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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밤 May 12. 2020

모네의 정원을 까미유와 거닐다

클로드 모네 <파라솔을 든 여인>, <개양귀비꽃 들판>

정원에서 장과 보모와 함께 있는 카미유, 1873

안녕하세요? 초면에 인사드려요. 저는 모네 아내, "까미유"에요. 네, 맞아요~ 여러분이 아시는 그 인상주의의 창시자, 수련 연작으로도 유명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요! 쑥스럽지만.. 제가 그이의 아내랍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꽃구경도, 봄 나들이도 전혀 못하고 있다면서요? 아이 참..


자, 그러지 말고 저와 함께 가요! 오늘만큼은 특.별.히! 여러분을 모네의 정원으로 초대할게요.. 오세요! 얼른요!






까미유의 초대

생 라자르 기차역, 1878


 도착하셨어요? 긴 여행이었을텐데 눈 좀 붙이지 그러셨어요. 아~ 오늘 길의 풍경이 너무 예뻐서 잠잘 틈이 없었다구요? 그렇죠~ 모네와 제가 자리잡은 이 곳, 아르장퇴유로 오는 기차 밖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요. 모네와 전 1870년 결혼식을 올린 뒤 이곳으로 옮겨 살게 되었어요. 여기서의 삶은 모네에게 행복한 삶을 제공할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죠.



파라솔을 든 여인, 1875


어머! 잘 따라오고 계신거죠? 얼른 손님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 갔네요.. 참, 제 옆의 이 귀여운 꼬마 신사는 제 아들 장(Jean)이에요. 낯을 많이 가려서 제 뒤에 숨어있었어요. 엉거주춤한 모습이 너무 귀엽죠? 모네는 이 곳 아르장퇴유에서 저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어요. 무려 56점이나요! 나중에 이 그림과 비슷한 작품을 몇 개  더 그렸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저를 향한 모네의 감정만큼은 결코 비슷하지 않을 거에요.



아르장퇴유의 개양귀비꽃 들판, 1873


들판 위를 미끄러지듯 빨갛게 수놓은 개양귀비꽃들이 너무 매혹적이지 않나요? 양귀비꽃은 바람에 살랑이듯 흔들릴 때가 가장 멋지죠. 저희 남편도 종종 캔버스를 들고 이곳에 산책을 오곤 해요. 양손에 캔버스와 붓만 있다면 그에게는 모든 곳이 화실이랍니다.


잠깐, ! 그 꽃 꺾으면 안되지~




모네의 정원에 발을 내딛다

아르장퇴유, 화가의 집, 1873


드디어 도착했네요. 환영해요!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저희 세 식구가 살기에는 손색이 없는 아담한 집이랍니다. 저희는 정원에 계절마다 형형색색의 꽃을 볼 수 있도록 아름답게 꽃밭을 가꾸었어요. 햇볕은 또 얼마나 잘 드는지 아침이면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햇살에 반짝이는 꽃들로 매일매일의 일상이 기대될 정도지요. 이는 제 남편 모네에게 큰 영향을 주었어요. 세밀한 묘사보다는 특유의 선을 뭉개는 듯한 터치, 빛과 바람에서 받은 직접적인 인상을 녹여낸 색과 질감 처리.. 그림에서도 느껴지시나요? 제 남편 모네는 이곳에서 인상주의적 풍경 기법과 풍경 속 인물 표현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였고 이를 그림으로 남겼어요. 특히 저와 아들 장을 소재로 한 작품도 많이 그렸답니다.


장난감 자전거를 타고 있는 장 모네, 1872
모네 부인과 아이, 1875


그런데 시장하진 않으세요? 제 정신 좀 봐.. 얼른 오찬거리를 준비해올게요..^^


아 그런데 오늘 제 남편의 친한 벗인 에두아르 마네도 불렀어요. 괜찮으시죠..? 잘은 모르지만.. 여기 아르장퇴유의 집도 마네가 알아봐준 것 같아요.. 그의 별장이 이곳에 있거든요.(소곤소곤) 같은 인상주의 화가라 통하는 것이 있나봐요. 저희 그이를 잘 챙겨주고 예술적 교류도 잦아서 종종 저희 집에 놀러오곤 해요.



