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휴먼> (주디스 휴먼, 김채원/문영민 역, 사계절 출판사)
올해 4월 세상을 떠난, 미국 장애인법의 기초를 세웠던 장애인권운동가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생후 18개월에 소아마비 휴우증으로 사지마비 장애인으로 살아갔던 그녀는 뉴욕의 첫 휠체어 교사였고, 504조 투쟁의 리더였습니다.
1.
“안녕! 방해해서 미안한데, 그냥 궁금해서. 우리가 3대 3 데이트를 할 건데 오기로 했던 여학생 중에 한 명이 올 수 없게 되었어. 오늘 밤 그 애 대신 올 수 있는 사람이 혹시 있을까?”
나는 할 말을 잃고 문간에 앉아 있었다. 바람이 나를 때리고 지나갔다. 잠깐 동안은 내 모든 세포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었기를, 남학생이 나를 3대 3 데이트에 초대한 것이기를 바랐다. 나는 “응! 나 한가해. 나 정말 가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남학생이 순진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나를 바라보았던 이유는 모임에 마지막 타자로 나갈 다른 여학생, 다른 어떤 여학생을 알고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 없어"라는 말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빈 방으로 돌아섰다. 혼란스러웠고 감각이 둔해질 정도로 가슴저리게 슬펐다.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p73
2.
“죄송합니다. 휴먼 씨. 당신의 사례를 살펴보았지만 교사 면허 취득과 관련된 어떠한 차별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의학적적 사유가 면허 거부의 원인이며, 그것은 차별로 보기 어렵습니다.”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의사가 나를 대한 방식이 차별이 아니라고? 내가 걸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교사 면허를 불허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라고 나는 휠체어로 이동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필요하다면 아이들을 내 무릎에 앉히고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도 있었다. 모든 시험을 통과했고, 좋은 성적을 받았으며, 토니와 함께 개발할 클리닉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과 의무 이수 시간 이상의 실무 경험도 했다.
P90
3.
<뉴욕타임스>는 5월 27일 ‘연방 법원에 제기된 최초의 시민권 소송’, ‘항소 검토 중’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뉴욕 타임스> 기자는 “유감스럽지만 화재와 같은 비상 상황 발생 시 학생들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교육위원회와 심사위원회의 입장을 기사에 실었다.
나는 화재 위험이라는 말에 짜증이 밀려오고 속이 거북해졌다. 그리고 제도권이 무언가를 내켜하지 않을 때마다 ‘안전’ 상의 이유를 들어 상황을 쉽게 모면하려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98
4.
(504조 투쟁에서) 하지만 시위를 계획하면서 키티와 나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 다 살면서 여러 번 무시당하는 경험을 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정부는 행동하는 척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식을 때까지 시간을 끄는 데 매우 능숙했다. 키티와 나는 정부가 그렇게 시간을 끄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내 가방에 여분의 속옷이 들어있는 이유였다.
p133
5.
"504조가 무엇인가요?"
그가 물었다. 나는 놀라움에 할 말을 잃었다. 뭐라고? 504조를 모른다는 게 말이 돼?
"1973년에 제정된 재활법 5장 504조는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기관 및 프로그램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보건교육복지부는 그 시행 규정을 확정해야 할 책임이 있고요. 워싱턴에서 이 규정에 대해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계신 바가 있습니까?"
내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져 시위대 전체에 들리기를 바랐다."죄송합니다. 저는 504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그 규정과 관련하여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말도나도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걱정으로 그의 이마에 주름이 여러 개 생겼다.
“당신의 팀에서 504조를 담당하는 직원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말도나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원하는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담당 직원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P144
6.
“불구자 crippled, 핸디캡 handicapped, 벙어리 mute, 멍청이 dumb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런 구식 용어는 오늘날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 어떤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p137
7.
보도자료는 칼리파노 쪽에서 낸 것이었다. “오늘 오후에 끝난 장애인들의 시위는 그동안 제기되어 왔던 미국의 양심에 대한 정당한 주장입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부당한 차별에 고통받아왔습니다. 제가 다음 달에 서명할 504조 규정은 장애가 있는 시민들이 자신의 본래 권리인 독립성, 존엄, 공정한 대우를 누리게 하여, 그들을 고통받게 했던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칼리파노는 장애인을 가리키는 말로 'handicapped'를 사용했다. 당시에는 재활법 504조에서도 장애인을 'handicapped'라고 지칭했다 -옮긴이).""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해."
팻이 내 바로 옆에서 말했다.
우리는 DC에 연락해 진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걱정한 그대로였다. 시위대는 음식, 약품, 전화기 사용을 금지당했다. 사람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한 명씩 떠나갔다.
칼리파노는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몰아내면서도 장애인에게 적대적으로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대의를 지지하는 듯 보이려 했던 것이다. 그는 우리의 비합리적인 행동 앞에서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안심시키며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벌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옳지 않아."
우리 주위에는 지도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는 고의적으로 오해의 소지를 만들고 있어."
바로 그때 메리 제인이 단식 투쟁을 선언했다.
P158
8.
하지만 전체 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회의를 얼마나 오래 하는가가 아니라 경청의 문화가 발전했다는 거이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오래 발언을 하든 우리는 모두 귀를 기울였다. 이제 150명이 된 시위대의 모든 사람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침묵으로 발언자의 말을 경청했다. 헤일주카스가 임시로 만든 포인터를 머리에 붙인 채 보드 위의 한 글자를 가리킬 때면 방 안은 너그러운 고요함으로 가득 찼다. (발화에 어려움이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이 탭과 포인터 같은 보조도구를 이용해 소통하고, 그에 소요되는 시간을 모두가 말없이 기다려주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 옮긴이). 우리는 소통의 필요성과 느린 속도가 존중받을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소중하게 여겼다.
p178
9.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통합하거나,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거나, 그 밖에 규정이 요구하는 무수히 많은 다른 일들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미국대중교통협회 American Public Transi tAssociation에서는 버스 시스템을 장애인이 접근 가능하도록 만드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는 입장문을 내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큰 싸움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버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비용과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는 비용이 같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버스협회의 재정 모델은 대부분의 장애인은 버스를 타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기초하고 있었는데, 이는 억측이었다. 그랬다. 나도 처음 버스를 이용할 때는 시내버스에 내 휠체어를 어떻게 싣는지 몰라 두려웠다. 그러나 한 번 경험해보고 나니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는 계속 이용하게 되었다.
솔직히 현상 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아니요'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다. 특히 비즈니스와 재무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시민권을 논의하기 시작했을 때 다른 어떤 시민권 이슈에서도 비용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504조의 여파로 도전 혹은 당신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기회이기도 할 것이 규정에 서명을 받아내기 위해 열심히 싸워온 우리와 장애인 지지자들, 동지들에게 넘어왔다. 우리는 '아니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맞서기 위해 해법을 제시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도 대응해야 했다. 장벽이 제거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것도 알려야 했다.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