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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밤 Sep 27. 2020

나의 달콤하고도 친애하는 적에게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장미>, 달콤함 뒤에 숨겨진 씁쓸한 뒷맛

Sweet Sorrow, Bitter Joy


Brooke Lark, Unsplash
빵만 있다면
웬만한 슬픔은 견딜 수가 있다

-프랑스 속담


저의 디저트 사랑은 대학교에 입학하고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빵이라곤 아버지께서 퇴근하실 때 사다 주신 당신 취향의 빵들이 전부였던 제게, 대학로 카페에서 풍겨 나오던 디저트 굽는 냄새는 정말이지 신세계였습니다. 형형색색의 아기자기한 마카롱, 케익, 타르트까지.. 와, 세상엔 단팥빵, 밤식빵, 카스테라 말고도 맛있는 빵이 정말 많구나! 하며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과제 한다, 조모임 한다'를 핑계로 카페 문턱을 들락날락거렸죠.


그렇게 주 목적이 레포트를 쓰기 위함인지, 그저 당 충전을 위함인지 모호했던 즐겁고 명랑한 디저트 모험은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쭉 이어졌습니다.


"I Need Cake, because it's MONDAY"  /  Toa Heftiba, Unsplash

특히나 직장인의 삶에서 디저트는 삶을 버티게 해주는 최소한의 방공호였습니다. 그날따라 일이 너무 많아 야근을 해서, 왠지 몸이 으슬으슬 춥고 아파서,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월요일'이라서, 퇴근길엔 한쪽 손에 조각케익을 들고 팔랑팔랑 집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빵만 있다면 웬만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는 프랑스 속담처럼, 좀처럼 달콤할 수 없을 것 같은 날도 디저트와 함께 포근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달까요.


어느 순간, 똥배..라는 것이 나오기 전까진 말입니다.


Nathan Bingle, Unsplash

먹는 양도 비슷하고 운동 안 하는 것도 비슷(흠흠..)한데 왜 몸무게는 같고 배는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좀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리라- 스스로를 위로하고 애써 외면해보기도 하면서요. 그러나 이내 곧, 올록볼록 낯설게 만져지던 그 살들이 이젠 제 몸의 일부가 되었음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나도 이제 똥배가 생기는구나.. 이렇게 중얼거리자 친구들은 그런 말 함부로 했다가 돌 맞는다며 함구령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남몰래 그 이유를 찾아 나섰습니다.


운동과 몸 관리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에게 SOS를 청한 결과, 원인은 사실 너무나도 간단했습니다. 우리 몸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당 분해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그래서 똑같이 먹고 똑같이 움직여도 체형의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힘들고 외로울 때면 날 불러. 언제나 곁에 있을게'라고 했던 그 달콤하고도 당堂당糖한 디저트 녀석들이 바로 범인이었던 겁니다. 친애하는 소울메이트인줄로만 알았더니, 상냥한 겉모습과 감언이설(?)로 쥐도 새도 모르게 내 몸을 해치고 있던 적군이었을 줄이야..!


Sweet Sorrow, Bitter Joy(달콤한 슬픔, 씁쓸한 기쁨)이라고 했던가요. 디저트의 이러한 배신, 반란을 경험한 이는 흡사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장미처럼 아름답지만 위험한 그림


여기 우리의 논의를 확장시켜 줄, 달콤하지만 씁쓸한 뒷맛이 있는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로렌스 앨마-태디마(Lawrence Alma-Tadema, 1836-1912)의 대표작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장미>라는 작품입니다.


로렌스 앨마-태디마,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장미, 1888

날씨 좋은 화창하고 맑은 날, 성대한 야외 연회가 열렸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화면 가득 아름답게 흩날리고 있는 분홍빛 장미 꽃잎들. 위에서 아래로, 좌우로 휘날리며 화면을 곱게 수놓는 꽃잎들은 마치 팬케이크 위에 곱게 뿌려지는 슈가 파우더처럼 숨 막히게 달콤하고 찬란하게 빛납니다.


