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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밤 May 07. 2020

혼자 있는 시간의 힘, 그림에서 답을 찾다.

알프레드 스테방스 그림 속 사색하는 여인들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
알프레드 스테방스, The Bath(목욕), 1867

살면서 이상하게도 특정 시간, 특정 일을 하는 도중에 문득 생각나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해질 무렵 바닷가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떠올린다던가, 밤하늘의 일렁이는 별빛을 보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꺼내보곤 하는 것 말입니다. 저는 요근래 자꾸만 떠오르는 그림, 아니 그림 속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혼자 목욕을 즐기며 사색하는 여인,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밤에 창밖의 은하수를 바라보는 여인,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는 여인,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여인.. 아마도 지금 저의 상황과 닮아서인 걸까요?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오랜 자취생활을 통틀어 오롯이 혼자 자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처음엔 조금 무섭지 않을까?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곤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혼자 있는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이런 시간이 인생에서 그리 많지는 않을테니 말이죠..하하.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아는 듯한 이 그림 속 여인들이 자꾸만 생각나는 며칠이었나 봅니다.

누구냐구요? 바로 알프레드 스테방스(Alfred Stevens)가 그린 '홀로 사색하는 여인들'이랍니다.




거울 보는 여자, 홀로 사색하는 시간 속으로
Girl Looking at the Mirror :: 소녀는 거울 속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수줍게 뒷치마를 잡은 손가락에 시선이 갑니다.


여기 한 소녀가 거울을 보고 있습니다. 20살이 되었을까요? 아주 앳되어 보이는 아가씨입니다. 검지 손가락을 살짝 아랫입술에 대며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을 쬐며 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중이었나 본데.. 갑자기 거울은 왜 보게 되었을까요? 한번 추측해봅시다. 아마도 저 책은<제인 에어>나 <오만과 편견>과 같은 소설이 아니었을까요? 책을 읽던 중 자신도 모르게 감정 이입이 되어 주인공이 된 마냥 거울을 보고 표정을 지어보던 중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책과 함께 소녀의 볼처럼 빨갛게 물든 예쁜 꽃을 몰래 꺾어 선물로 준 어떤 소년을 떠올리고 있는 중일지도요.


알프레드 스테방스는 벨기에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주로 활동한 화가입니다. 그곳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네, 베르트 모리조, 드가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분을 쌓으며 교류하였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느낄 수 있죠. 스테방스는 '파리의 상류층 여인'을 모델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는19세기 파리 여성들의 화려하고 섬세한 모습들과 그 당시의 패션 등을 잘 관찰할 수 있는데요. 화려한 옷의 색감과 디자인,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가구와 장식품, 우아함의 극치인 벽지들이 우리의 눈길을 제법 사로잡지요?


(좌) La Boule de Verre(유리공)  /  (우) La Psyche, 1871


스테방스의 그림 속 여인들은 유독 거울을 바라보는 모습들이 많습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꿈꾸듯이 몽롱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거울을 통해 그림 밖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죠. 또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지도 모른 채 생각에 잠겨있기도 합니다. 스테방스는 거울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 전에 우리 자신은 거울을 왜 보는지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떨 때 거울을 보시나요?
그리고 거울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여러분은 어떨 때 거울을 보시나요? 그리고 거울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얼굴에 뭐가 묻었나 볼 때, 화장하거나 세수할 때처럼 무의식적으로 보는 경우가 주로 대부분일텐데요. 저는 스테방스의 거울 보는 여인들을 그린 그림을 보며, 나이를 먹어가고 바쁜 일상에 등 떠밀려가는 나의 하루하루에 홀로 잠잠히 거울을 보는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The Parisienne Japonaise, 1872 / 그 시기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러했듯, 스테방스도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포니즘적인 요소를 그림에 많이 그려넣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거울을 참 많이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 내 얼굴을 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거울을 통해 내 방 구석구석을 보는 것이 참 신기했거든요. 그냥 내 눈으로 봤을 땐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침대, 책장, 인형들이 거울을 통해 보면 마치 낯선 어딘가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거울 나라의 앨리스처럼요..!) 평소엔 너무나도 익숙한 내 얼굴도 거울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렇게 생겼었나- 하는 기시감마저 들기도 했지요. 그리고 내 감정에 따라서 거울 속 내 얼굴이 다르게 보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거울은 마음의 창'이라고도 하지요. 나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겠을 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거울을 한번쯤 말없이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테방스의 그림 속 여인들처럼요.


