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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밤 Sep 04. 2022

영원한 정류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든 머무를 수 있는 정류장이 되어 줄게

그 시절, 우리들의 아지트를 찾아서


  유년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기를 고르라면 초등학교 3-4학년 즈음일 것이다. 그때 엄마는 동네에서 공부방을 했다. 잘은 몰라도 꽤 실력이 좋았던 모양이다. 시작은 나와 동생 친구들을 데리고 한 두 명 가르치는 작은 규모였지만 꼼꼼하게 잘 봐준다고 입소문이 나 갈수록 학생들이 몰렸다. 내 또래들도 점차 늘어났는데 같이 공부하면서 어쩌다 친해진 5명이서 공부방 끝나고 매일 놀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남자 둘, 여자 셋으로 이뤄진 우리 5인방은 말 그대로 동네방네 누비고 다녔다. 지금처럼 휘황찬란한 키즈 카페는 없던 시절이라 놀이터, 남의 집 대문 앞, 골목 사이사이 등 보이는 대로 자리 잡아 놀기 바빴다. 땅따먹기, 술래잡기와 같은 것들을 하기도 했지만 주로 하릴없는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자애들끼리 분꽃 씨를 까서 뽀얗고 하얀 가루를 빻아 볼에 찍어 바르거나 봉숭아 꽃물을 손톱에 들일 때면, 남자애들은 그런 우리를 괜히 슥- 밀치고는 자전거를 타며 도망갔고, 그럼 우린 바짝 약이 올라 씩씩 거리며 뒤쫓는 식이었다. 그러다 종종 출몰하는 소독차가 희멀건 연기를 뿜으며 지나가면 온갖 허세를 부리며 뒤쫓다가 켁켁 거리면서 돌아오길 반복했다. 온 동네 개들은 왜 자꾸 왔다 갔다 거리냐며 컹컹 짖었고 그 모습이 우스워서 한참을 깔깔 웃었다.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우리 모습과 그 동네를 정말 많이 좋아했다.


  하루는 한 명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비밀 장소 하나 알려줄까? 시답잖은 이야기라도 '비밀'이라면 눈빛부터 달라지는 호기심 왕성한 나이였다. 우린 뜨거운 콧바람을 내뱉으며 빨리 알려달라고 채근했다. 그 앤 으스대며 앞장섰도착한 곳은 그 친구네 집 앞. 대문을 들어서면 두 채의 가옥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는데 큰 채는 친구네 가족이 살고 작은 채는 세를 주기 위해 비워둔 상태였다. 이게 뭐가 비밀스럽단 말인가 갸우뚱하는 우리를 뒤로 한 채 친구는 계단을 타고 큰 채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모서리 부분으로 가더니 심호흡을 한 번 하곤 작은 채 옥상 쪽으로 점프! 고작 4-50cm 남짓한 거리였지만 두 옥상 사이를 뛰어넘는 모습이 괜히 멋있고 스릴 있어 보였다. 마치 그것이 성인식이라도 되는 양 한 명씩 결연한 표정으로 타 넘었고, 이후로 빈 옥상은 정말로 우리들만의 비밀 아지트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우린 각기 다른 중학교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5인방과는 소식이 끊겼다. 마음만 먹었다면 다시 연락을 해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러지 못했다. 예쁜 추억은 아름다운 그대로 놔두는 게 맞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 동네는 자꾸만 생각이 나서 고향에 내려올 때면 종종 엄마와 함께 찾곤 했다.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누비던 골목골목, 손때 묻은 놀이터 정글짐과 시소 그리고 놀다 지쳐 누워있던 그 옆 등나무 벤치, 아슬아슬 넘던 친구네 집 옥상까지. 왠지 여긴 언제까지나 기억 속 모습 그대로 머물러있을 것만 같았다. 영원히 시간이 멈춰져 있는, 그래서 언제든 힘들고 그리울 때 찾아가면 기다렸다는 듯 맞이해주는 그런 곳일 거라고 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황금빛의 화가가 그린 비밀 아지트


  일찍이 많은 예술가들에게도 심신이 지치고 위로가 필요할 때면 찾는 장소가 있었다. 스위스 알프스에서 산책과 명상에 잠겼던 니체, 월든 호숫가에서 사색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외에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자신만의 비밀 아지트를 마련해둔 이들은 많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예술의 도시 빈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언젠가부터 여름이면 오스트리아 북부에 위치한 아테제 호수로 훌쩍 떠나곤 했다.


구스타프 클림트, 아테제 호수, 1900

  아테제 호수(또는 아터 호수, attersee)는 한적하고 조용하여 나지막한 호수의 물결만이 방문객을 반기는 그런 곳이었다. 바로 그 점이 클림트의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주인공이 바쁜 일상에서 도망치듯 어릴 적 살던 시골을 찾던 것처럼, 그도 호화롭고 번잡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클림트는 호수 근처에 별장을 얻어 자주 어울리던 플뢰게 자매들과 매년 이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매일 아침 6시면 호숫가 근처를 산책하며 자연 속을 거닐었고 온종일 탐구한 풍경은 자연스레 캔버스에 옮겨졌다. 햇빛에 반짝이는 호수의 윤슬, 걸음을 때마다 시시각각 일렁이는 물그림자, 상쾌하게 눈을 간지럽히는 연두와 초록과 노랑빛의 나뭇잎들. 클림트는  모든 게 무척이나 좋았나 보다. 그렇게 그려낸 풍경화가 평생 그린 작품의 약 1/4에 달하니 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1908-1909 / 아테제 호수의 캄머 성 1, 1908-1909

  <키스>나 <유디트>, <생명의 나무>와 같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대표작들에 비하면 그의 풍경화는 소박하고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정사각형 캔버스에 담긴 이 작품들은 실제 풍경을 납작하게 눌러서 그대로 찍어낸 듯한, 입체감과 원근법이 잘 느껴지지 않는 2차원의 평판화 같다. 구도 차제만 봤을 땐 단조롭고 무심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색감을 잘 살펴보면, 아주 가는 붓으로 선명한 색들을 모자이크처럼 촘촘히 점찍듯 표현하여 생동감을 더하고 있음을  수 있다. 마치 형형색색의 실로 한 땀 한 땀 정성껏 수놓은 아기자기한 태피스트리 장식을 보는 것만 같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 흐뭇하다.