그 향기는 또 말해 무엇할까요. 갓 꺾은 생화로 만든 꽃다발에 코를 파묻은 듯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강한 장미향이 그림을 넘어서까지 풍겨오는 듯한데요. 소복이 쌓인 꽃잎들 사이에서 그 향기에 취해 춤추듯 뒹구는 사람들과 그 뒤편에서 웃으며 여유롭게 이를 바라보는 이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이지 않나요?


그러나 이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사실 이 장면은 그리 평화롭지도 달콤하지만도 않습니다.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로마의 악명 높은 폭군 헬리오가발루스 황제가 연회에 초대한 이들을 꽃잎으로 질식사시키고 있는 장면을 역설적인 아름다움으로 그려낸 그림입니다.


(좌) 그림 부분 확대-눈 앞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헬리오가발루스 황제 /  (우) 헬리오가발루스(또는 엘라가발루스)의 흉상(bust of Elagabalus)

헬리오가발루스(또는 엘라가발루스)는 로마 제국의 23대 황제로, 기이한 행동들과 도를 넘어선 만행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친할머니를 비롯한 친지들에게 폐위 및 암살당하기까지 했을까요.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일화를 살펴보자면 연회에 초대한 이들에게 유리로 만든 음식을 대접하거나, 또는 음식에 거미와 말똥을 섞어 내어놓는 등 가학적인 장난을 일삼았으며 술과 향락적인 생활을 굉장히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바로 오늘의 그림 속 장면이지요.


매일같이 화려하고 난잡한 연회를 즐기던 헬리오가발루스 황제는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꽃잎이 쌓이사람이 죽을까?'


이 단순하고도 끔찍한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그는 궁전에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술과 여자, 춤과 음악..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은 술과 흥에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됩니다. 그들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이윽고 황제는 가짜 천장에서 꽃잎을 떨어트리기 시작합니다.


(좌) 왼쪽의 가짜 천장에서 꽃잎들이 쏟아지고 있다  /  (우) 속수무책으로 꽃잎들 사이로 파묻히는 사람들

한 잎, 두 잎.. 처음엔 무르익은 분위기를 더욱 로맨틱하고 극적으로 고조시켰을 겁니다. 천장에서 눈송이처럼 내려오는 장미꽃을 보며 손님들은 점점 더 흥에 겨웠겠지요. 그러나 갈수록 꽃잎의 양은 많아지고 바닥에 쌓이는 것을 넘어 꽃잎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뒤엉키고 깔리기에 이릅니다.


자신들의 코와 입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어오는 꽃잎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불현듯 그들은 죽음을 직감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화려하고 달콤한 축제의 장이 아닌, 아름다움을 가장한 추악하고 끔찍한 학살의 현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림 속 사람들의 모습이 이제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나요? 꽃향기에 취해 즐거워하는 모습이 아닌, 영문을 모른 채 허우적대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모습인 것이지요.


더욱 섬뜩한 것은 이들의 뒤편에서 이 광경을 평온하게 바라보며 그들만의 잔치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와 그의 측근들의 표정입니다. 자세히 한번 살펴보세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얼굴과 자세로 관람하듯 바라보고 있군요. 한쪽 옆에서는 이들을 위한 음악마저 연주되고 있고요.



이 그림을 그린 로렌스 앨마-태디마는 고전적인 테마에 관심이 많았던 화가였습니다. 특히 건물과 풍경의 세부묘사에 탁월했으며 '대리석의 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섬세한 질감 처리가 뛰어났지요. 게다가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서 사실적이고 실제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고 합니다. 이 작품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실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일화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꽃잎은 '제비꽃과 그 외 꽃들'이지만, 로렌스는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장미꽃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가 작업 중이던 영국은 장미가 철이 아니었지요. 그냥 상상해서 그려도 되지 않나 싶지만, 그는 남프랑스에서 4개월간 매주 장미꽃을 공수해왔고 직접 실물을 보며 그려나갑니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실제 장미꽃잎을 하나하나 떼어 붙인 것처럼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작가의 노력과 그로 인해 탄생한 걸작의 아름다움도 놀랍지만, 무엇보다도 이 그림에 숨겨진 스토리가 주는 의미가 섬뜩해서 제겐 더 인상에 남는 작품입니다. 한두 번의 달콤한 끌림, 그 이면에서 마주하게 되는 잔인한 결말.. 음, 어디선가 이미 겪어본 적 있는 익숙한 레퍼토리 같은데요. 저의 달콤하고 친애하는 적으로부터 말입니다.





