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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꾼도시워킹맘 Dec 13. 2022

찐 으른 이그든요.

돈보다는 가치

1년 전 어느 날, 번개로 만난 27년 지기 친구와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넌 언제 진짜 어른이 된 거 같다고 느꼈어?"

"글쎄, 메뉴판 가격 안 보고 주문할 때?"

"너도? 나도. 남편도 그렇다더라. 다 비슷한가 봐.”


이 대화를 나누던 식당은 여의도의 고급 한우 식당이었다. 웬만한 고기 메뉴는 130g에 65,000원 ~ 75,000원 정도 하는, 둘이 고기와 식사, 술을 곁들이면 20만 원쯤은 훌쩍 넘는 고급 식당. 비즈니스 미팅도 아니었고 법카찬스도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났으니 분위기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거 먹자며 선택했던 식당이었다. 메뉴판을 보고도 어떤 메뉴가 만원이 싼 지, 몇 천원이 비싼지 계산하지 않았다. 꽃등심, 살치살 우선 하나씩 먹어보자. 찌개도 하나 시킬까. 좋지. 나는 소주, 넌 차 있으니 콜라도 하나. 식당에 들어와 메뉴판을 보고 주문까지 5분도 안 걸렸다. 주저함이라고는 없는 주문.


사회생활 20년 차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진짜’ 친구와 나누고 싶은 분위기와 맛의 가치가 음식 가격보다 우선이었다.




평범했던 일요일 저녁, 집밥에 지친 나는 남편, 아이와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가는 날이 장날. 왜 하필 만석인가.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고급 양갈비 식당이 보였다. 고급 오마카세 식당처럼 바 좌석만 몇 개 있는, 여느 양갈비 집 보다도 블랙톤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고급식당으로 보였다.


"삼겹살집 기다리지 말고 여기로 갈까?"

"엄청 비싸 보이는데?"

"비싸 봐야 2~30일 텐데 뭐."


브런치 첫 글에도 썼지만 나는 '집도 없지만 사립초를 보내는 엄마' 이기에 (절대적 생계형 워킹맘이다) 집밥 차리다 지쳐 해결하러 나온 한 끼 식사에 기다리기 싫다는 이유로, 그것도 츄리닝 바람으로 그만한 돈을 지불할 의사는 없다. 생일이나 기념일이라면 모를까. 미쳤니? 한 마디 하고 삼겹살을 먹었다. (삼겹살 외식값도 만만치 않기에 계산하면서 후회는 했다. 아씨, 고기 사다 집에서 먹을걸.)


계산하고 나오는데 양갈비 집이 눈앞에 보였다. 기념일에 한 번 와봐야지 싶었다. 엄두도 못 낼 정도는 아니다 싶었다.




후배의 MBA 합격 축하 자리 겸, 연말 송년회를 겸해 회사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장소를 정하다가 오간 대화.


"거기 비싸지 않아?"

"뭐 어때. 연말인데 좀 조용한 데서 맛있는 거 한 번 먹자. 시끄러운데 말고."


그렇다. 막내도 사회생활 10년 차가 훨씬 넘은 모임에선, 음식이 좀 비싸더라도 조금은 조용한, 조금은 고급스러운 데서 일 년 동안 고생한 너와 나를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엄마와 식사할 일이 있던 평일 점심시간. 회사 앞 백화점의 좋은 이탈리안 식당에 가서 엄마가 드셔 보시지 못했을, 드셔 보셨더라도 가격 생각 안 하고 마음 편히 시켜본 적 없을 음식과 와인을 주문했다. 엄마는 뭘 이렇게 많이 시키냐고 나무랐지만 그게 뭐 어때서. 더 시켜드리고 싶었다. 이게 뭐라고 그래 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엄마 딸 지금이 돈 제일 많이 버는 때일 수도 있으니 사줄 때 맘껏 먹으라고 큰소리쳤다. 딸 덕분에 호강한다던 엄마 미소는 한 동안 가슴 한 켠에 담겨있을 테다. (아빠, 미안)






메뉴판 가격. 그게 뭐라고, 사람 참 오그라들게 만들 때도 있었다. 학창 시절 떡볶이도 니돈 내 돈 모아서 사 먹었고, 대학 때도 돈이 없이 닭갈비 대신 닭갈비 볶음밥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사회초년생 시절 부모님께 식사 대접하겠다 큰소리 떵떵 치고는 메뉴 추가하면서 되지도 않는 암산으로 머리 아픈 적도 있었다. 아직도 최저가를 검색하기도 하고 마트에서 할인 품목 아니면 사지 않고, 퇴근길 백화점 식품관 마감세일로 사던 건 정가에는 죽어도 못 사겠다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 보다 중요한 가치가 생기고 그 가치에 돈을 지불하게 되었을 때 생각했다.

나 쫌 으른인데?



사실 이런 생각을 하고, 가치에 돈을 마음 편하게 쓰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에 돈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날이 좀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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