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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Feb 03. 2021

[서평] <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저, 최인자 역)

살면서 읽어 본, 가장 진한 책.

1. 이것은 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p448
 
2. 이 소설은 어떤 사람들의 내면적 삶에 대한 것입니다… 글로 쓰기엔 분노는 너무 시시하고 연민은 너무 질척거리는 감정입니다. P458
 
3. 제주 4.3의 비극과 죽은 영혼을 현재로 불러와 말하게 하는 무당의 일
죽은 원혼의 통곡이 억압된 기억의 단층 사이에서 새어 나올 때 역사는 잠에서 깨어난다. 잊힌 기억, 그중에서도 폭력에 관한 기억의 어두운 밤이 진실의 빛 가운데 드러나도록 허용되자 죽은 영혼은 살아나 살아 있는 그들 자손에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From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 김성례, p163)
 
4. 세서 <죽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P68>


세서는 자신이 살해한 아이에게 수백 번도 더 말을 했을 것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고. 네 목을 톱으로 긋고 그 피가 튀겨진 몸으로 내가 평생을 살아가는 일과 네가 학교 선생에게 잡혀가 관찰되고 측정되고 짐승의 특징을 적는 칸에 기록되는 일을 감수하는 일을 비교해야 했다고. 그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에서 내 사랑은 진한 붉은색이었다고. [<옅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p27]
 
5. 어떤 출산과 어떤 살해 혹은 유기


세서의 엄마는 노예선을 타고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이다. 노예선에서 백인에게 강간당했을 때, 그 자식들은 모두 버렸지만 그녀가 사랑했던 흑인 남자에게서 태어났던 아이에게는 그 남자의 이름인 세서라는 이름을 준다.
아이를 버렸던(죽도록 했던) 흑인 여성은 이 소설에서 세서만이 아니다. 세서의 엄마도, 마을 주민인 엘라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강제적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를 버린다. ‘아이를 버린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결과를 낳겠지만, 세서와 나머지 둘의 행동은 이 소설에서 전혀 다른,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행동이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짙은 사랑과 아이를 쳐다보는 것조차 고통스럽던 원치 않는 아이를 출산한 행동의 차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선택’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사랑할 수 없고, 자신의 아이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노예제라는 폭력 하에서 생겨난 결과물이다.
 
6. 덴버 <나는 엄마의 젖과 함께 언니의 피를 삼켰어요. p336>


덴버는 엄마가 사랑하는 남자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존재이고, 엄마가 스위트홈에서 탈출한 이후에 세상에 태어났기에 노예로 살았던 적이 없는 자유인이고, 백인인 에이미의 도움으로 죽지 않을 수 있었고 백인인 볼드윈의 집에서 돈을 받고 일하고 심지어 공부를 배우기도 한다. 덴버의 시간은 세서의 시간과 이어져 있지만,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 자유가 가능했던 것은 베이비 석스와 세서와 핼리의 상처와 용기 그리고 사랑 때문이었고, 덴버는 3장에서 트라우마를 안과 밖에서 직시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 된다.
 
7. 베이비석스 <그 더러운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 칼과 방패 모두. p146>


베이비석스는 아들 핼리의 노동과 주인인 가너 씨의 ‘허락’으로 인해 자유인이 된 존재인 동시에, 8명 중 (나중에는 핼리도) 7명의 자식 모두를 떠나보내야 했던 처참한 상처를 간직한 정신과 침대에 눕는 것조차 통증을 느끼는 몸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다. 124번지에 도착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커다란 심장뿐이었고 그 심장으로 숲에서 사람들에게 말한다. 우세요. 웃으세요. 춤을 추세요. But cannot console and cannot condemn. 조롱당하고 비난받는다. 백인들이 이겼어. [<그것 또한 빼앗겼어요. p293>],
 
8. 폴 디 <나한테 이거 하나만 말해보세요. 대체 검둥이는 얼마나 참아야 합니까? 말 좀 해보세요. 네? P385.>


폴디는 스위트홈에서 가너 씨와 학교선생을 겪고, 5번의 탈출을 하고 매번 실패하고, 124번지에서 세서와 빌러비드를 만나고 그곳에서 또다시 밀려나는 과정을 모두 겪는다. 그 처참한 사건들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탈출을 시도하다 함께 잡힌 시소가 백인들을 조롱하는 노래를 부르다 죽을 때, 함께 부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면서도 그 노래를 하지 않은 이유는 가사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내면은 섬세하고 단단하다. 또 한편으로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세서처럼 흑인에게 허용되지 않는 진한 사랑을 하다가 스스로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뜨내기의 자세를 유지한다.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사랑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
<당신의 사랑은 너무 짙어. P271>
<폴 디는 자기도 함께 노래 불렀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식소의 선율에 맞춰 쩌렁쩌렁 울리도록. 하지만 가사가 그를 막았다. 그는 그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는 곡조였으니 아무 문제도 안되었겠지만. 그 노래는 증오가 흘러넘치는 주바였다. P373>
 
