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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Dec 17. 2020

[서평] 장애의 시좌에서 재구성한 미국사

김도현 선생님이 쓰신 <장애의 역사> 서평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72


장애인을 영어로 ‘person with disabilities’라고도 쓴다. 그럼 ‘비’장애인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person with abilities’, 말 그대로 ‘능력 있는 사람’. 물론 이건 소위 콩글리시다. 어쨌든 이걸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한번 부정하면 ‘person without abilities’, 즉 ‘능력 없는 사람’. ‘에이블리즘’(ableism)은 비장애중심주의 내지 장애차별주의를 뜻하지만 그 본질은 다름 아닌 능력주의다. 요컨대 비장애중심주의/장애차별주의를 철폐하지 않는 한 능력주의 사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킴 닐슨(Kim E. Nielsen)의 『장애의 역사』(원제: A Disabilit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는 그러한 진실을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역사 속에서 통찰해 내는 책으로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은 미국 장애인의 역사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장애의 시좌(視座)에서 읽어낸 미국의 역사다.  닐슨은  책을 통해 “장애를 이용해 역사에 질문하고 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있는지, 장애가 어떻게 인종·젠더·계급·성적 지향과 얽혀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왜냐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민자, 게이와 레즈비언, 빈민, 여성을 온전한 시민권을 행사할  없는 2 시민으로 분류할 때마다, 장애[무능력] 역사의 여러 장면에서 계속 호명되었 “역사의 수많은 장면에서 장애는 다른 사회적 범주를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왔기 때문이다(19, 27).


예컨대 미국의 백인들은 “노예가 몸과 정신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노예제가 돌봄이 필요한 노예에게 도움이 되는 친절한 제도라고 주장”했다(103쪽). 당대의 저명한 의학자였던 새뮤얼 카트라이트(Samuel Cartwirght)는 “흑인들은 신체적·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백인이 감독하고 돌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126쪽), 이처럼 좋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북부로 달아나려는 흑인 노예들에게 ‘출분증’(drapetomania)―그리스어로 ‘드라페테스’(drapetes)는 ‘달아나다’, ‘마니아’(mania)는 ‘광기’를 뜻한다―이라는 정신장애 진단을 내린다. 또한 182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는 개인의 경제적 상태와 재산 관리 능력을 이유로 투표권을 제한했는데, 후견인의 보호하에 있는 사람은 재산을 관리할 수 없었기에 투표를 할 수 없었다. 동일한 논리가 여성에게도 적용되었다. 즉 남편에게 모든 재산 관리권이 위임되어 있던 여성 역시 일종의 ‘금치산자’(禁治産者)로 간주된 것이다.


에이블리즘과 ‘능력 있는 몸’(Able-Bodiedness)을 준거로 한 장애, 인종, 젠더, 성적지향의 억압적 교차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역사적 장소 중 하나는 이민국 심사장이었다. 뉴욕의 엘리스섬 심사장에서는 ‘빈약한 체형’(poor physique)을 지녀 노동할 수 없다고 간주된 이들뿐만 아니라 재생산 능력이 없다고 규정된 동성애자와 인터섹스들의 입국이 거부되었다. 그리고 아시아 이민자들이 들어오던 샌프란시스코 에인절섬의 추방률은 유럽인들을 심사하던 엘리스섬보다 5배 이상 높았는데, 미국 국회 보고서는 “중국인들은 자치 정부를 위해 힘을 보태기에는 두뇌 역량이 부족하다”고 기록했다. 즉 중국인들의 신체가 민주주의를 지탱하기에는 “지나치게 장애(Too Disabled)가 있다”고 본 것이다(200~201쪽).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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