구스타프 클림트, 아테제 호수의 캄머 성, 1909 / 캄머 성 공원의 잔잔한 호수, 1899

  클림트의 풍경화를 가만히 보다 보면 인물이나 특별한 스토리가 없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어떠한 사람이나 움직이는 대상도, 특정 상황이나 은유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정지된 자연 그 자체만이 존재할 뿐이다. 화려하게 빛나는 여인들, 신화 속 인물들의 상징적인 모습을 화폭에 담았던 주요 그림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한 사람의 화풍이 동시대에 이렇게 확확 바뀔 수 있는 걸까? 빈의 화가, 황금빛의 화가라 불리던 클림트는 왜 매년 이곳을 찾아 풍경화에 몰두했던 걸까?


  어쩌면 그에게도 잠시 숨 쉴 구멍, 비밀 아지트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빈의 향락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즐기며 여러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던 클림트지만 한편으론 그러한 문화에 조금은 지쳐버린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따금씩 사람들 사이를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도 묻지도 않는 잔잔하고 과묵한 자연. 그 속에 파묻혀 스스로 재충전하고 차분히 마음을 정돈할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짐작해본다.


구스타프 클림트, 아테제 섬, 1900

  클림트의 풍경화에선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고요의 미학이 묻어난다. 반짝반짝 빛나진 않아도, 수수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이 그림들은 '쉼'에 대한 인간 본연의 갈망을 자극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면 마치 내가 아테제 호숫가에 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멍하니 잔물결을 보고 있을 때 느껴지는 침잠의 순간. 영원히 이 순간을 붙잡고 싶은 아릿함. 그러한 감정들을 붓질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았을 클림트의 호수 전경들은 그래서 자꾸만 더 눈길이 간다. 어쩌면 우린 누구나 내면에 자신만의 아테제 호수를 간직하며 살고 있진 않나. 생각만 해도 힘이 되는, 다시금 머물러있고만 싶은 그런 곳 말이다.




영원한 정류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 다시 고향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아주 오랫만에 어릴 적 그 동네를 찾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향한 그곳엔 아쉽게도 예전 모습은 없었다. 우리들의 아지트였던 친구네 주택은 이미 삐까뻔쩍한 새 아파트로 바뀌어 있었고 내가 살았던 집도 곧 재개발 예정이라 철거 직전 상태였다. 이제 곧 허물어질 텅 빈 단지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여기만큼은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항상 정겹고 추억 가득한 그런 곳일 거라고, 그러니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위로받고플 때 달려가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반겨주리라 막연히 믿었는데. 심장이 뱃속 가장 깊은 곳까지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잠시 머물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정류장을 상실한 기분이었다.


  그러고 며칠 뒤, 간만에 모두 모인 가족 식사 자리가 있었다. 식사 전 기도를 해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눈을 감고 엄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순간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우리 딸, 아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정류장 같은 가족이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엄만 내 마음을 알아차렸던 걸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을까.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정류장을 그날 엄마의 기도 속에서 다시금 찾았다.


구스타프 클림트, 캄머 성의 공원 길, 1912

  살다가 문득 그럴 때가 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어딘가 정말로 영원이라는 정류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바라게 되는 그런 날. 예컨대 아무런 걱정 없이 친구들과 뛰놀던 어린 시절, 추운 겨울 붕어빵 하나를 손에 쥐고 호호 불며 엄마 뒤를 따르던 시장길, 짝사랑하던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을 해볼까 말까 고민하며 설렘으로 지새우던 밤, 유독 기운 빠진 어느 날 우연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을 때 총총이 빛나는 별들을 보며 위로받던 순간. 찰나가 영겁처럼 느껴지는, 그래서 기억 속에 남아 지칠 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인생의 정류장'이 그리워지는 날 말이다. 물론 영원이란 건 없기에 때론 어떤 정류장들은 보내줘야만 한다. 잊혀지고 지워지며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세월을 언제까지고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곧 사라질 어릴 적 동네에 다녀온 뒤 공허한 마음에 괜히 갔다는 생각을 했었다. 영원한 정류장은 결국 없는 건가 하고 낙담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새로 하나 만들지, 뭐' 하고 마음먹었다. 엄마의 기도가 내겐 새로운 정류장이 된 셈이다. 언제든 쉬어갈 수 있는 '가족'이라는 정류장, 그리고 언젠가 나도 부모가 되면 그러한 정류장이 되어주어야겠다는 다짐.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그립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그만큼 그때를 행복하게 보냈다는 반증일 테니. 다시 돌아가 되찾을 수는 없지만, 결국 사라져 버리고 말겠지만 찬란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산다는 건 큰 축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결국 중요한 건 현재를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 여기'를 성실히 만끽하고 충만하게 보낸다면 이 순간도 언젠가는 내 인생의 중요한 정류장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그러니 많이 만들어두어야겠다. 그리고 되어주어야겠다. 누군가의 영원한 정류장이.


어딘가 정말로
영원이라는 정류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 요조,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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