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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Jul 27. 2019

‘고통 올림픽'을 멈췄으면 합니다.

2017년 7월, 제 개인 페이스북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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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60대인 분들이 지금의 20대인 젊은이들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살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평균수명의 측면에서도 그 두 집단은 전혀 다른 사회에서 성장했습니다. 2016년 기준으로 미국과 아프리카의 탄자니아나 말라위만큼 차이가 납니다.

2. 그 두 집단 사이에 있는 저는 운이 매우 좋았던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60대인 분들이 땀흘려 이룩한 경제성장 위에서 굶주리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 분들이 피흘려 이룩한 민주주의 위에서 사상의 검열없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3. 지금의 20대는 정말 어려운 시기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삼포 세대', '헬조선'이라는 말이 일상어처럼 사용되는 것은 20대가 유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느 세대나 집단 전체를 아울러 '유약하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처한 조건이 열악하고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에 있으면서, 취업문제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쉽게 만납니다. 24살 시절의 저와는 비할 수 없이 똑똑하고 열정적인 젊은이들이 취업문제로 괴로워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걱정입니다. 그렇게 위축되어 있는 그들을 보면 기성 세대로서 미안합니다.

4. '고통 올림픽'을 멈췄으면 합니다. 60대가 지금의 20대가 상상하기 어려울만큼 괴로운 시간을 통과한 것도, 지금 20대의 삶이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 둘의 고통 중에서 무엇이 더 큰지 비교하는 그 어리석은 일은 그만했으면 합니다.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것이고 비교불가능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한국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어떻게 비교하시겠습니까. 성추행으로 괴로워하다 진로를 포기한 대학원생과 평생 일한 직장에서 잔인하게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더 고통스럽다' 혹은 '내가 더 고통스러웠다'를 증명해서, 그 싸움에서 승자가 되어서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공정한 심판이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경쟁은, 그 경쟁의 '승자'와 '패자'가 함께 살아갈 한국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5. 저는 20대를 응원합니다. 그 방식은 멘토가 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좀 더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패기가 없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작은 패기로도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것은 힘내라, 노력해라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힘을 내고 노력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6. 한국의 젊은이들은 거대한 무게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급속히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이 젊은이들이 놀라운 무엇인가를 해내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불과 20년 뒤에는 이 친구들이 한반도에서 있었던 공동체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의 노인분들의 삶을 포함한 한국의 경제를 지탱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맞닥뜨린 시장 경쟁은 이전과는 다릅니다. 삼성과 현대가 과거 그랬던 것처럼, 외국에서 만든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후발주자로 보다 싼 가격에 만들어서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면서, 상품의 품질을 차차 개선해 시장을 장악해 나가는 방식의 승부는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7. 구글과 페이스북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제 가장 나은 상품이 모든 지역을 장악합니다. 그래서, 20년 뒤에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그런 상품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걸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비슷하지만 보다 값싼 무엇인가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구글과 페이스북 너머에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하지요.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패속에서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누구일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없이 도전하는 '20대의 래리 페이지와 마크 저커버그'를 응원해줘야 합니다. 그걸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말뿐인 격려와 응원이 아니라, 사회 각 영역에서 그런 젊은이가 무엇인가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그 과정에서 실패해도 우리 사회가 그것을 용인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가 필요합니다.

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더 고통스러운 세대인가?'를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한국사회가 직면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쟁입니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어느 세대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세대입니다. 그것은 과거 세대들이 이룩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위에서 가능한 성과였습니다. 동시에 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속도를 측정하기조차 어려운 변화속에서 이 젊은이들이 어떤 일을 해내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의 미래가 결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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