나의 달콤하고 친애하는 적


로렌스의 저 그림을 보며 왜인지 모르겠지만 새하얀 설탕에 파묻혀 허우적대는 저 자신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밥 숟가락으로 매일 설탕을 몇 숟갈씩 퍼먹거나, 하루가 멀다 하고 당분을 폭풍 흡입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알게 모르게 제 몸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테지요. 단 걸 줄여야지,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먹어야지, 하던 차에 덜컥 늘어나버린 뱃살을 마주하고선 꽤나 충격을 받았나 봅니다.


돌이켜보면 이전에도 저에겐 수많은 '친애하는 적'들이 존재해왔습니다. 당장 몸이 편하자고 해야 할 일을 미루게 하는 '게으름',  나중에 하지 뭐- 지금 이게 더 중요하고 급해! 하며 스스로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소홀히 대하게 했던 '효율성을 가장한 무관심', 인생에서 꼭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 줄 알면서도 지키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았던 '귀찮아하는 마음'까지.


지금 당장의 편안함과 안락을 위해 미래의 자신에게 빚을 내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이따금씩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나에게 더 묻지 말아요(Ask No More), 1906

돌아보면 디저트의 유혹에 가장 많이 빠졌던 때는 삶에 대한 낙관이나 희망이 부족했을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지도 못했고 그럴 힘도 없었지요. 그저 순간의 즐거움에 매몰될 뿐이었달까요. 그러다 보니 게으름, 무관심, 귀찮음, 우울과 같은 감정들에도 쉽게 빠졌던 것 같습니다.


이 친애하는 적들의 공통점은 '사소한 몇 번의 선택이 그 순간에는 더 달콤하고 매혹적으로 보이기에 그저 내버려 두게 된다'는 것과 '그 사소함들이 모여 결국은 자기 자신을 갉아먹게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나를 파괴하는 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될 대로 되라지, 인생 뭐 있나' 하며 흘러가게 두었을 때 그 결과는 과연 어떠할까요. 헬리오가발루스의 연회장에서 눈 앞의 쾌락에 취해 꽃잎에 잠겨 죽어가던 사람들이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리는 순간입니다.


Egyptian Chess Players, 1865

달콤하고도 친애하는 적들에게 당하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려보아야겠습니다. 눈을 가리고 코와 입을 틀어막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기들을 만들어 두어야지요. 가장 강력한 것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다. 우리는 이를 '자존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스스로를 파괴하고 갉아먹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가짜 천장 아래서 화려한 꽃잎 사이로 보이지 않는 적들에게 휘둘리는 삶이 아닌, 자신이 바라고 생각하는 대로 걸어가고 살아 숨 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 시작의 일환으로 요즘은 달콤한 커피와 빵을 줄이고 대신 신선한 채소 위주의 요리를 해 먹곤 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운동도 다시금 시작하고 생활도 정돈해나가며 저 자신을 챙겨보려 합니다. 어찌 보면 별 볼일 없고 소박하지만, 나를 위하고 존중하는 하나의 방식인 셈이지요.


나의 달콤하고도 친애하는 적에겐 조금 미안한 이지만, 우린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 가는 중입니다.



글. 아트소믈리에 지니



*p.s.

오랜만에 글을 썼더니 허기가 져서 중간에 간식을 먹고 말았습니다. 지인이 맛보라고 준 무화과 잼인데 정말 '맛만' 봤답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요? : )


지난번 빌보 편(https://brunch.co.kr/@white-jinny/84)에서도 그렇고, 이렇게 언행불일치의 아이콘이 되어가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이 정도 인간미는 있어야지 않겠습니까.(..라고 마무리해봅니다.)


여튼, 모두 예술적인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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