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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화폐일까, 자산일까?

사람 세상 돈 세상

by 하얀자작

최근 나에게 최근 지인이 ‘비트코인(Bitcoin)’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어 왔다. 비트코인의 정체나 투자대상으로 적합한가에 관해 말이다. 이를 계기로 비트코인의 실체를 파보기로 했다. 전문적은 아닐지라도, 비트코인을 접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이해라도 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부디 이 글이 나 같은 문외한들이 비트코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뿌리가 다른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만남


최초의 암호화폐(crypto currency)가 1988년에 세상에 나왔다. 사용자의 정체를 숨긴 채 신원을 보증하는 ‘디지털 화폐’를 만들어 컴퓨터 네트워크를 거쳐 거래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를 ‘e-Cash’라 불렀는데, 당사자끼리 신원을 식별할 수 있으나 은행 등 관리주체는 거래내역을 알 수 없는 은닉성을 보장하는 체계이다. 그럼에도 은행과 연계하여 거래되는 중앙화 암호화폐이다.

한편 1991년에 Stuart Haber와 Scott Stornetta가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을 발표했다. 이는 P2P 방식을 기반으로 “소규모 데이터들이 사슬 형태로 무수히 연결되어 형성된 '블록'이라는 분산데이터 저장환경에 관리 대상 데이터를 저장함으로써 누구도 임의로 수정할 수 없고 누구나 변경의 결과를 열람할 수 있게끔 만드는 기술”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9년에 블록체인 기술기반에 가치를 얹어 ‘사람과 사람’ 간에 전달하는 ‘비트코인’을 세상에 발표했는데, 이는 ‘거래수집 서버’가 없는 탈중앙화된 ‘P2P 거래방식’을 통한다. 이로부터 비트코인은 ①참여자의 익명성은 물론 ②이중지불이 방지되며 ③조세제도나 다른 중앙기관의 개입을 배제하는 특성을 가진다. 특히 초기 개발비용을 발표자가 모두 부담하였을 뿐 아니라, 비트코인의 추가 발행은 일정한 반감기를 거치면서 ‘채굴’이라는 과정을 거쳐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채굴을 위한 컴퓨팅에는 전력이 쓰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트코인의 기능이 알려지고 가격이 오르자, 연이어 다른 형태의 암호화폐로 기술적 분화가 일어났다. 국제송금용 암호화폐인 리플(ripple), 스마트 계약 기능을 갖춘 이더리움(Ethereum), 법정화폐나 상품을 담보로 한 스테이블 코인들이 등장했다. 이들 파생 암호화폐들은 대체로 ICO(Initial Coin Offering)를 통해 초기 투자재원을 조달하거나 발행자의 시세차익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다.


비트코인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은 2024년1월에 미국 SEC가 현물ETF를 승인한 일이다. 이는 비트코인이 ‘디지털 자산’ 즉 상품으로 공식 인정받았다는 의미이다. 이를 계기로 비트코인 거래 시장에 진입한 기관투자자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투자자들에게도 좀더 신뢰할 만한 투자대안을 제공하였다.

또 하나의 사건은 2018년에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일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노력에도 화폐로서 정착되지 못하고 2025년2월1일에 정부가 이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비트코인 전성시대 도래


비트코인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플레이션 위험에서 자유로운 ‘대안 화폐’를 표방하면서 2009년에 세상에 나왔다. 그 당시 세계금융위기를 넘기려 미국이 달러를 무지막지하게 살포하여 통화 가치를 추락시키는 일이 벌어지면서 세계의 모든 경제주체나 전문가들 사이에 ‘달러 기축통화 체제’에 회의(懷疑)를 보이고 있었다.

비트코인은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여 2011년3월까지 1BTC 당 1달러 미만에 머물렀다. 이후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그 변동성이 극도로 높아 한동안 투기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마침내 2017년에 10,000달러를 넘어선 적도 있었지만 이후 하락하여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기도 하였다.¹

그러던 중 2020년 COVID-19 팬데믹에 따른 경제 충격을 해소하기 위한 제로 금리와 통화 무제한 살포는 또 다시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 불을 질렀다. 2021년10월에 60,000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이후 다시 변동성을 보이며 등락하던 시세는 2024년1월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계기로 드디어 100,000달러를 돌파했다.


