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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Jan 30. 2021

#1. 동물박사

1.

동물박사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에 관심이 많았다. 시작은 공룡이었다. 공룡에 한창 빠져있던 5살 때였나. 퇴근한 내게 동박이 말했다. 


"정말 재미있는 놀이가 생각났어."

"뭔데?"

"아빠가 이 블록 장난감으로 공룡을 만드는 거야. 그럼 내가 그게 뭔지 맞출게."


이게 내게 무슨 재미란 말인가. 나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데 소질이 없었다. 


"난 싫은데"


동박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싫어?"


어차피 동박을 납득시키는 건 불가능했고, 난 피곤하다며 더 대화가 진행되기 전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그 시절 동물박사의 유치원 평가표에는 온통 공룡 이야기뿐이었다. 공룡에 관심이 많고, 공룡에 대한 지식이 탁월하다. 이런 식으로. 


그러던 동박이 초등학교 2학년을 거치며, 관심사가 다른 동물로 바뀌었다. 한때는 수달이었고, 재작년부터 일요일마다 <동물농장>을 보기 시작하면서 강아지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즈음 그녀는 강형욱의 팬이 되었다. 


2.

강아지를 키우는 친척들을 만나면 묻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몇 번 산책을 시키나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데리고 나간다고 답하면, 동박은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건 강아지 학대예요."


누가 지나가는 말로, 애완견이라는 표현을 쓰면 상대방이 누구건 그 앞에서 말했다. 반려견이라고 불러야 해요. 애완견은 강아지를 장난감 취급하는 거예요. 사랑할 애와 가지고 놀 완이 합쳐진 단어예요. 반려견은 짝 반에 벗할 려가 합쳐진 단어고요. 심지어 내 주변 사람 중 강아지를 가장 따뜻하게 품는 사람이자 동물을 수십 년간 돌봐온 수의사 삼촌을 만났을 때에도 그랬다. 애완견이라고 부르면 안 돼요. 


그런 동박으로 인해 민망한 상황이 수차례 반복되자, 아내와 나는 동박에게 말했다. 


네 마음이 뭔지는 알고, 네가 책에서 읽은 게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마다 살아가는 상황이 있고, 그 환경을 감안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강아지를 매일 산책시킬 수는 없는 거다. 돈을 벌기 위해 바쁘기도 하고, 산책을 할 장소가 마땅치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애완견과 반려견이라는 말 중 어떤 걸 쓰는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실제로 강아지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 모습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오래전부터 애완견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강아지를 정말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앞에서는 말을 조금 조심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럴 때면, 동박은 입을 다문 채 침묵 속으로 빠졌다. 


3. 

며칠 전에는 코로나 19 백신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도 동물실험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동박이 말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왜 동물의 생명을 두고 실험을 하냐고, 그건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는 거라고 분개했다. 뭔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아 말을 꺼냈다. 


백신을 개발했지만 안전한지 여부를 알 수 없는데, 인간에게 곧바로 주사하는 게 맞을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왜 동물을 희생시키는데? 그건 이기적인 거잖아.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 맞아. 하지만, 현실에서 인간이 곧바로 실험대상이 되어 죽게 되는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조금 덜 나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그럼 넌 어떻게 하면 좋겠어?


밥을 먹던 동박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했다. 천천히 동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동박아, 아빠는 네 말이 틀렸다고 하는 게 아니야. 다만, 현실이 복잡하다는 거 생각할 게 많다는 걸 네가 기억해주면 좋겠어.


4.

동박의 꿈은 수의사인데, 수학 공부를 재미없어한다. 실은 어떤 공부에도 큰 흥미가 없다. 며칠 전 비슷한 문제를 함께 풀었는데 그 푸는 법을 모두 잊어버렸길래, 수의사가 되려면 이런 문제는 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학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고.


그 날 저녁 책을 읽고 있는데, 동박이 내게 다가왔다. 


"아빠, 비밀이 있어. 말해줄까?"


난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다. "아니, 안 궁금한데."


"아냐, 들어야 해. 내가 말하고 싶으니까."


그럴 줄 알았어. "말해봐"


동박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내가 실은 아이큐가 500이야."


난 이런 상황을 여러 차례 겪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답했다. 


"그래, 내 딸이 천재일 수 있지. 그렇지. 그런데 아빠는 네가 아이큐 500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 그걸 언제쯤 내가 볼 수 있을까?"


"아빤 그걸 보지 못할 거야."


"왜?"


"난 이번 생에는 그 능력을 안 쓸 거거든. 다음 생에 천재 강아지로 태어나서 <동물농장>에 출연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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