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ite Jan 22. 2023

나홀로집에 HOME ALONe에서 e만 소문자인 이유

정말 쓸데없이 궁금했다

나는 크리스마스 덕후다. 여름 더위만큼이나 추위도 엄청 타지만 내가 겨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크리스마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나홀로집에’ 영화 시리즈다. 케빈 맥칼리스터와의 12월 만남은 나만의 전통이자 1인 연례행사가 되었다.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오고 벽 인테리어를 고민하다가 포스터를 구매해 붙이기로 했는데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나홀로집에 1편 포스터가 자리하고 있다.


며칠 전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뻐근한 등짝을 피려고 문지방을 밟고 서서 나홀로집에 포스터를 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뇌는 쉬고 싶지 않은지 포스터의 글자를 하나씩 뜯어보기 시작했다.


FROM JOHN HUGHES
HOME ALONe
A FAMILY COMEDY WITHOUT FAMILY


“엥, 왜지?”

다들 거대한 대문자의 자태를 뽐내는 가운데, 그것도 영화 타이틀의 마지막 ‘e’한 녀석만 미운오리새끼마냥 소문자였다. 이건 120% 의도성이 다분한 연출이다. 직감과 동시에 호기심 발동, 재빨리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 구글링을 해본다. 오, 나왔다! 역시 나 같은 사람도 많구나. 근데 그 순간 뭔지 모를 기분이 마우스 클릭을 멈춰 세웠다.


“궁금하긴 한데 내가 추리해 봐야지 흐흐“


열려있던 크롬창을 잽싸게 닫고 오랜만에 재미있는 거리를 찾았다는 듯 살짝 기분이 업되었다.(살짝 변태 같은 성향을 부정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먼저 떠오른 추측은 케빈의 상징화였다. 가족과 친척들 사이에서 트러블 메이커이자 덜 떨어진 금쪽이 취급을 받는 케빈은 집 안에서 늘 남들과 다르고 튀는 아이였다. 황급히 공항픽업 차를 타고 떠난 식구들 뒤로 집에 딸랑 혼자 남은 케빈의 모습은 마치 나머지 대문자들 뒤에 툭 떨어져 있는 e를 빼닮은 느낌이었다.


두 번째 추측은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존재가 혼자 신나게 놀고 악당도 물리치는 등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유쾌함‘의 표현이었다. ALONE이란 단어가 주는 단조롭고 잔잔한 외로움의 감성을 비튼 거다. ALON…e? 마치 ‘어… 혼자라는 게 이런 느낌도 나는 거야?’의 감성이랄까. 35도 정도 기울어진 e의 자세에서 고독의 정취를 즐기는,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와 편하게 친구 먹는 케빈 어린이의 여유가 느껴졌다. 천조국의 진도준이 아닌가 싶은 인생 2회차의 짬 같다.


이제 정답지(?)를 보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장 확인하고 싶지만, 내 글을 바로 고치거나 지우고 싶을 정도로 이상한 갭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글을 조금 숙성시킨 뒤에 확인해 보아야겠다.


난 참 혼자 잘 노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30대 되면 뭐 하나쯤은 돼있을 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