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학, 장애의 역사, 장애인의 건강>
고질병에 가까운 내 오랜 공부 습관 중 하나는 현재 능력으로는 하기 어렵지만 그 일의 가치가 분명한 일을 맡아놓고 끙끙 앓으면서 견디는 것이다. 그런 일을 할 때마다, '왜 나는 500cc 엔진을 가지고 있으면서 2000cc 엔진이 필요한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가'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불완전 연소를 하듯 끙끙 앓는다.
이 습관은 그렇게 어찌어찌 그 언덕을 오르고 나면 학자로서 더 나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과거의 경험들 때문에 생겨났다. 이 언덕을 오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나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라는 기대감.
12월 10일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의회 학술대회에서 기조 강연을 맡았다. 40분짜리 기조 강연인데, 제목이 <장애학, 장애의 역사, 장애인의 건강>이다. 이 용감한 제목은 내가 정했다.
장애인의 몸을 치료와 재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 살아가는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 지를 말하는 건강 연구를 장애학과 장애의 역사에 기대어 말하고 싶은데, 어디까지 해낼 수 있까.
앞으로 강연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대략 2주가량 남았는데, 그 기간 내내 스스로의 능력 부족을 한탄하며 지낼 예정이다. 그런데, DiSEPA 연구를 20년 동안 끌고 가려면 이 무게는 감당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