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피의 시대, 수백 년 전 초상화를 바라보며
여기 한 화가의 SNS가 있습니다. 자신의 셀피(Selfie: 자신을 찍은 사진. 셀카)를 올렸다고 하는데 반응이 아주 핫하군요. 화가의 셀피라면.. 아마 자화상(Self-portrait)을 그린 것이겠지요? 셀피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도대체 300년 전 화가의 자화상이 핫하면 도대체 얼마나 핫하다는 걸까요?
한번 알아맞혀봅시다. 일단 프랑스 궁정화가라고 합니다. 1735년생이라면.. 루이 16세 시기에 활동했겠군요. 와- 말이 300년 전이지 그 시절 질풍노도의 프랑스 역사를 되돌아보자면.. 네, 정말 시조새라 불릴만합니다. 마리 앙투와네트의 초상화까지 그렸을 정도라고 하니 상당한 실력가에 고풍스러운 화풍을 가졌겠는데요? 어디 보자.. 아, 알겠어요! 아마도.. 이런 느낌?
(좌) 루벤스, 얀 페르물런의 초상, 1616 / (우) 벨라스케스의 자화상 궁정화가 하면 딱! 떠오르는 루벤스와 벨라스케스의 인물화입니다.
그 시기 특유의 귀족적이고 화려한 복장으로 한껏 멋을 내고 인물이 돋보일만한 배경을 넣어 분위기를 잘 잡아준 뒤, 정면에서 살짝 45도 각도로 틀어 포즈를 잡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제일 근엄하고 멋진 눈빛으로 그림 너머를 쏘아봐 주면..! 이보다 근사한 초상화는 또 없겠지? 하는 느낌을 물씬 풍기는 초상화 완성입니다.
(좌) 한스 홀바인, 에드워드 6세의 초상 / (우) 자크 루이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세기경 이 시기의 대부분의 초상화(또는 자화상)는 이러했습니다. 마치 증명사진을 찍는 듯한 포즈와 분위기로 절제미를 꾀함과 동시에 인물에 대한 인상을 강렬하게 드러냈죠. 이는 인물에게 영웅적인 면모를 더하기 위함이었는데요. 그 당시 초상화나 자화상은 자신의 업적, 위업을 자랑하고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작품 속 인물들은 실제 모습 중 가장 매력적인 모습으로 또는 실제보다 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근엄함 열매 100개는 먹은 듯한 포스의 에드워드 6세의 초상화가 나오기도 하고, 알프스의 매서운 강풍과 추위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듯한 모습의 나폴레옹이 실제보다 더 우월한 풍채를 가지고 등장하기도 하죠. (나폴레옹의 키와 관련된 일화들은 아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볼 자화상은 조금 다릅니다.
300년 전 자화상으로 유명해진
조셉 뒤크레
짜잔- 어떠한가요? 우리의 예상과는 꽤 다르죠?
자신을 보고 놀라움에 터져 나오는 우리의 감탄사가 시끄럽기라도 한다는 듯이 쉿- 하고 쳐다보는 포즈의 이 사나이. 엄격, 근엄, 진지함 가득인 초상화의 세계 속에서도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자화상으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 화가는 바로 프랑스 궁정화가 조셉 뒤크레(Joseph Ducreux, 1735-1802)입니다.
그가 그린 다른 자화상들도 한번 볼까요?
(좌)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자화상 / (우) 놀란 듯한 두려운 표정의 자화상 조셉 뒤크레, 하품하는 자화상 화면 너머의 우리에게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듯한 뒤크레, '오잉?' 하며 깜짝 놀라고 있는 뒤크레, 그리고 한껏 쭈욱- 기지개를 하며 입이 찢어질 듯 하품하는 뒤크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초상화, 자화상들과 너무나도 다른 이색적인 포즈와 익살스러운 표정이 놀랍지 않나요? 마치 현대의 화가가 18세기의 화풍으로 재해석한 그림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들, 놀랍게도 300년 전 자화상이 맞습니다. 지금 바로 몸을 움직이며 우리에게 말을 걸 것만 같은 생동감 넘치는 사실적인 표현이 놀랍지 않나요? 흡사 사진이라 해도 믿을 것만 같습니다.
조셉 뒤크레는 사실 그리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는 아닙니다. 현대에 이르러 그의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 듯한 초상화가 다시 재조명을 받으며 거론되곤 하지요. 천편일률적인 셀카, 사진들에만 익숙한 현대인의 눈에도 그의 그림들은 제법 신선하고 새롭습니다. 이러한 즐거운 쾌감을 안겨줄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도 그의 그림들은 눈여겨볼만 합니다.