오찬, 1873

아~ 저는 햇살 좋은 날의 브런치 타임이 너무 좋아요. 뽀송뽀송하게 잘~ 말린 하얀 식탁보 위에 은은한 향기의 차와 먹음직스러운 갓 구운 빵, 제 아들 장의 발그레한 두 볼처럼 수줍게 익은 과일들.. 차린 것은 많이 없지만 꽤 근사하지 않나요? 그런데 저희 남편과 마네씨는 어디로 간걸까요? 잠깐 찾으러 다녀 올게요. 식기 전에 맛있게 드세요. 본 에피티(Bon appetite)!



모네의 벗, 마네

에두아르 마네, 아르장퇴유 정원에서의 모네 가족, 1874

어휴 정말.. 여보! 차가 다 식겠어요! 정원 정리는 그만하고 얼른 와요~ 어머, 죄송해요. 저희 남편이 이렇다니까요. 그림이든 정원정리든 하나에 꽂히면 다른 일을 잊어버리기 일쑤에요. 아빠를 기다리다가 지루해져버린 장은 제 옆에 털썩 누워버렸네요.


마네씨, 그런데 지금 뭐하시는 건가요~ 설마 이 모습을 그리고 계시는 건 아니죠? 이 그림은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저희 모네 가족의 모습이에요. 정말.. 화가들이란 못말려요.


사실 마네씨는 저희에게 참 고마운 분이에요. 저희 그이가 작품활동을 시작할 즈음 마네씨는 이미 이름을 날리던 화가였어요. 그래서 저희 그이가 이 세계에 발을 디뎠을 때 이름이 너무 비슷하다고 거리껴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내 둘은 각별한 사이가 되어 서로의 작품 제작 과정을 공유하며 교류하였어요. 특히  저희가 어려울 때 마네씨가 생활비를 꾸어 주거나 그림을 사주기도 하셨어요. 남편은 마네씨의 그림에도 큰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다시 그려보기도 하였지요.



바로 이 그림이에요.


(좌)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  /  (우) 모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위한 습작, 1865


왼쪽마네가 그린 <풀밭 위의 점심식사>인데요. 여러분들께는 이미 익숙한 작품이죠? 풀밭 위의 두 신사와 화면 너머를 보고 있는 듯한 나체의 한 여인이 피크닉을 온  장면을 그렸네요. 남편은 이를 좀 더 생생하게 그리고 자신의 장기를 살려서 그려내고 싶어했어요. 이번엔 모네가 그린 오른쪽을 보세요. 습작이긴 하지만, 빛의 화가라는 별명에 맞게 특히나 빛에 의한 음영을 잘 활용한 것이 보이시나요? 인물들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과감하게 배경을 물감으로 스케치하듯 불분명한 터치로 그려낸 것이 마네씨 그림과의 차별점이죠.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지금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분할된 상태로 전시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남편이 여러 습작과 연구를 통해 그려낸 작품이라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인상"(Impression)

인상: 해돋이, 1872

제 남편 모네는 그림의 주제나 형태 보다는 변화하는 순간 그 자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었어요. 빛에 따라 일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주는 인상을 포착하고, 이를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하였죠. 이것이 바로 지금 여러분들이 말하는 '인상주의' 사조인 것이겠죠?


아르장퇴유의 산책, 1873

제 얘기가 너무 길었네요. 저희 정원에서의 남은 시간은 이곳을 거닐며 마지막 봄의 나들이를 즐겨보시길 바라요. 산책을 하며 사색에 잠기기에 이곳 아르장퇴유는 더할 나위 없이 기가 막히거든요. 참! 여긴 햇살이 쨍쨍하니 저처럼 양산이나 모자 꼭 챙기시구요.  


이제 제 모네의 삶을 꼭 빼닮은 남편의 한 문장을 전해드리며 저는 이만 물러가볼게요.


코로나 블루로 잠시 빼앗긴 여러분의 일상에

빛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빛은 곧 색채이고,
색채는 곧 빛이다.

-클로드 모네




글. 아트소믈리에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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