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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Dec 02. 2020

뜨끈한 한 그릇

강릉 감자 옹심이


감자 옹심이(왼쪽)와 옹심이 칼국수. 사실 내가 먹은 건 옹심이 칼국수였다.


 지난달 7~8일 강릉에 다녀왔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한 이맘때 가을 정취의 막바지를 즐기러 모인 인파들 속에서 나는 혹여나 추울까 두툼한 잠바를 꼭 여미고 있었다. 그러나 막 도착한 강릉 바다는 생각보다 포근했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그들의 발걸음 마냥 가벼웠다. 이 정도 날씨라면 바닷물에 발을 담가봐도 좋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타킹을 신고 있어 망설여졌다. 신발이 젖을까 걱정됐던 것이다. 그렇게 바닷물엔 다음날 들어가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하루 만에 날씨가 뒤바뀌어있었다. 매섭게 부는 바람에 바닷가를 걷기 힘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발을 담근 건 까짓 거 뭐 어때, 란 객기보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만히 파도를 들여다보는 것도 좋지만, 바닷물의 기온을 직접 느껴보는 것 역시 다른 재미가 있기 마련이다. 물은 찼다. 발만 살짝 담가보려 기웃거릴 때 갑자기 넘어온 파도에 신발이며 양말이 젖어버렸다. 쌀쌀한 바람이 불 때마다 발은 점점 더 쨍하게 어는 느낌이었다. 바다를 보고, 호수를 건너 다시 바다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감자 옹심이를 먹으며 몸을 녹이기로 했다.


 벌써 한 달이 되어가는 지난 여행. 무슨 짐이 많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피로가 더해져 몸이 가볍지만은 않았던 늦은 오후였다. 말캉하지만 감자의 아삭한 식감을 가진 옹심이, 해물이나 고기의 진한 향 대신 삼삼하게 느껴지던 멸치 다시다 베이스의 육수. 자극적이지 않았으나 부족함 없는 맛이었다. 옹심이를 먹으러 가는 길에 만난 택시기사분은 감자가 흔했던 어린 시절 그중에도 옹심이는 정성이 더해진 별미에 가까운 음식이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그 맛을 알았다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나도 이 맛을 떠올리곤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의 음식이란 얼어있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녹이는 데도 으뜸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추억담을 듣고 있으면 여간 부러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지역 음식일 경우 특히 더 그랬다. 그러나 어린 시절엔 몰랐을 맛일지도 모른다. 시골에서 가끔 먹던 게국지의 맛을 모른 채 자랐던 것과 같을 것이다. '별미'가 되려면 특별한 힘이 필요한 듯하다. 은근한 시간의 힘을 더하거나 특별한 사람이나 추억이 더해져야 비로소 맛이 드는 것이다.

 

 어느새 한 해가 다 가고, 12월 한 달만을 남겨두었다. 1주년 기념으로 찾았던 강릉에선 은근한 불에서 익혀냈을 감자 옹심이를 먹으며 몸을 녹여냈다. 보고 싶었냐는 질문에 원하는 대답은 해주지 않을 거라고 말하던 답답한 사람과는 큰 싸움과 잦은 다툼을 반복하며 어찌저찌 1년을 만났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우울감은 어느 정도 적응된 듯도 했으나 마스크의 답답함은 때때로 너무 크게 느껴졌고, 조금은 안정세가 아닌가 싶다가도 확진자 수는 큰 폭으로 늘어 연일 400~500명을 기록하고 있다. 나아질 수 있을까, 란 모든 질문에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비관하고 싶지 않아도 낙관하기 어려운 한 해였다. 그렇다면 내년과 후년은 또 어떠려나. 역시나 모르겠다. 그럼에도 추운 겨울 뜨끈한 옹심이 한 그릇이 떠오른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극적이기만 하거나 식탐을 동하게 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은 한 달은 몸이 기뻐할 음식을 많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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