화폐일까, 상품일까?


화폐의 역사를 볼 때, 경제에서 유통되는 화폐는 기본적으로 ‘신용화폐’이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동양에서는 은(銀)을 기초로 어음을 유통하고, 서양에서는 금(金)을 기초로 보관증을 유통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생산량을 쉽게 늘릴 수 없는 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그 태환성을 기초로 ‘신용증서’를 물건 거래의 결제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희귀금속에 기초한 화폐의 발행 및 유통은 대항해시대부터 수백년 동안 주축국을 달리하면서 1971년까지 유지되어 왔다. 그러던 중 1971년 미국이 “앞으로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금태환 정지 선언을 하면서 전통적 화폐시스템이 막을 내렸다. 이후에도 여전히 국제적 기축통화인 달러의 신용을 맡을 곳은 미국 정부 밖에 없는² 극단적인 ‘신용화폐’ 시대로 진입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세상에 비트코인을 내놓을 때부터 상품이 아니라 화폐라고 주장했다. 발행량이 영원히 한정되므로 화폐가치가 저하되지 않으며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없는 경제가 가능하게 된다는 논리를 함께 펼쳤다.³ 필자의 생각으로는 발표 당시 사토시가 ‘실물 없는 상품’이라 주장하는 것 보다는 다른 화폐와 유사하게 ‘실물 없는 화폐’로 사람들에게 소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라는 점도 고려했던 것 같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화폐가 되기 어려운 몇 가지 취약 요소가 있다.

먼저 가치의 불안정성이 문제이다. 안정적인 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가치의 상승속도가 경제성장률과 안정적인 비례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탄생 초기 무가치였던 것이 10여년 뒤 ‘1 BTC=10,000달러’를 넘어선 뒤에도 ‘3,000달러→60,000달러(+20%)→16,000달러(-73%)→100,000달러(+525%)’로 오르내리는 급변동을 보였다. 같은 기간(2017.11~2024.12.) 달러 가치의 변동률 -22%에 비하면 지나치게 안정성이 떨어진다.⁴

둘째, M. 프리드만의 K% 법칙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미래 어느 시기에 비트코인이 보편적인 결제통화가 된다고 치자. 종국적 발행량이 2,100만 BTC로 한정되기 때문에 실물경제 등의 규모가 커져 화폐수요가 늘어나도 그에 대응하여 늘어나지 못해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생산 동기(motive)를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⁵

셋째,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보편적 유통을 위해 비트코인에 연동하는 보조 통화나 신용지불 수단(직불카드, 디지털 페이, 신용카드 등)을 병용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럴 때, 사용자들은 상대방과의 거래에서 비트코인은 뒤로 숨겨 쌓아놓고 가치 훼손의 위험성이 있는 보조 통화나 지불수단를 먼저 내놓을 것이 뻔하다. 이는 과거 희귀금속 기초의 화폐경제에서 어음·보관증의 유통이나 미국의 금태환 금지와 같은 역사적 사례에서도 유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도 거래 통화로써 비트코인을 사용할 때 다른 단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이만 줄인다.


관점을 달리하여 비트코인을 ‘상품’으로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비토코인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단계에서, 향후 기대가격이 낮은 사람이 팔고 향후 기대가격이 높은 사람이 사는 투기적 거래에 의하여 가격이 추세적으로 우상향한다. 일례로 네덜란드의 튤립 구근 값도 참여자들의 기대가격이 끊임없이 높아지는 시장 분위기 속에서 투기적 거래가 끝까지 지속되었다. 어쨌든 지금까지 비트코인에 대한 기대가 꺾이지 않고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그 가격이 계속 오르는 현상 뒤에는 사람들의 투기적 수요가 여전히 식지 않았다는 배경이 있다.

