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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Jul 07. 2019

<어쩌면 이상한 몸> (장애여성공감, 2018)

치열하고 강렬하고 매혹적인

장애여성공감의 사람들이 쓴 <어쩌면 이상한 몸>을 읽었다. 이 책의 글을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가 얼마나 자의적인 것인지를 밝히고 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구성된 그 경계를 허물려는 지적인 작업이라고 읽는 것은 이 책의 가치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너희들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들의 경계에서 이렇게 우리들은 각자의 몸으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당신은 무슨 권리로, 무슨 생각으로 어떤 몸이 어떤 삶이 정상이라고 함부로 말하고 있었던 거냐’라고 말하는 듯 하다.


미사여구 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시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강렬히 세상과 부딪치는 삶이라니. 이는 장애와 여성이 교차하는 존재 자체가 놓인 위치의 힘도 있겠지만, 장애여성공감이라는 단체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세상과 부딪치며 벼리고 벼린 언어의 힘도 있을 것이다. 가까이 두고 계속 읽어야 하는 책이다. 


“예측 불가하고 불안정한 몸들의 진정한 해방은 안정된(건강한)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불안정한 상태가 불안감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언제나 성공을 보장할 수 없지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고, 섹스의 실패가 꼭 관계의 실패는 아닌, 그리고 관계의 실패가 꼭 삶의 실패는 아닌 그런 안전함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소풍이나 견학 활동에 참여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때마다 나는 늘 아팠다. 아니 아파야 했다. 불참의 이유는 장애가 아니라 ‘아파서’였다. 장애로 인해 참석을 못하는 것은 학교 입장에서는 장애 학생을 배제하는 것이지만 아프다는 개인적인 사유로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위한 배려였기에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상황이 된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그냥 내 인생”이란 자평은 평생 원치 않는 주목을 계속 받아야 했기 때문일 거다. 장애여성으로서 장애가 있는 두 명의 아이를 키워온 그에겐 어쩌면 ‘특별하다’ ‘대단하다’는 말이 가장 듣기 싫었으리라. 찬사하는 말 뒤에 숨은 사람들의 편견, 기구한 사연을 좇는 호기심 어린 시선에 맞서려면 ‘평범하고 무난했다’는 달관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늘 중증의 신체장애와 언어장애 때문에 배제되고 나중으로 밀리던 나의 삶을 “그동안 힘들었지, 다 말해봐”라고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유한하고 우연성의 반복이란 것 외에 삶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여성이란, 장애란, 인간이란, 운동이란, 말이란, 몸이란, 성이란, 교육이란, 일상이란, 차이란, 관계란, 존중이란 대체 뭐란 말인가? 답 안 나오는 질문을 끝까지 던지고 매해 답을 실천하는 사람들. 끝에서 달리는, 그래서 방향을 바꾸면 그곳이 시작인 이 공간. 미련하게 말하고, 쓰고, 움직이며 실패를 통하여 살아가는 이 몸들과 함께 있는 한. 무엇도 당연하지 않고, 그래서 멈출 수 없다.”


“이런 시간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적인 타이밍과는 거리가 멀었고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자원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으로 자원이 없는 우리들의 ‘몸’이었다. 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겪어야 할 연속적인 삶의 우연성 그리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야말로 서로를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는 동력임을 나는 장애여성운동에서 익혀왔다.”


“그것은 누구의 엉덩이이고, 누구의 배설물인가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환자는 누구나 될 수 있는 보편적인 대상으로 여기고 장애인은 타자화된 대상이자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몸’으로 보기에 그들을 보조하는 일은 낮은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화장실 보조는 가장 밑바닥 일일 수밖에 없다.”


“전형화는 소수자의 삶을 차별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치료, 극복, 불행, 불편 등의 부정적 서사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혐오와 차별로 구성된다. 많은 장애인들은 자신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물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비장애인과 완전히 똑같은 삶을 산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생의 과정에서 겪는 감정, 관계의 역동, 실패와 성공, 변화들을 겪어내면서 사는 것은 누구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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