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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꾼도시워킹맘 Dec 05. 2022

브런치 작가로 시작하겠습니다.

18년 차 직장인이 새로 가진 발칙한 꿈을 위하여


몹시 부끄럽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얘기하기가.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자랑해야겠어 아이에게 살짝 고백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브런치가 뭔지도 모르지만 열렬한 응원의 눈빛을 보내주었다. (오오, 엄마가 생각보다 대단한데 라는 눈빛도 살짝 있던 것 같다.)


고민은 시간만 늦출 뿐이라 했던가



하고 싶다. 할 수 있을까? 한다고 될까? 일단 해볼까?

하루는 무슨, 10초의 시간에도 마음이 오락가락, 널을 뛰었다. 결심을 내뱉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선언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 아이에게 얘기했다. 글을 쓸 거라고, 당장은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종국에는 동화작가가 될 거라고. 남편은 갑자기 웬 작가냐며, 작가는 아무나 하느냐고 비웃을 것 같았다. 아이는 어설픈 엄마의 꿈에 대한 비밀을 지켜줄 것 같았다.


“Emily, 사실 너한테 할 말 있어.” (Emily는 아이가 스스로 지어 부르는 영어 이름이며, 여기에선 본명 대신 쓰기로 한다.)

“뭔데?”

“너 꿈이 뭐야?”

“나? 맨날 얘기했잖아. 디자이너 될 거라고, 꿈 얘기는 또 왜?”

“아니, 그냥.”

“할 말 있다며, 그거 물으려고 했어?”

“아니, 사실은, 있잖아.”


생각보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작가는 박경리, 박완서, 김영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났어요 하는 넘사벽 작가님들이어야 하지 않은가 했다. 그건 아니라도 타고난 문장가 같은 문유석, 이슬아, 임경선 작가님들이 떠올라 주춤했다. 황선미, 김리리, 이현 작가님처럼 아이들을 위한 이야깃거리가 넘쳐흐르지도 않는다. 인스타, 페북에 있어 보이는 문장 몇 줄 쓰는 것도 어려웠다. 아이에게 고백하려는 순간에도 이런 생각들이 나를 멈칫하게 했다.


“있지, 저기, 그게 말이야.”

“도대체 뭔데 그래? 빨리 좀 말해봐.”

“엄마도 꿈이 생겼어.”

“뭔데?”

반짝이는 호기심을 눈에 담고 쳐다보는 아이의 표정이 말해줬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엄마를 응원할 거라고. 진심으로 엄마가 그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글 쓰는 작가가 될 거야. 지금은 연습부터 해야 되겠지만, 언젠가 꼭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는 동화작가가 될 거야.”

“좋은 생각 같아. 엄마가 작가가 되면 좋겠다. 글 쓰면 나도 보여줘.”




내뱉고 나니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해야 했다. 무슨 일이든 장비발이 시작의 원동력이 되는 나였다. 장비가 필요했다. 회사 노트북은 업무용이기도 하고 보안 프로그램 때문에 파일을 빼낼 수도 없다. 집에 있던 노트북은 아이 온라인 수업, 영어 영상 보는 데 사용하고 있으니 마음대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아이패드를 샀다. 글을 쓸 거니까 키보드 액세서리도 같이. (남편에게 글 쓴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비웃을 것 같아서. 아이패드를 왜 사냐느니, 꼭 필요하냐느니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글 썼어?”

“아니, 쓸 거야.”

“왜 말만 하고 안 써? 아이패드도 샀잖아.”

“써야지, 쓸 거야. 글감 고민 중이야.”

“그냥 써, 일기 쓰는 것처럼. 내가 상상으로 글 쓰는 것처럼.”

“그럴 거야. 재촉하지 마. 엄마도 엄마만의 속도가 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이가 물을 때마다 찔렸다. 부끄러웠다. 괜히 얘기했다 싶었다. 이러다 글도 못쓰고, 아이에게도 말만 하는 엄마로 남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잔소리도 힘들어지겠네. 엄마도 글 안 쓰면서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 머릿속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윙윙대는 것 같았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내 옆에서 아이는 글을 쓰겠다며 공책에도 끄적끄적, 노트북으로도 타닥타닥. 벌써 몇 편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나보다 낫네. 너 생각보다 실행력 있구나. (아이가 쓴 글은 블로그에 공간을 따로 만들어 차곡차곡 저금해둘 테다.)



글을 쓰겠다고, 작가가 되고 싶다고 고백한지도 몇 개월. 시작도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여느 날처럼 인스타를 보는데 눈에 들어온 브런치 작가 되기 프로젝트. 아이 교육 관련된 콘텐츠를 찾다가 알게 된 작가이자 인플루언서, 강연자이자 유투버인 분의 엄마들을 위한 브런치 작가 데뷔하기 프로젝트였다. 3주간의 강의와 숙제가 있고, 브런치 작가 데뷔에 성공하면 수강료 일부를 환급해준다 했다. 환급 금액이 문제가 아니었다. 환급은 강의는 물론, 어느 정도의 합격률에 대한 자신감의 표시이지 않나. 따라가다 보면 나도 될 것 같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홀린 듯 신청했다. 온라인으로 강의가 시작되었고, 숙제와 단톡방 메시지가 몰려들었다. 비슷한 마음을 먹은 탓인지 동지애가 느껴지는 단톡방의 메시지들이 실행의 촉매제가 되었다. 파도에 휩쓸리듯 숙제를 하기 위해 무어라도 쓰기 시작했다. 자기소개, 쓰고 싶은 글의 주제와 몇 개의 목차들. 쉽지 않았다. 그래도 썼다. 쓰레기를 써 내려갔다. 쓰고 고치고 고치고, 고쳐서 좀 나아진 쓰레기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그러다 보면 언젠가 꿈에 한 발짝 다가가겠지란 기대를 안은채.

3주가 채 지나기도 전에 프로젝트 동기들의 브런치 데뷔 소식이 들려왔다. 축하의 마음 반, 조바심 반. 마음을 고쳐 매고 앉아 써 내려가고 고쳤다. 며칠을 끙끙대니 소중한 첫 글을 써졌다. 브런치 앱을 열고 작가 신청을 했다. 드디어 해버린 것이다. 월요일이 되어야 결과를 알 수 있을 테지만 계속 들락날락 알림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띠링”

성공이다. 브런치 데뷔.



이게 된다고? 됐다고? 심장이 쿵쾅쿵쾅, 손이 바들바들. 나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성공이었다.

https://brunch.co.kr/@white1012/1


첫 글이 브런치와 다음에 노출되어 순식간에 조회수도 10,000이 넘었다. (데뷔 작가 글이 비교적 잘 노출된다는 말이 있더라.) 조회수도 좋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무슨 일이든, 지금과는 다른 일이 생기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엇이든.




이제 시작이다. 거북이처럼 꾸준히 해 볼 테다. 그렇게 하루가 쌓이고, 일주일이 쌓이고, 1년, 2년이 쌓여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고 볼 테다. 진짜 동화작가가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나.


‘나는’ 글 쓰는 술꾼도시워킹맘이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글쓰기 강의에서 ‘나는’ ‘내가’ 덜어내라 하였지만, 이 문장은 꼭 ‘나는’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날에, 진짜 작가가 될 것이다.


P.S. 남편에게는 브런치에 글이 100개쯤 쌓이고 나면 얘기해볼 테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그리고 동화 작가가 될 거라고.



이미지 출처 : Unsplash

블로그 : blog.naver.com/1012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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