아무튼 비트코인의 투기적 거래가 잦아들어 가격의 변동성이 줄어든 다음에 거래통화나 기축통화의 지위를 차지한다면, 역사적으로 화폐의 기초자산이었던 희귀금속에 준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에 비추어 본 비트코인의 미래


미국의 패권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기축통화 달러’의 수명이 이미 100년을 넘었다. 역사적 사이클에 비추어 볼 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새로운 세계 기축통화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다소 허약해진 달러 패권에 유럽연합의 유로, 중국의 위안 또는 BRICS+의 공동통화 등이 도전하고 있기도 하다. 미래 기축통화 지위를 새로운 패권국의 화폐가 차지할까? 아니면 비트코인이나 제3의 암호화폐가 달러 또는 금의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을까?


먼저 비트코인이 ‘화폐’로 널리 통용되는 경우를 상정해보자. 물론 비트코인의 가치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다음에 가능한 일이다.

탈중앙화를 기초로 하는 비트코인이 결제 통화가 될 경우 국가경제의 기존 질서에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한 나라 안에서나 국제간에 생산, 거래 및 소득 등의 흐름을 제대로 알 수 없어 세원(稅源) 포착에 애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이 거래 통화로서 채택되기에 앞서 주된 세입징수 구조가 기존의 ‘소득, 자산양도, 매출’에서 벗어나 새로이 ‘인두(人頭), 유형물’에 대한 과세로 바뀌어야 한다. 이 같은 탈중앙화 비트코인의 보편적 통용에 국가의 저항은 불가피하다. 법정통화는 물론, 사적 거래 통화로서 존립에도 규제가 강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상품으로 남을 경우를 따져보자.

비트코인이 무형의 ‘상품’이라면 기대가격을 더 높게 평가하는 시장 참가자가 남아있을 데까지 가격이 오를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 오를지는 알 수 없다. 튤립 구근의 가치가 시장가격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을 참가자들이 인식한 뒤 갑자기 투매를 시작하기 전까지처럼 말이다.

결국 상품으로서 비트코인은 언젠가 유통화폐의 기초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 ‘폭탄 돌리기’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요즘에 들어서 비트코인 전문가들 사이에 비트코인을 ‘디지털 화폐’로 주장하는 대신에 금을 대신하는 ‘디지털 자산’, 즉 상품으로 규정하는 쪽으로 방향이 정리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초기 비트코인 주창자들의 인식에서 벗어나 그 시각이 상당히 달라진 것이다.


여전히 스스로를 가장 신뢰도 높은 화폐라고 표방하는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등극한지 100년이 흘러갔다. 이미 달러는 그 힘을 서서히 잃어 가는 조짐이 완연하다. 페트로 달러가 퇴조하고, SWIFT를 벗어나 제3국간 자국통화 결제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징조이다.

미래에 다가올 이 같은 기축통화의 전환 과정에서, 디지털 자산이 희귀금속을 밀어내면서 화폐의 기초자산으로 정착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 디지털 자산이 과연 ‘비트코인’일까? 아니면 비트코인의 한계점을 극복한 제3의 디지털 자산(또는 암호화폐)일까?

머지 않은 미래에 이 글의 주제인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 등극할 것인가, 아니면 ‘디지털 튤립’이 될 것인가. 앞으로 다가올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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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때의 가격 급등은 일부 세력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John Griffin과 Amin Shams의 연구)

(2) 그들의 지폐에 그럴 듯하게 “In God We Trust”라고 써넣었지만 얼마나 신용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3) 비트코인의 발행총량은 2,100만 BTC로 한정되며, 2140년경에 발행이 마무리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비트코인을 거래할 때 1 BTC를 잘게 쪼개서 Satoshi(10^-8 BTC) 단위까지 유통할 수 있다. 이는 요즘 시세 1 BTC 당 10만 달러를 적용하면 최소 거래단위인 1 Satoshi는 0.1센트에 해당한다. 그리고 요즘 비트코인의 총량적 가치는 2.1조달러에 불과하다. (참고로 2024년 세계교역규모는 약33조달러로 추정된다)

(4)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2017.11. 246.67에서 2024.12. 315.61로 상승하여, 동 기간에 소비자물가가 1.28배 올랐다. (investing.com)

(5) 실물경제의 거래총량이 늘어나는데도 화폐(비트코인) 공급량이 고정적이면, 실물경제 쪽의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반면 화폐(비트코인)의 가치는 상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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