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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Feb 08. 2021

<장애의 역사>가 활용되는 순간들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님의 <가만한 당신> 글에 내가 번역한 <장애의 역사>가 등장했다. 역자 입장에서 이렇게 그 글이 잘 사용되는 순간을 볼 때마다 그저 감사하다. 작년 11월에는 전남매일신문에도 <장애의 역사>가 등장했다. 더 많이 활용되고 이용되기를. 


--------------

1.

장애- 비장애를 비정상- 정상, 무능- 유능의 이분법으로 나누고, 장애인을 우생학적 단종시술로 도태시키거나 시설에 강제수용해 격리- 배제하던 때가 있었다. 미 연방대법원이 장애인 시설 수용자에 대한 불임-단종시술을 수정헌법 14조(평등조항)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한 게 1927년이었고(Buck v. Bell), 큐잭이 태어난 50년대에도 장애인은 시민적 자질인 자립-자결 능력이 결여된 존재여서 시설에 수용하는 게 그들과 공동체 모두에 이롭다는 게 상식이었다.('장애의 역사' 참조. 킴 닐슨 지음, 김승섭 옮김, 동아시아)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20412270002452?did=DA



2.


그럼 의존적이다는 것은 나쁜 것일까 좋은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김승섭교수가 번역한 책 '장애의 역사' (킴 닐슨 저)에서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토착민 사회에서는 오늘날 '장애'에 해당하는 단어나 개념은 없었고, 오히려 신체적인 상태가 아닌 사회적 관계에 따라 정의했다고 한다. 즉, 장애의 의미는 누군가가 공동체와 관계가 없거나 약할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었다. 유럽인이 오기 전 토착민이 사용하던 부족 언어의 수는 2,000개가 넘었고, 다른 부족을 만날 때 그들은 상시적으로 수어를 사용했다.



그런 사회에서 농인은 청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공동체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또한 인지적 결함을 가진 젊은 남성이 물을 운반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는 뛰어난 인재일 수 있다. 물을 필요로 하는 공동체에서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면, 낙인 없이 공동체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는 호혜 활동에 참여했고, 균형 속에서 살아갔다는 것이다. 토착민 공동체에서 인간의 가치는 개인의 독자적 역량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규정됐다.



애초에 인간은 독립적일 수 없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상호의존적이기에 다양한 개인들이 공동체 속에서 역할을 찾도록 배려하는 것이 인간다운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http://www.jndn.com/article.php?aid=160499013230774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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