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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맹 Oct 01. 2015

잠기다_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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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작은 방안. 훌쩍 대는 소리만 가득하다. 한 여자가 몸을 둥글게 말고 침대에 앉아 있다.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는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여자의 발치에 던져져 있는 전화기만 편하게 뻗어있었다. 


여자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액정이 켜지자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붉게 물든 눈으로 액정을 바라보던 여자의 고개는 곧 다시 꺾였다. 떨어지는 손에 매달려있던 전화기는 침대 위를 뒹굴었다.  


방안은 아무 소리 없이 조용했다. 창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와 앙칼진 고양이의 울음 소리만 방안에서 울렸다. 


1시간 같은 10분이 흘렀다. 여자는 조용히 전화기를 건져 올렸다. 손가락에 걸려 올라온 전화기의 화면은 밝게 빛났지만 여자의 미간은 더 깊게  그늘졌다. 단 하나의 메시지 조차 오지 않았다. 


여자는 메신저를 켰다. 남자와 여자 단 둘만이 연락하는 메신저를 열어 메시지를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남자에게서 온 메시지는 오전 11시 31분 '이제  일어났어'라는 짧은  메시지뿐이었다. 그 밑으로는 여자가 보낸 메시지들은  '읽음'이라는 표시만 되어 있을 뿐, 다른 메시지는 보이질 않았다. 찌푸러진 미간이 힘 없이 벌어졌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액정을 바라본다. 그리곤 천천히 대화창을 아래로 쓸어 내린다. 느리게 두어 번 화면을 쓰다듬으니 며칠 전 메시지가 보인다. 자주 흘려 보냈던 말들과 가끔 던져져 오는 글자들이 화면 아래로 쏟아져 나왔다. 여자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전화기 화면만 바라보았다. 


가만히 밝게 빛나던 화면이 꺼졌다. 순간 작은 방안에 육중한 어둠이 떨어졌다. 창밖의 어둡던 하늘이 점점 하얗게 타들어간다. 천천히 타들어 가던 하늘은 결국 새하얗게  재가되었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 보았다. 하얀 안개와 구름이 자욱한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는다.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던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깜깜무소식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새까만 화면엔 여자의 멍한 얼굴이 흐리게 새겨져 있었다. 


한숨을 몰아쉰 여자는 전화기 화면을 켰다. 그리고 메신저를 열어 천천히 문자를 보낸다.

'잠은 잤어? 요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연락도 잘 없고....'


9시 36분

메시지를 보낸 뒤에도 여자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평소 이때쯤엔 일어나는 시간이었기에 메시지를 보내고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다. 한참을.


메시지 옆에 조그맣게 읽었다는 표시가 떴다.

9시 53분.

고작 17분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다 생각했는데, 고작 17분 흘렀다. 시간을 확인한 여자의 머릿속에는 '집착을 하는 걸까?'라는 흐릿한 생각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궁금하다' 그 사람의 일상이 궁금하고, 무슨 생각하는지 궁금하고, 무얼 먹는지 궁금했다. 그저 하루가, 늘 똑같은 듯 다르게 흘러가는 그 '하루'가 궁금하다. '아주 사소한 것을  궁금해하는 것이 집착하는 걸까?'


여자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어번의 신호가 갔고 전화가  연결되었다. 

"왜?" 


수화기에서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 나왔다. 여자는 조심스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메시지 확인은 했는데 대답이 없어서. 어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아니. 머리 아파 나중에 연락할게"

무신경한 대답이 던져졌다.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여자는 던져진 대답에 맞은 듯 옆으로 무너졌다. 머리 맡에 전화기를 밀어 내고는 멍하니 앞만 바라봤다. 머리 위로 열려있는 창문으로 햇볕이 쏟아졌다.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깜빡였다.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을까'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또렷해지는 고민에 시달리는 여자였다.


흐릿한 시야가 점차 어둑해질 즈음 전화기가 울렸다. 반쯤 감긴 눈을 번쩍 뜨고는 전화기를 확인했다. 한 통의 메시지가 화면에 떠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랑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우리 헤어지자. 잘 못 해줘서 미안하고 좋은 남자 만나.'


'이게 무슨 말인가?' 분명 읽을 수는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였다. 10여분을 멍하니 전화기만 바라봤다. 


'도대체 왜 이런 메시지를 보낸 걸까? 내가 그렇게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하얀 한지에 검은 먹물이라도 떨어진 듯 풀리지 않는 질문이 머리 속에서 번져갔다. 


머릿속이 새까매질 즈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또 걸었다. 걸고 걸고 계속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 전화기를 부여잡고 그대로 멈췄다. 


'버림받은 건가?' 새까매진 머리 속은 눅눅해졌고, 결국 찢어졌다. 너무 당황스러워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한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다시 고요한 시간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여자는 침대에 기댄 채 동그랗게 몸을 말아 누웠다. 침대 위에 던져져 있던 베개를 가져다 머리를 올렸다. 흐릿한 시야로 여러 기억들이 흘러간다. 


여자의 눈꺼풀은 점차 무거워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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