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요즘 들어 준이의 짜증이 부쩍 늘었다.
가만히 이유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엄마 아빠와의 소통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다.
준이가 말이나 행동으로 무언가를 표현했는데 엄마 아빠가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엉뚱한 반응을 보일 때면 어김없이 준이는 짜증을 낸다.
지금까지는 준이와 엄마, 아빠 사이만 알아들을 수 있는 무언의 약속이 이루어진 단어가 있었다.
그 약속된 단어로 소통을 할 때는 준이가 이렇게까지 짜증을 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준이가 여러 단어를 제법 나열하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엄마, 아빠가 그 새로운 소통 방식에 아직 코드를 정확하게 맞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준이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마도 준이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엄마, 아빠는 이것도 못 알아들어?'
'내가 얼마나 쉽게 말해야겠어?'
'아놔! 좀 더 쉬운 단어를 배워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한다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도 다행인 건, 조금씩 준이와의 코드가 맞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준이 엄마, 아빠로 살아온 짬밥이 이제야 조금씩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
물론 늦은 밤 아이스크림을 찾거나,
엄마 아빠가 마시는 커피를 호시탐탐 노릴 때처럼
준이가 원하는 것을 바로 얻을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준이는 짜증을 낼 수밖에 없다.
엄마, 아빠가 "지금은 늦었으니깐 아이스크림은 내일 먹자", "커피는 안돼!!" 등
준이의 코드에 맞춰 줄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준이는 바닥에 엎드려 잠시 짜증을 부리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음을 그간의 경험으로 인지하고 있기에
못내 엄마, 아빠의 코드에 준이가 맞춰주는 것이다.
22개월 차 인생 준이도 이렇게 엄마 아빠와 소통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워가고 있다.
아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준이는 가족이라는 작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하여 머릿속으로 똑같은 단어를 수천번 되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닌 누군가와 원활한 소통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을 부단히 하여야 함을
요즘 준이를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우리 사회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집단에 대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5년 8월
준이의 짜증이 부쩍 늘어난 이유를 아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어딘가에 남겨 놓았던 글
2025년 11월
대한민국 구성원들 간에도 원활하진 않더라도 활발한 소통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