9. 빌러비드 <어떤 사람은 더럽게도 자기 오줌을 먹어 난 먹지 않아 피부가 없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자기 오줌을 마시라고 갖다 줘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어… 누군가 몸부림치지만 여기엔 그럴 자리가 없어.. 영원히 죽는 건 힘든 일이야 잠깐 잠이 들었다가도 곧 돌아오지 p346>


빌러비드는 사람인 동시에 역사고, 그래서 인간의 몸을 가진 절반은 귀신인 존재로 등장한다. 그녀는 ‘벌써 기나’로 불리다 엄마인 세서에 의해서 살해당한 아기가 귀환한 사람인 동시에, 토니 모리슨이 책의 맨 앞에서 말한 ‘6천만명 혹은 그 이상’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상처를 그 몸에 새기고 있는 역사다. 18년 전 목에 톱질로 인해 생겨난 상처의 기억과 죽는데 실패하고 자신의 오줌을 먹으며 지낸 노예선의 기억이 모두 빌러브드의 것이다. 이 책에서는 노예선의 장면이 두 차례 등장한다. 하나는 1부에서 폴디가 동료들과 함께 사슬에 묶여 있던 알프레드 수용소이고, 또 다른 장면은 2부에서 빌러비드가 몽환적으로 묘사하는 자신의 과거처럼 들려주는 그 장면이다.
 
10. 스탬프 페이드 <정 옷을 다시 찾고 싶으면, 가서 저 아기한테서 벗겨내. 아기를 알몸으로 풀밭에 내버려 두고 넌 다시 옷을 입으라고. 만약 네가 그럴 수 있는 인간이라면, 당장 어디든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p153>


페이드는 밀정이고 흑인이고 노예 탈출의 최전선에서 움직이는 활동가이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지역 주민이다. 페이드로 인해서 세서와 덴버는 탈출에 성공해 살 수 있었고 교회 바닥에서 지내던 폴디는 다시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페이드가 가시에 찔려가며 수확한 딸기로 인해 베이비석스의 잔치가 시작되고 그 잔치는 정체를 알 수 없던 시기와 질투를 만들어내고 세서가 ‘벌써 기나’를 살해하는 일을 막지 못하는 과정에 기여하고, 세서를 찾아온 폴디에게 그 살해사건을 굳이 하나하나 설명하며 알려줘 124번지에서 폴디를 분리해내는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가치에 따라 움직이며, 그 신념에 따른 행동이 때로는 구원이고 또 때로는 폭력이 된다.
 
11. 학교선생
학교선생은 가너 씨가 사망한 이후에 스위트홈에 온 사람이자, 19세기 인종과학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보는 시선이 지배하는 시선이다. (미셀 푸코, <임상의학의 탄생>) 그는 냉정하고 차분하며 면밀하다. 깃이 달린 셔츠를 입고, 공부를 많이 했으며, 말도 얌전히 하고, 침도 손수건에 뱉고, 너무 공손에서 면전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는 예의 바른 존재다. 그는 인간을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에게 흑인은 인간이 아닐 뿐이다. 남성 흑인은 노동을 하는 주인의 재산이고, 여성 흑인은 교미를 시켜 그 재산을 증식시킬 수 있는 동물이다.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과 비슷한 ‘앎의 의지’로 그 동물들의 머리 둘레와 키를 비롯한 몸의 수치는 측정되고 기록되어야 한다. 사무엘 조지 모튼과 같은 인종주의 과학자들의 자세다. 피부색을 제외하면 백인과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퇴화한 동물인 흑인들을 연구하는 것은 자신들의 책무다. 세서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이야기는 자신의 아이에게 주어야 할 젖을 학교 선생이 착유기를 이용해 젖소에서 우유를 짜내듯 빼나 갔던 것과 자신의 몸을 측정해 동물의 특징이라고 하는 칸에 적었던 점이다. 그 경험은 세서의 등에 채찍 자국으로 남는다. 세서는 학교 선생이 자신을 동물로 분류해 특징을 기록하는 그 잉크를 자신이 만들었던 장면을 두고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세서의 말) 내가 잉크를 만들었어, 폴 디. 내가 잉크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그러지 못했을 텐데. p442>
 
12. 돌아와야 했고 쫓겨나야 했던 과거
빌러비드가 실제 인간인지 귀신인지를 묻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우리는 빌러비드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명목적 질문이 아니라, 빌러비드가 124번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기 위한 현상학적 질문을 해야 한다. 빌러비드는 124번지로 돌아왔어야 했고 그곳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빌러비드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세서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이를 살해하고서 스스로를 포기한 채 세상으로부터 유폐시킨 과거와 만나지 못한 채 계속 살아가야 했을 테고, 빌리버드가 쫓겨나지 않았다면 그 과거가 현재의 삶에 행하는 폭력에 굴복한 채 삶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세서의 삶에서는 볼드윈씨를 얼음조각으로 찌르려 덤벼들었던 행위가 없었다면 그녀는 현재를 살아갈 수 없었는데, 그 행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빌러비드가 찾아와야만 했다. 빌러비드는 제주 4.3에서 죽은 원혼들의 모습으로 가족들에게 나타나 그 슬픔과 억울함을 말하는 심방이라고 불리는 제주 무녀와 유사하다.
 
