀여운 태현이에게. 잘 지내나요? 지난번에 엄마랑 태성이랑 태현이 셋이서 이노카시라 공원에 놀러 갔다면서요. 아빠는 닷새간 감기에 걸려서 누워 있지만 오늘은 아주 건강해졌어요. 또 열심히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열면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사 갈게요.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어 주세요.
(그림 설명) 위: 아빠가 감기에 걸렸지만 약을 먹고 건강해졌어요 / 왼쪽: 엄마와 태현, 태성이가 이노카시라 공원으로 놀러 갑니다. / 아래: 아빠가 빨리 가서 보트를 태워줄게요.   
출처 <이중섭 편지> 이중섭 지음, 양억관 옮김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작품은 약 300여 점. 현시대의 우리가 그의 걸작들을 이렇게 감탄하며 볼 수 있게 된 까닭에는 그림을 팔아 다시 가족과 만나기만을 고대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 활동에 매달렸던, 그림과 떼놓을 수 없는 그의 처절했던 삶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날에는 온 가족이 따뜻한 남쪽으로 이사 가는 그림을 그렸고, 감기에 걸려 여러 날을 고생하면서도 아들이 이를 걱정할까 봐 약을 먹고 건강해진 자신을 편지에 그려 넣었던, 위대한 화가 이전에 따뜻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이중섭. 하루가 멀다 하고 바다 건너 가족들에게 '꼭 다시 만나자, 아버지가 데리러 가겠다'는 말을 꾹꾹 눌러쓰던 이중섭의 편지는 마치 '그리움'이라는 한 편의 詩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일찍이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마사코의 독백처럼 느껴지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한번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라고 읊조리는 마사코의 마음으로 이중섭을 기억하고 추억하기엔 이만한 노래가 또 없을 것 같습니다.



글. 아트소믈리에 지니



* p.s.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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