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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Dec 30. 2019

[기고후기] 미국의 흑인 범죄율은 무엇을 말하는가

시사인 연재글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901


1.
차별과 낙인, 소수자의 몸에 대한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은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라고, ‘옳지만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독자를 상대로, 어떻게 그 견고한 기시감을 극복할 것인가. 이다.


2.
이 글은 2016년 9월 예일대 아동센터가 출판한 보고서*가 있어 가능했다. 유아원 아동들의 평범한 놀이 과정을 비디오로 보여주며 잠재적 문제행동을 찾는 선생님의 눈동자가 성별과 인종에 따라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를 검토한 이 연구는 막연히 짐작했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징글징글’하게 엄격한 방법론을 택한 연구다. 문제행동을 찾기 위해 선생님들은 흑인 아이를 보고 있었다. 이 보고서는 구글에서 제목을 치면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다.

상대방이 '뭐 하나 잘못하기만 해 봐라..' 하는 눈빛으로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를 좀 더 효과적으로 설명할 길을 찾았는데, 2004년 출판된 문헌고찰 논문에서 체내 스트레스 호르몬인 Cortisol의 증감을 검토해 부정적 평가 위협(social evaluative threat)이 인간 몸의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올리는 단기 자극이라는 연구를 인용할 수 있어 힘이 실렸다.

이런 눈동자를 확인하는 것 같은 연구를 미국의 대학들은 곧잘 해낸다. NEJM에 10여 년 전 실렸던 한 논문은 병원 레지던트들이 근무시간이 늘어나면 일하다가 깜빡 조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비슷한 일을 했었다. Attentional failure라고 부르는 이 행위는 보통 당사자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깜빡 졸은 적이 있다고 보고하는 걸로 측정하는데, 이게 부정확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근무 시간 내내 일정 거리를 두고서 제 3자가 저 사람이 깜빡 조는지를 체크해서 그 횟수를 검토했던 것이다.


3.
응급실에서 진통제 처방이 인종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진다는 내용은 의대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이었다. 그러나, 응급의학과 의사인 토드 교수의 논문은 1993년과 2000년 반복해서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 명시적으로 인종차별을 해서가 아니라, 당신 속에서 자동적으로 암묵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힘이 당신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암묵적 편견은 한 사회의 역사와 권력관계를 반영한다고.


4.
시사인 오프라인 인쇄 글과 초기 온라인 판에는 글 수정이 반영이 안 되어 ‘흑인 3명 중 한 명이 평생 동안 교도소에 수감되는 경험을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것은 샌더스가 토론에서 인용해서 유명해지기도 한 내용인데, 그 근거를 찾아보니 워싱턴 싱크탱크의 보고서가 다른 보고서를 인용한 것이었고, 그 원 보고서는 거대한 전제가 있었다. 그것은 2001년 흑인 교도소 수감률이 계속 일정하다는 전제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따라서, 2001년 이후 흑인 교도소 수감률이 계속되지 않았기에, 논문에서 단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투고 전에 찾아 수정을 했었는데, 그 수정한 내용이 온라인 판이 공개되고 24시간 정도 지나서야 반영되었다. 아래 문단이다.

“흑인들은 유아원에서부터 일상적으로 과도한 사회적 평가 위협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2017년 국제학술지 ‘랜싯’에 게재된 크리스토퍼 윌더먼 교수 연구팀의 논문 <미국의 대규모 수감, 공중보건, 그리고 커져가는 불평등(Mass incarceration, public health, and widening inequality in the USA)>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난 미국 흑인 남성 5명 중 1명은 35살이 되기 전 교도소에 한 번 이상 수감된 경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비극적인 숫자는 열악한 물질적인 삶의 조건에서 비롯된 흑인 범죄율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유난히 가혹한 사회적 평가 위협의 결과를 보여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5.
사용하지 못한 논문과 근거가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는 마지막까지 고민이 되었었다.

하버드에서 진행하는 자신의 암묵적 편견을 웹상에서 검사할 수 있는 Harvard Implicit Association Test - Project Implicit(구글 검색하면 로그인 없이 사용 가능)의 내용이었다. 암묵적 편견이 과연 측정 가능한 것인가라고 물으면, 이 사이트를 보여주면 된다.

검사해본 결과 나 역시 흑인에 대한 암묵적 편견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6.
차별금지법 싸움이 정치권에서 점점 고립되고 소외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가능하다면 이 글이 책임질 수 있는 한에서 그 싸움에 힘을 더하고 싶었다. 마지막 3 문단은 그렇게 쓰였다.

“암묵적 편견과 명시적 편견은 밀접히 닿아 있습니다. 명시적 편견이 만연한 사회에서 암묵적 편견이 그보다 덜할 리 없으니까요. 2010~2014년 측정된 세계 가치 조사에는 ‘나는 다른 인종과 이웃에 살고 싶지 않다’라고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인종에 대한 명시적 편견을 측정하는 내용입니다. ‘살고 싶지 않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스웨덴에서는 2.8%였고 미국에서는 그 두 배인 5.6%였습니다. 그런데 그 응답 수치가 한국에서는 34.1%였습니다.

저는 이 결과를 볼 때마다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한국 사회가 인종차별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과 한국인은 인종차별 성향을 보고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 검열과 긴장이 부족한 나라라는 점입니다. 인종별 거주지 분리가 심각한 미국 사회에서, 같은 질문에 ‘살고 싶지 않다’라고 응답한 5.6%가 실제 미국인의 속마음을 반영하는 숫자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 5.6%는 적어도 누군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 인종차별주의자로 비쳐지고 싶지 않은 미국 사회의 긴장을 반영하는 숫자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그 긴장조차 부재한 것이지요.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암묵적 편견을 바꾸는 길은 권력의 적극적인 재분배를 통해 소수자의 삶을 바꾸어내는 것과 함께, 우리 스스로가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나 역시 내 의도와 무관하게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인식하고 경계하며 행동하는 일이라고요. 차별하는 줄 모르고 하는 차별 행동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저는 차별금지법이 그 인식과 경계와 행동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Do Early Educators’ Implicit Biases Regarding Sex and Race Relate to Behavior Expectations and Recommendations of Preschool Expulsions and Suspen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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