13. she doesn’t have the right to do it.
토니 모리슨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행동은 올바른 것이었지요. 그녀는 다만 그 행동을 할 권리가 없었어요. 이 두 문장은 깊다. 실제 마가렛 가너는 자신의 아이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못’한다.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 재산으로 간주되고, 키우는 소가 새끼 소를 죽였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못하는 것처럼.
It’s a right thing to do, but she doesn’t have the right to do it. (From Toni Morrison’s interview in 1987 about the Beloved, https://www.youtube.com/watch?v=2jxN3oTSD34)
 
14. 어떤 나무와 어떤 주먹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 둘은 꼽으라면, 난 식소와 엘라의 모습이다. 50킬로미터 여자를 만나고 와서 나무 밑에 누워있던 식소와 저 오만한 여자는 재수 없지만 어쨌든 죽은 것이 살아있는 사람을 고통받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먹을 움켜쥔 엘라.


<그는 열일곱 시간을 줄곧 걷다가 딱 한 번 앉았고, 돌아서 다시 열일곱 시간을 걸었다. 헬리와 폴들은 식소가 피곤해하는 모습을 가너 씨한테 들키지 않도록 온종일 막아줘야 했다. 그리고 그 날은 감자고 고구마고 일절 맛도 보지 못했다. 불꽃같이 새빨간 혓바닥이 감춰지고 쪽빛 얼굴이 굳어진 식소는 ‘형제’ 근처에 벌렁 드러누워 저녁식사 시간 내내 시체처럼 잤다. 그때 거기엔 한 남자가 있었고 그건 진짜 나무였다.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과 자기 옆에 누워 있는 저 ‘나무’는 거기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p44>
<함께 기도할까? 여자들이 물었다. 음. 우선은 그래야겠지. 그런 다음에 해치웁시다. 엘라가 말했다 p418>


15. 소설은 번역가능한가.

All he could think of was tracking dogs, although Hi Man said the rain they left in gave that no chance of success. Alone, the last man with buffalo hair among the ailing Cherokee, Paul D finally woke up and, admitting his ignorance, asked how he might get North. Free North. Magical North. Welcom-ing, benevolent North. The Cherokee smiled and looked around. The flood rains of a month ago had turned everything to steam and blossoms.


“That way,” he said, pointing. “Follow the tree flowers,” he said. “Only the tree flowers. As they go, you go. You will be where you want to be when they are gone.”


So he raced from dogwood to blossoming peach. When they thinned out he headed for the cherry blossoms, then magnolia, chin-aberry, pecan, walnut and prickly pear. At last he reached a field of apple trees whose flowers were just becoming tiny knots of fruit. Spring sauntered north, but he had to run like hell to keep it as histraveling companion. From February to July he was on the lookout for blossoms.


노예로 팔리기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아메리카로 향하는 대서양 중앙항로의 노예선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공간에 있다가 장마를 계기로 쇠사슬에 묶인 동료들과 함께 폴 디는 탈출을 하게 된다. 그 공간을 벗어난 ‘노예’들은 토착민인 체로키족을 만난다. 폴 디가 묻는다. 어떻게 해야 북쪽으로 갈 수 있냐고. 그는 백인들이 노예를 추적하기 위한 개들을 이끌고 자신들을 찾아오는 게 두렵다 (All he could think of was tracking dogs)


체로키족은 북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새롭게 꽃이 피는 나무를 찾아가라고 말한다(Follow the tree flower). 남부에 일찍 찾아온 봄으로 인해 꽃이 이미 피웠다가 지는 곳을 떠나서 이제 봄이 되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곳들을 따라가라고 말한다.


폴 디는 그 말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그 표현을 시작하는 문단이 한국어로는 "그는 말채나무에서 꽃이 만발한 복숭아나무로 달려갔다."이다. 그런데,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So he raced from dogwood to blossoming peach" 역자는 (문학동네 번역본) dogwood를 말채나무라고 번역했다. 봄에 흰 꽃이 피는 말채나무는 미국 버지니아주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런데, dogwood를 말채나무로 번역하니, tracking dog을 두려워하며 북부로 향하던 폴 디의 탈출을 'dogwood를 떠나 꽃이 만발한 복숭아 나무로 달려갔다'라는 토니 모리슨이 시적인 문장과 어감이 살지 않는다. 물론 내게도 더 나은 번역어는 없다.  <빌러비드>라는 놀라운 소설을 반복해서 읽다가, 영문판을 함께 사서 군데군데 함께 찾아보며 읽고 있다. 종종 경이롭게 아름다운 영어 문장의 어감을 도저히 살릴 길 없는 한국어 번역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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