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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Mar 01. 2020

3. 삶은... 달걀?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지. 딩동댕동. 척척박사님.


 스무 살 무렵이었을까 아님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이었을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천재들의 삶이 혹은 예술가의 삶이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졌다. 세상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거나 스스로가 자신을 끊임없이 검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면 인간의 ‘삶’이 너무나 가혹하게 비쳤기 때문이다. 천재들의 삶에는 보통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동화 같은 결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절하거나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도 하고, 행방불명되기도 한다. 선구자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삶과 작품은 다른 이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내 눈엔 보통 자신의 삶을 태워 온기를 전하는 촛불 혹은 성냥개비의 불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래서 늘 천재나 예술가가 되고 싶기보단 ‘보통의 존재’가 되고 싶었다. 온통 ‘예술’이란 특정 생각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내고 싶은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행위가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잘하고 싶은 욕심이야 늘 생기지만 잘하면 좋은 거고(같은 쿨함은 사실 어려울 때가 더 많지만) 같은 생각을 호기롭게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학창 시절에 잠깐 사진이 찍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거 같긴 하다. 사실 언젠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시절. 또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객기였을까) ‘내가 사진을 잘 찍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던 적도 있었다(그게 언젠지 기억나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 면에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내 짝지는 아무리 피곤해도 자신이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자고(부지런도 해라), 또 다른 눈이 되어주는 ‘카메라’를 사랑한다(‘얼마나 다행인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물고기는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존재”라고 말하다 이내 “아니야, 나를 살아가게 하는 건 그 애야”라고 뒤이어 말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짝지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걸 알게 되려면 ‘노인’ 정도는 돼야 하는 걸까.

 아무튼 사진 찍는 일에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거 같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눈 앞에 두고 이리저리 다른 각도로 사진을 찍는 건 참 힘이 든 거니까. 음식 사진을 찍을 때 유독 흔들린 사진이 많은 건 사진보다 ‘음식’이 더 중요해서다. 내가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면 거기엔 늘 내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쁜 ‘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는 해가 물에 비친 모습이 너무 예쁘다는 짝지에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해는 보였지만, 님을 찍느라 나는 예쁜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오름. 그런 면에서 내 짝지는 얼마나 이성적인 사람인가. (아닌가 사진을 좋아하는 건가?) 

 아무튼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재능이다, 라는 님의 말대로라면 님은 사진 찍기에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천재나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우린 이미 충분한 재능을 지녔다. 움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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