초상화의 불문율을 깨다
앞서도 살짝 언급했듯이, 사실 초상화에서만큼은 사실적인 묘사가 거의 금기시되곤 했습니다. 초상화의 주인공을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표현한 그림이 곧 잘 그린 초상화이다, 라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로 자리 잡았다고 할까요. 물론 지금의 우리의 눈에는 그러한 그림 속 인물들이 마치 '생동감은 잃었지만 잘 박제되고 보존된' 존재처럼 보이긴 하지만요.
그 금기를 깨었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받은 인물이 바로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 렘브란트입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1640 렘브란트 역시 뒤크레 만큼이나 초상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화가입니다. 특히 자신의 자화상을 생애별로 여러 점 남겨 우리의 이목을 끌기도 하지요. 한때 잘 나가는 궁정화가였던 그는 한 초상화 작업 하나로 인해 아무도 찾지 않는 몰락한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의 대표작, <야경> 또는 <야간 순찰>이라는 그림이지요.
아, 원제는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의 민방위대>입니다. 배경 또한 한밤이 아니구요.
렘브란트, 야경, 1642 렘브란트는 햇빛 속으로 행진해오는 민방위대 병사들을 초상화로 그려냈습니다. 틀에 박힌 구도를 탈피하고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훌륭하게 활용한 이 그림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룹 초상화의 한 획을 그은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당시의 반응은 싸늘했죠. 주문자였던 민방위 대원들은 자신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웅장하게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다소 어수선하고 어두침침한 그림은 그들의 예상 밖이었죠.
심지어 이들들 중 몇몇은 어둠에 가려지거나 희미하게 처리되어 누가 누군지조차 잘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대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고, 렘브란트에게 각자의 몫을 지불하지 않으려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렘브란트는 한동안 곤욕을 치렀고 그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좌) 조셉 뒤크레가 그린 마리 앙투와네트의 초상, 1769 / (우) 루이16세의 마지막 초상, 1793 이와 달리 조셉 뒤크레는 초상화가로서 비교적 평안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자화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다소 개구지게 그린 것과는 달리 그의 공적인 초상화들은 꽤 평범(?)합니다. 그가 의뢰를 받아 그린 마리 앙투와네트의 초상화를 한번 보세요. 전형적인 초상화인 데다 그녀를 아주 우아하고 고풍스럽게 그려냈지요? 당연히 이는 앙투와네트의 마음에 쏙 들었고,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작 지위와 '퀸 오브 퍼스트 페인터'의 영예를 얻게 됩니다.
그렇게 궁정화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그는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기 전 런던으로 옮겨 갔고 그곳에서 루이 16세의 마지막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지요.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깨는 재기 발랄함과 화가로서의 실력마저 고루 갖춘 다재다능한 화가인 듯합니다.
300년 전 초상화에게서 배우는, 나다운 구석
인상학(Physiognomy)에 관심이 많았던 조셉 뒤크레. 인상에 대한 그의 관심, 즉 사람의 외모, 특히 얼굴의 모양과 선이 내면의 성격을 드러 낼 수 있다는 믿음은 그의 따뜻하고 개성적인 초상화를 그려내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셉 뒤크레, 자화상, 쉿 예컨대 <자화상, 쉿>은 손가락으로 입을 대고 침묵을 요구하는 표정과 몸짓을 통해 그림 속 남자가 신중함을 중시하는 성격을 지닌 것처럼 느끼게 묘사하고 있지요. 이전의 증명사진 또는 박제된 인물 같은 초상화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부분들이겠지요?
이와 같은 개성 만점 자화상으로 뒤크레는 천편일률적인 전통적인 초상화의 제약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대의 사회 문화적 흐름에 반하지 않고 응하며, 자신의 주관과 시대의 요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였죠. 그랬기 때문에 그의 그림들은 시대가 지나도 사람들에게 외면받지 않고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유행이라는 것, 사회의 문화적 흐름이라는 것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 따르고 그 문화에 적절하게 반응하며 발맞추어 가는 것은 분명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개성, 즉 '나다운 구석'을 유지할 수 있다면 빠르게 변화하고 바뀌어가는 이 시대 가운데 'irreplaceable', 즉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실마리를 조셉 뒤크레의 그림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주류를 뒤따르는 경주마와 같은 삶이 아닌, 독불장군처럼 자신만의 색을 주장하는 삶도 아닌,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부러지지도 희미해지지도 않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300년이 지나도 대체 불가능한 이 멋진 그림에서, 나다운 구석,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 우리니까요.
글. 아트소믈리에 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