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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Oct 23. 2020

햇살 좋은 날

여의도 공원과 월드컵 공원

 드라마 '온에어'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면 중 하나가 있다. 남녀 주인공이 어느 맑은 날 주고받는 대사다. 뭐하냐는 질문을 받은 주인공은 "광합성하는 중"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두 주인공은 햇살을 만끽한다. 어떤 이는 눈물짓고 어떤 이는 그런 이를 위로한 채로. 날씨는 좋지만 마음이 좋지 않을 때, 햇살을 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광합성'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어쩌면 사람 역시 살기 위해 광합성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맑은 날 햇살을 쬐면 마음은 좋지 않지만 날씨라도 좋아 얼마나 다행인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 때가 있다. 


 햇살 좋은 날엔 가벼운 산보만으로도 활력이 충전된다. 더 좋은 곳으로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야 없지 않지만 체력과 시간을 아끼며 기분전환까지 꾀할 수 있으니 사실 어쩔 땐 이쪽이 훨씬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지난 주말에 만난 친구는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며 외출을 자제하는 대신 동네 한강 공원 산책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우울감과 답답함을 떨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공원을 걷거나 뛰는 사람들을 무수히도 많이 본 한 해였다. 작년에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다. 

 달라진 세상 풍경에 찾아오는 불안감과 답답함을 어찌 다 떨칠 수 있겠냐만 햇살 좋은 날엔,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만끽해야만 하는, 기억해야만 하는 풍경과 바람이 있다는 생각이 강렬히 드는 요즘이다. 한글날엔 여의도 공원을 찾아 세종대왕 동상을 보며 감사하단 인사를 드렸다. 휘이, 공원을 한 바퀴 돌며 만나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을 보며 왜인지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재잘되는 소리를 가까이에서 접했기 때문일까. 동심으로 돌아갈 순 없겠지만 가끔 잠시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곤 한다. 이날은 우연히 화장실에서 엄마와 협상하는 한 소녀의 대화를 엿듣고 빙그레 웃음 짓기도 했다. 소녀는 솜사탕을 먹고 싶어 했다. 솜사탕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나이였다.


 다음날엔 월드컵공원을 찾았다. 짝꿍은 몇 달 전에 자신이 만든 비행기를 날리고 싶어 했다. 사실 솔직히 나는  제 갈 길을 찾지 못해 고꾸라지는 비행기가 조금, 아주 약간 당황스러웠는데 어디서건 마주친 아이들마다 관심의 눈빛으로 오래도록 우릴 쳐다보고 있어서 엄청난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잘 날려야 할 것만 같은.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행기는 역시나 제 갈 길을 갔고. 그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열심히 찍다가 비행기 대신 가을날,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다. 날다람쥐 같이 나온 사진은 매우 만족스러웠고. 해지는 것을 카메라에 담을 때까지 광합성을 제대로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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