Evening by the Sea, 1887  / 점점이 박힌 별과 달빛 아래서 무얼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살짝 상기된 듯한 표정과 초승달이 작품의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스테방스는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것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화가"로도 잘 알려져있습니다. 스테방스의 그림에서 거울은 파리 여인들의 마음 속 갈망을 드러내고 있죠. 집 안을 화려하고 멋지게 꾸며놓아도 채워지지 않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열망과 자신의 모습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다른 여인들과 비교해보고자 하는 욕망이 담겨 있다고 해요. 흡사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거울을 통해 온전한 나 자신만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거울 속 내 모습이 조금은 더 평온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


그런데 여러분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사실 저는 혼자 살면 아-주 여유롭고 한가할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더군요. 바빠요.. 네 아주 바쁩니다..(헥헥)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에요. 그러한 일상 가운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길러보아야겠지요? 먼저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소개해드릴게요.


Portrait of a Young Lady, 1906
1. 네.. 바로 책 읽기입니다. 에게.. 생각보다 별 거 없다구요? 너무 타박하진 말아 주세요. 사실 작년까지는 제대로 책 읽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정말 바쁘게 살아왔거든요.. 정말 한 달에 한 두번, 날 잡고 친구와 저 멀-리 교외의 카페에 가서 맘 먹고 책을 읽지 않는 이상은 손에 책을 잡을 수조차 없었어요.

책을 읽지도 못하면서 책은 또 왜 그렇게 많이 샀는지.. 올해 초 이사하면서 책 박스만 이삿짐의 반을 차지했답니다. (다 정리하지 못한 책들은 아직도 박스째 담겨 있어요. 어찌할까요..)

새로 이사한 이 집은 책 읽기에 최적화된 채광을 가지고 있어요. 이전에 책 읽으려고 카페를 물색할 때도 항상 '큰 창이 있는가'가 최우선 고려사항이었거든요! 통유리로 된 창이 있는 자리에 앉아 라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노라면 진짜 말그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독서에 몰입할 수 있었죠. 이제는 멀리 안가고 집에서도 그 행복을 누릴 수 있어서 참 좋아요!



Portrait de Jeune Femme
2. 두 번째는글쓰기입니다. 저는 올해 목표 중 하나를 바로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삼았는데요. 이것에 대한 모험 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다음 에세이에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이거 생각보다 바쁘고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거더라구요. 하루에 한 편 쓰기가 본래 목표였으나 이제는 일 주일에 두 편만이라도.. 하면서 허덕이고 있답니다. 역시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 듯 해요.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고 때론 글 쓰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얻는 내면의 힘이 분명 있답니다. 그래서 글 쓰는 걸 멈추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에이- 오늘은 힘드니까 아무렇게나 쓰고 올릴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제 안의 '글 쓰는 자아'의 나무라는 듯한 헛기침 소리에 매일 한 두시간 조금씩 나눠쓰며 글을 완성해가고 있어요.(보통 깐깐한 녀석이 아니라서요..) 글쓰는 시간의 힘! 이것이 요즘 제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안다는 것은..


왼쪽 이 그림을 가장 좋아해요. 밤에 달을 보는 것이 취미거든요.  (좌) The Milk-Way  /  (우) Symphony en Vert


다시 스테방스의 그림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그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알고 있는 듯 해요. 사실 혼자 있는 여성을 그린 화가들은 스테방스 외에도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스테방스의 그림이 주는 울림이 있는 것은, 그림 속 그녀들이 끊임 없이 무언가를 사색하고 생각하고 공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자기 혼자 오롯이 있는 '지금, 여기'의 시공간을 결코 허투루 보내지 않는 듯한 느낌입니다. 혹자의 눈에는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것을 기다리는' 것만 같겠지만, 제 눈에는 그것조차 낭만적이게 여겨질 뿐더러 내면의 힘을 기르는 중인 것처럼 보이거든요. 한동안 이렇게 스테방스의 그림을 꺼내 먹으며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년에 스테방스는 건강상의 이유로 노르망디 해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가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주로 찾던 해변이었죠. 그곳에서도 붓을 손에 놓지 않았는데요. 바다, 항구 등을 주로 그렸고 해변에서 산책하거나 책을 읽는 여인들의 모습도 그림으로 많이 남겼습니다. 1906년 여든 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홀로 사색하는 여인들을 그리며,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도 사색거리를 던져주었던 화가 알프레드 스테방스. 그의 마지막 시기에 그려졌던 그림들을 감상하시면서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예술적인 하루 되세요-!


(좌) Seascape, 1880-1889 /  (우) Moonlight, 1894


글. 아트소믈리에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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