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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May 12. 2021

부모에게 자식은? 자식에게 부모는?

5월 가정의 달에 영화 '더 저지'를 통한 아버지와 아들의 애증, 화해


'가족 세우기'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심리치료가 버튼 헬링거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연, 겸손 질서,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을 두고 흔히들  '천륜'이라 말한다. 말 그대로 하늘이 맺어준, 인간 뜻대로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의미한다. 살면서 주변을 보면 부모와 자식이 살갑게 지내는 경우도 볼 수 있지만 서로 골이 패일대로 파여버린 상처들을 끌어안은 채 때론 원수 보다도 더한 냉랭하고 힘든 관계로 상대를 탓하고 원망하며 상처 주는 관계도 적잖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DNA는 육체뿐 아니라 마음, 정서까지도 복사한다.  결국 우리 안에는 각자 부모의 온갖 것들이 뒤죽박죽 담겨 있다는 얘기이다.  부모의 외모, 성격, 행동 패턴 및 방식, 질병 등등. 따라서 누군가 지속적으로 부모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밀쳐내며 살고 있다면 그럴수록  자신은 더욱 부정적인 내면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고 결국 삶은 행복해지기 어렵다. 

 일찍부터 습관처럼 " 엄마나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는 입찬소리를 내뱉고 살아왔다면 이들이 그토록 저항했던 자기 부모의 싫은 모습들을 나이가 들수록 자기 자신 속에서 거울처럼 문득문득 마주 보게 될 것이다.  부모와의 화해는 결국 직면한 자기 삶 속에 많은 부정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배경이자 중요한 열쇠인 셈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자식들은 대부분 자기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미 사랑을 받았는데도 관계가 좋지 않으면 인간의 뇌에서 망각의 작용까지 발동해 받은 것을 기억 못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의식에서 밀쳐진 단상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으로 침착됨으로써 살아가는 내내 접하는 각종 인간관계에 있어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 자식 간 애증, 갈등, 치유를 다룬 영화'더 저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영화 '더 저지'는 제목과는 사뭇 달리 부모와 자식의 애증, 갈등, 치유를 다룬 가족 영화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탁월한 능력과 부를 소유한 변호사 헨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한 가지 결핍된 것은  ‘행복한 가족’이다. 부인과는 이혼 직전이고 아버지와는 단절하고 산지 오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몇십 년 만에 고향에 내려간다. 하지만 마주친 아버지에게 '아버지'라 부르지 못할 만큼 이미 증오가 가득 찬 먼 사이다. 어머니의 장례식 후 그날 밤 아버지는 차를 끌고 나갔고 다음날, 갑자기 경찰이 찾아와 차 사고로 도로에서 죽은 사람의 살해 용의자로 아버지를 붙잡아간다.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용한 마을 변호사의 무능함을 견디지 못한 헨리가 마지못해 아버지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이들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오랜 세월 꽁꽁 숨겨 놓았던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며 가족의 아픈 스토리가 노출된다. 

그러나 함께 부대끼면서도 행크는 말기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도와줌으로 아버지를 보다 이해해나간다. 즉 서로를 미워하고 갈라놓게 한 결정적인 사건에 이르게 되지만 결국 행크는 깨닫게 된다. 그가 원했던 것은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이었음을.

그 결정적인 큰 사건의 줄거리는 이렇다. 20년 전, 미성년 시절 사고를 친 행크를 아버지는 명예를 존중하는 법관답게 고지식하게도 아들을 소년원에 가둔다. 그리고 같은 무렵 아버지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 마크 블랙웰의 재판을 맡게 된다.  그런데 공정하기로 소문난 아버지는 소년원에 있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마크 블랙웰에게 아주 가벼운 형을 내렸다. 하지만 마크 블랙웰은 출소하자마자 사람을 죽이고 이를 지켜보고 크게 실망한 아버지는 이후 아들 헹크를 보면서 마크를 떠올린다. 즉 범인에게 배신을 당한 만큼 아들에 대한 믿음도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아버지의 변호를 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이러한 일련의 사실 속에서 헹크는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부자는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잠시나마 좋은 시간도 갖는다. 어릴 적 헹크가 아버지에 대해 유일하게 행복한 추억으로 지니고 있던 낚시 장면을 떠오르며 부자는 호수 한가운데 낚싯배에 앉아 오랜만에 살가운 시간을 느껴본다. 이 자리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뜻밖의 고백을 한다. 명예로운 법관으로서 이제껏 자신이 가장 인정하는 변호사는 다름 아닌 바로 헹크, 자신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이 고백이 세상에 남긴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영화는 이내 막을 내린다.       

영화 속 아버지와 아들의 슬프지만 벅차고도 감동적인 화해를 보면서 문득 어느 시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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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마음은 자식의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저수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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