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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Nov 27. 2022

DiSPEA_장애건강연구노트 #1

방법론과 데이터는 연구자의 사고를 결정한다


미디어가 메시지를 결정한다는 말만큼이나, 방법론과 데이터는 연구자의 사고를 결정한다. 6개월 혹은 길어야 1년 안에 끝내야 하는 연구를 진행할 때, 나는 그 안에서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왔다. 물론 이후에 또 다른 펀딩을 받아 그 이후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가능성이지 조건이 아니다. 그 와중에 제한된 자원으로 학술적 성과를 내야 하기에, 그 한정된 조건 속에서 최적화를 끊임없이 진행한다. 그렇게 힘겹게 보고서나 논문을 끝내고 나면 그 연구도 끝이 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연구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썼다는 이유로 기자분들이나 시민단체 활동가 분들이 나를 전문가로 생각하고 관련한 이슈가 있을 때면 연락을 해 의견을 구한다. 그런데, 나는 그 연구의 주제를 그렇게 정리해 마무리하고 다른 연구에 집중하고 있기에, 지금 당장 내 몸속에서는 그와 관련한 통찰이나 지식이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지 않다. 과거의 경험을 겨우겨우 끄집어내 질문에 답을 하거나, 인터뷰를 거절한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의 삶과 건강에 대해 연구를 하겠다는,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절박한 문제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들여다보고 해결방법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지난 10년 동안 여러 집단을 연구하고 책과 논문을 썼다. 한 집단을 오랫동안 깊게 들여다보기보다는, 펀딩이 되지 않아 연구가 진행되지 않지만 지식 생산이 시급한 분야를 계속 찾아가며 연구했다. 해고노동자, 성소수자, 세월호/천안함 트라우마 생존자, 비정규직 노동자, 손배가압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그런데, 매번 어느 수준 이상으로 깊게 들어가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주저자로 쓴 SCI 논문이 60편이 넘어가는데, 내 공부가 충분히 깊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올해 초 서울대로 학교를 옮기고 내가 대학에서 일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을 계산해봤다. 최대 22년이었다. 벌써 그중 1년이 거의 지나갔다. 이제 21년이다. 그 시간 중 절반은 취약계층 노동에, 나머지 절반은 장애에 쏟기로 결심을 하고 나서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하나의 주제로 길게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싶었고, 연구 방법론을 통계 기법을 이용한 역학연구만이 아니라 질적 연구/정책 연구/생체지표 측정까지 확대하고 싶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역학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 방법론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내 연구방법론을 역학으로만 한정했을 때 종종 세상과 나누어야 하는 어떤 중요한 이야기들을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막히기도 했다. 교수가 되고 나서도 질적 연구방법론을 비롯한 여러 수업을 계속 찾아가 듣고 때로는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기도 하며 지냈던 것은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리고, 서울대에서 생체지표를 측정할 수 있는 실험실 공간이 주어졌는데, 내가 가진 의사면허가 직접적으로 연구에 도움이 되는 조건이 생겨난 것이다. 


융합 연구는 다양한 학제의 사람들을 팀으로 모아서 진행하는 게 아니라, 한 연구자가 자신의 문제를 탐구하는 데 있어 필요한 방법론을 다양한 학제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다르다.


20년이라는 기간 동안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 부모, 이렇게 세 집단을 추적 관찰하는 3개의 코호트 연구를 융합적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는 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연구에서 질적 연구는 양적 데이터 수집에서 설문 문항 확보를 위한 선행연구만이 아니라 , 20년 내내 계속해서 이 세 집단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년 새로운 주제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이 연구에서 생체지표 측정은 역학 분석의 종속변수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조기노화를 바라보는 여러 생체지표를 비교하는 연구로도 추적 관찰을 진행할 것이다. 


어디까지 얼마만큼 갈 수 있을까. 긴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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