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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맹 Oct 03. 2015

되돌아간다는 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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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조명 아래 두 사람이 앉아 있다. 서로 쉽게 말을 꺼내지는 못하지만, 눈빛은 어긋나 있지 않았다. 똑바로 마주쳐 있는 두 눈은 천천히 서로의 모습을 담아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공간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앞에 놓여있는 맥주잔을 집어 들었다. 가볍게 목을 축일 만큼만 마시고는 잔을 테이블로 내려놨다. 그리고 다시 눈을 맞췄다. 여자를 바라보며 씽긋 웃는 남자와 그 모습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는 여자. 둘은 이미 꽤 마신 듯 편안한 눈빛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여긴 변함없네. 다른 곳은 그새 없어졌거나 바뀌었던데."

가게를 둘러보며 남자가 말했다.

"응. 그런 것 같더라."

여자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대답했다. 남자는 가게를 둘러보던 눈을 여자에게 고정했다.


"그리고 너도 변함없이 예쁘네"

남자는 눈을 크게 끔뻑거렸다. 남자의 말을 들은 여자는 피식 웃었다. 남자도 따라 웃었다.


"웃는 게 참 예뻐"

조용히 읊조리듯 뱉어낸 남자의 말에 여자의 표정이 잠시 잠깐 굳어버렸다. 이내 다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 원래 예뻤어."

여자의 대답을 들은 남자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간다. 가만히 여자를 바라보던 남자의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반짝임은 점차 번져갔다.


"보고 싶었어."

남자는 짧은 말을 뱉어내곤 침을 꿀꺽 삼켰다.

"나도"

남자와 여자는 솔직한 감정을 토해냈다. 둘 사이의 공기는 점차 떨리기 시작했다. 감정의 불일치였을까? 눈은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나고, 입은 웃고 있는데 입꼬리는 떨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떨림이 진정될 때까지 그저 마주 보고 있었다.


"다시 만나고 싶어. 너랑"

어느 정도 진정된 남자가 이야기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꺼낸 말은 여자를 흔들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한숨을 내쉰 여자가 말했다.


"나도 많이 생각해 봤어. 오늘은 참 우연히 만나서 너무 좋고 기쁘고 그렇긴 한데..."

여자의 말을 듣고 있던 남자의 표정이 굳어 간다. 두 눈을 질끈 감은 남자를 바라보며 여자는 계속 얘기했다.


"아닌 거 같아. 우리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았고, 그것 때문에 참 많이도 싸웠잖아. 노력해도 많이 힘들었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해도 예전 기억들 때문에 더 힘들 것 같아."

여자의 말이 끝나자 남자는 눈을 뜨고 여자를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 버릴 것 같은 남자는 '아니 내가 변할 게. 예전 기억들 때문에 힘들지 않게, 그런 기억을 떠올리지 않게 내가 잘할게.'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뱉어내지 못했다. 남자는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내가 변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만나고 싶고, 보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그런 감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잘 해줘야지. 상처 입혔던 그런 행동들은 다시는 안 해야지.' 간절히 바라며 했던 생각들, 다짐들이었지만, 결국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만난다는 건 두 사람의 문제일 텐데 그저 막연하게 혼자만의 생각으로 '잘해야지. 잘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 조금 더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떨까?"

남자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들어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반짝임이 사라진 눈은 참 맑아 보였다.

"나는 너무 만나고 싶었어. 그저 다시 만날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예전에 힘들게 했던 것들 다시는 안 해야지, 절대 널 아프게 하지 말아야지... 딱 거기까지만 생각했어. 현실적으로 다시 만나더라도 내가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 없이, 그저 감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


남자의 말을 여자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천천히 얘기하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현실적인 생각을 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내가 우리를 위해서 얼마큼 노력할 수 있는지, 어떻게 변해갈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안 될까? 오늘 이렇게 끝내버리지 말고."

차분하게 말을 마친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천천히 눈을 꼭 감았다.


"미안해. 시간을 좀 달라는 말이 이기적이고 널 힘들게 하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해. 미안해. 그냥..."

남자의 말을 듣던 여자는 숨을 깊게 마시더니 한 번에 훅 뱉어냈다. 남자는 하던 말을 멈추고 여자를 바라봤다.


"그래. 조금 더 생각해보자."

여자는 잠긴 목소리로 말하고는 입술을 꽉 닫았다. 입술은 무언가 더 얘기할 것 같이 움직였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가볍게 미소 짓는 여자의 얼굴엔 작은 원망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남자는 여자의 대답에 조금은 얼굴이 풀렸지만 그렇다고 웃을 수는 없었다. 좋아하는 감정은 있지만, 그것만으론 지나간 추억을 걸고 도박을 할 순 없기에.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하는 순간이기에.


두 사람은 맥주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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