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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밤 May 13. 2020

늘 그렇듯이, 엄마의 레시피는 맛있다!

앙리 마티스의 붉은 부엌, <붉은 색의 조화>


부엌에서 들리는 소리..


출처  Chinh Le Duc, Unsplash

부엌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신 적이 있나요?


{찹찹찹-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 퐁당! 무언가 냄비에 빠뜨려지는 소리, 때마침 치이익- 증기를 내뿜는 밥 짓는 소리, 그리고 그에 따라 더욱 분주해지는 발자국 소리까지..}


어릴 적에는 거실 소파에 눈 감고 누워 이러한 소리를 듣는 것을 참 즐겼던 것 같아요. 귀로는 엄마의 요리하는 소리를 듣고, 코로는 완성되어 가는 음식 냄새를 맡으며 '오늘 엄마의 요리는 무슨 맛일까?' 를 상상하는 즐거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그날 식사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지요.


한껏 올라간 어깨와 맞잡은 두 손에서 기분 좋은 여유가 느껴집니다.'맛있다!'라는 말을 들은 어머니의 모습처럼요! / 루마니아 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 1940

저희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참 좋으세요. 게다가 본인만의 음식 철학도 분명하셔요. 바로 <음식은 자고로 '엣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주 사소한 한끝 차이가 음식의 맛과 완성도를 더한다는 것인데요. 제가 보기엔 별 큰 차이가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과정들도 어머니에겐 음식의 '엣지'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게 참 신기하더군요.


예컨대,

김밥 안에 넣을 계란 지단에 '까나리 액젓'을 몇 방울 떨어트린다던가, 그냥 멸치 육수 대신 따로 받아 둔 '쌀뜨물'로 된장찌개를 끓이신다던가, 야채 샐러드에 드레싱 소스 대신 꼭 '두 가지' 버전의 발사믹 소스(이탈리아 여행 때 귀하게 모셔온!) '들기름'을 믹스한다던가 하는 것이지요. 특별할 건 없지만 이런 사소한 디테일이 엄청난 맛의 차이를 불러온다는 게 저는 참 신기했어요. 특히 이번처럼 요리에 실패했을 때는요..





언제나 그렇듯이,

엄마의 레시피는 항상 맛있다!


이렇게만 완성되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  출처  Alana Harris, Unsplash

네, 마파 두부가 갑자기 먹고 싶어 호기롭게 시작한 요리는 갈수록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답니다. 저 또한 요리에 대한 철학이 분명한데요. 바 <요리는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요리에 들어간 시간, 정성, 수고에 비해 먹는 건 순식간이니 그게 이상하게도 서럽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생각했죠. 요리할 때는 최소한의 수고로 최대한의 효용을 이끌어내자! 라고요.


게다가 레시피는 참고용일 뿐이야-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과 이상한 도전정신까지 있어서 계량 없이 소스를 넣는다던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재료를 넣어보곤 해요. (그런데 그게 자주 성공한다는 거! 그래서 창의적인 요리사라는 자부심이 없어지지 않 봅니다..) 그런 저에게 엄마는 "맛은 나름대로 그럴 듯하나 '엣지'가 없다는 게 안타깝도다" 하는 평을 남기시곤 하지요.


지금 우리가 알던 그 마티스만의 화풍이 아직 보이지 않는군요. 느낌이 꽤 색다르죠? / 저녁 식탁, 1897

이번 마파 두부는 제가 생각해도 그 '엣지'라는게 없더군요. 어머니의 고급진 요리 솜씨 덕분에 어려서부터 입맛만 높아진 저는 이렇게 그럭저럭 먹을만한 수준의 음식도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엄마에세 SOS를 청했죠!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굴소스를 아주 조금 첨가해보라는 그녀의 조언. 그리고 마법같이 마파 두부가 심폐소생(?)하는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레시피는 맛있다!





앙리 마티스의 붉은 부엌,

<붉은 색의 조화, Harmony in Red>


어릴 적 엄마가 요리를 하실 때면 옆에서 식탁 정리와 세팅을 도맡곤 했어요. 그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입니다. / 붉은 색의 조화(Harmony in Red), 1908

앙리 마티스의 <붉은 색의 조화>라는 그림을 보면 저는 항상 식욕이 돌고 군침이 생겨요. 잘 차려진 음식 하나 없이 그저 식탁을 정리하는 한 여인이 있을 뿐인데도 말이죠. 저에게는 왠지 이 그림이, 어릴 적 식사를 준비하시던 엄마의 부엌을 연상시키는 것만 같습니다. 부엌에서 들리던 소리, 맛있는 냄새, 그리고 그러한 엄마 곁에서 식탁을 정리하며 돕던 기억들이 떠올라서인가 봅니다. 다시 한번 그림을 보세요. 마치 그녀가 곧 있을 저녁 찬을 위해 요리를 하던 중 식탁을 꾸미고 정돈하는 모습처럼 보이지 않나요?


마티스는 왜 이 그림의 제목을 "붉은 색의 조화"라고 붙였을까요? 사실 여기에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숨겨져 있습니다. 원래 이 그림의 제목은 '붉은 색'이 아닌, <푸른 색의 조화>였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구매가 결정된 후 마티스에 의해 '붉은 색'으로 바뀌어 구매자에게 전달되었는데요. 푸른 색과 붉은 색. 완전 정 반대의 느낌으로 변신을 한 것인데.. 도대체 이 그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음.. '푸른 색의 조화'였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 초록색 찬장이 있는 정물, 1928

야수파였던 마티스는 강렬한 색감을 즐겨 사용하던 화가였습니다. 야수파가 무엇이냐구요? 야수파는 19세기에 지배적이었던 인상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사조입니다. 야수파는 '색채 혁명'이라 불릴만큼 색에 대한 강렬한 감정, 주관적인 느낌을 화폭에 담았는데요. 빨강, 초록, 파랑과 같은 원색을 화면에 전면적으로 배치를 하구요, 검은 윤곽선으로 색을 둘러싸서 또렷한 색감을 전달하는 것이 야수파 그림의 주된 특징입니다.

그런 마티스에게 창밖에 보이는 파란색, 초록색과 비슷한 느낌의 푸른 실내 배경은 아마도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푸른 색, 초록 색과 대비를 이루채도 높은 빨간 색을 벽지 및 식탁보에 전면 배치하고, 다시 붉은 색과 보색을 이루는 푸른 빛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무늬 그려 넣었습니다. 바로, 전체적으로 한층 강렬하고 극적인 색의 조화를 이루는 지금의 이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죠.


마티스가 다시 그려낸 붉은 부엌,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시나요?





자신만의 부엌에서 '삶'을 요리하


여러분의 부엌은 어떤 모습인가요?  /  목련이 있는 정물, 1941

마티스가 그려낸 붉은 색의 그림들은 '부엌에 걸기 좋은 그림'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붉은 색은 '식욕을 돋우어 주는 색'이라고 하죠. 한낮의 일교차가 큰 요즈음, 입맛을 잃기가 쉬운데요. 마티스의 붉은 그림들을 감상하시면서 눈이 즐겁고 입도 즐거운 음식의 세계로 빠져보시는건 어떨까요?

오늘 마티스의 붉은 부엌에서 머무른 이 시간이 오랫만에 엄마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어릴 적 그때 그 맛을 되새기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젠 엄마의 부엌이 아닌, '자신만의 부엌'에서요..!



저도 오늘 저녁은 저만의 부엌에서 '요리'로 제 삶의 한 부분을 그려내보아야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예술적인 하루 되세요-!



글. 아트소믈리에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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