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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Feb 05. 2023

틀린 감정은 없다

불편한 감정 티 내기

일본에서 룸메이트와 거실에 앉아 주식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한창 주식에 관심이 가있던 룸메이트는 그날도 나에게 주식을 권하고 있었다. 그땐 돈이 없기도 했고 주식은 배운 사람들의 도박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주식은 불로소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려서부터 다들 그런 생각이 주입되지. 넌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 거야."


퍽! 무방비 상태에 갑자기 어퍼컷이 날아왔다. 울컥한 마음과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우선 무슨 상황인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나의 이성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 제가 폐해라고요?"

"응."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니 두 배로 후끈 달아오르는 이 울분. 아무렇지 않게 확인사살하는 그녀의 태도에 그나마 붙잡고 있던 이성도 휘청댔다.


불로소득이라는 말에 기분이 나빴던 건가? 그래서 나를 욕하는 건가? 폐해 단어의 뜻이 내가 아는 그 뜻과 달랐던가?


그러다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질문이 나에게 얄궂게 속삭인다.



근데 너... 여기서 화를 내도 되는 거야?






분명 화가 났다. 화가 났지만 개떼처럼 달려드는 걱정과 갈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의 분노는 내면에서 숨죽인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까딱 잘못해서 싸움으로 번지면, 그래서 언니랑 관계가 틀어지면 어떡하지? 주변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언니는 여러 사람들과 두루 친하니까 분명 내가 성격이 이상하다고 단정 짓겠지? 집 다시 구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가전제품도 다 사야 하잖아. 돈도 부족한데... 난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는데.'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골라 살뜰히 장바구니에 담는다. 가득 찬 걱정과 두려움을 바라보고 있으니 두려움은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윽고 화살을 나에게 돌린다.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녀는 저렇게 나쁜 의도로 말할 사람이 아닌데 왜 아니꼽게 받아들이는 것인가 등 화를 낼 수 없으니 화를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의 감정이 잘못된 것이라 자책한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결국 울분을 힘껏 억누르고 말했다. 참 어리석은 대처였다. 그녀가 정확히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 알아내려는 마음도 생기지 않을 만큼 사소한 갈등조차도 무서워서 피해버리고 싶었다. 너무 억울했지만 올바르게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몰랐던, 몸만 자란 미숙한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이후도 난 같은 실수를 반복하였고 병까지 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갈등을 회피하다가는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꼴깍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나에겐 이해심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공포를 느꼈던 나를 침착하게 받아주었고 그 과정에서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해소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지난날의 한을 푼 것만 같아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세상에 틀린 감정은 없다고 오은영 선생님이 그랬다. 내가 속상하면 속상한 일이 맞다. 화가 나면 화내도 되는 거다. 내 감정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그대로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된다. 내가 나인 것처럼 감정도 그 자체로 고유한 감정이다.


불편한 감정은 센스 있게 잘 표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지금 나에게 말한 건 좀 기분이 나쁘다며, 가볍지만 장난 같지 않은 말투로 툭. 그렇게 상대방에게 티를 낸다면 스스로의 감정도 존중하고 나와 상대방의 관계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만약 상대방이 급발진한다면? 이 때도 무엇하나 틀린 건 없다. 단지 그 사람과 나는 맞지 않는 사람일 뿐이므로 그냥 그렇구나 받아들이면 된다.



Photo by Anna Shv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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