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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자작 김준식 Oct 02. 2023

일본의 트레이딩 카드 투기 VS 네덜란드 튤립 투기

“일본 젊은이들의 투기 대상, 트레이딩 카드”

일본에서 트레이딩 카드 재테크가 유행하고 있다.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시작된 트레이딩 카드는 처음에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수집하거나 게임에 이용하는 물건이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몇몇 희소성이 있는 카드들이 “레어카드”로 분류되어 다른 카드와 높은 교환비율로 거래되곤 한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19 시절을 거치면서 물건의 성격이 달라졌다. 어린 시절 트레이딩 카드 놀이의 추억을 가진 성인들의 관심이 다시 몰리면서 재테크ᆞ투자 수단으로 의미가 더해졌다. 물론 그 전에도 게임에서 쓸모 있고 희귀한 카드들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었지만, 코로나19 시절 사람들의 활동 범위가 실내에 묶인데다 세상에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공급이 한정적인 자산들의 가격이 급상승하였는데, 포켓몬, 야구카드 등 트레이딩 카드도 그 대상이 되었다.
 일본에서 투기 목적으로 카드를 구매하는 고객층은 주로 대학생, 젊은 회사원들인데 이들은 짧은 기간에 수십배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거두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희소성이 높은 카드가 포함된 세트의 발매 때에 점포 앞에 오픈런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재테크를 노린 수집가들이 점점 가격을 올려 한 장에 수십만엔, 심지어는 1억엔을 넘는 카드도 나타났다. 일본 사회에서는 내재가치가 거의 없는 트레이딩 카드가 어른들의 투기 대상으로 인기를 모으는 것을 걱정하고 있으며, 어느 순간에 가격이 급락할 것을 염려하고 있다.

“부강해진 네덜란드에서 생긴 튤립 투기”

튤립 투기가 발생하기 이전인 16세기 후반 이후 약 100년 동안 네덜란드가 역사상 최고 호황기를 맞았다. 당시 네덜란드는 북해무역의 중심지였으며, 동인도회사ᆞ서인도회사를 통해 세계 여러 곳에 진출하여 교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유럽국가 최고의 1인당 국민소득을 가진 네덜란드인들은 교외 대저택 마련에 열중하여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하였다. 이와 함께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과시욕을 채우면서 더 큰 부를 안겨줄 또 다른 대상을 찾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튤립이다.**
 튀르키에를 통해 네덜란드에 건너온 튤립은 처움에는 귀족과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민들에게까지 관심이 퍼졌다. 튤립은 좁은 땅에서도 쉽게 키울 수 있고, 거래나 가격을 통제하는 길드도 없었다. 바이러스에 걸린 튤립의 꽃 색깔과 무늬는 꽃 피기전까지 알 수 없어, 어느 뿌리가 값비싼 튤립을 만들어낼지 모른다는 사실이 우연성을 높였다. 당시 고수익 고가주에는 투자할 재력이 없던 가난한 서민들은 소액투자가 가능한 튤립 뿌리 하나에 모든 운을 걸었다. 옆 나라 프랑스에까지 퍼진 튤립 열풍은 직공, 구두장수, 빵장수, 채소장수, 농사꾼 등을 투기판으로 빨아들였다. 거래방식이 발전해 뿌리 상태로, 밭에 심어진 상태로 선물거래 되던 튤립 시장은 아무런 원인이나 이유 없이 1637년 2월 3일 붕괴했다. 이제 곧 현물을 인도해야 할 시점에 거래 중심지인 ‘하를렘(Haarlem)’에 더 이상 튤립을 살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나돈 것뿐이었다. 이후 아무리 싼값에 내놔도 튤립은 팔리지 않고 거래어음 부도가 줄을 이었다. 열풍이 지나고 나니 시장에는 파산하여 빈털터리가 된 서민들만 남아 있었다. 집을 저당 잡히고 가재도구를 팔아 일확천금을 노리던 그들은 회복하기 힘든 치명적인 경제손실을 입은 것이다. 이 때는 부자들이나 거상들이 이미 시장을 빠져나간 뒤였다.
 이렇게 튤립 투기 광풍이 지난 뒤에도 네덜란드 경제는 꿋꿋이 건재했으며, 이 때 축적된 튤립 재배기술이나 자본이 네덜란드 농업과 관련 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대형 투기 사태의 근본 원인은 유동성 팽창”

투기 열풍이 지나가면 세상은 늘 그 판에 무모하게 뛰어든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탓한다. 그러나 대형 투기 사태는 유동성의 팽창에서 비롯된다. 위에서 본 두 가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튤립 열풍이 당시 네덜란드의 급속한 경제규모 확장에 따라서, 트레이딩 카드 열풍은 일본의 무제한 양적완화(제로금리)에 따라서 그 나라에 유동성이 넘쳐 흘렀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팽창한 유동성은 어느 쪽이건 만만한 곳을 향해 몰려들어 그 부분을 부풀리게 한다. 그리고 부풀어 오르는데 한계가 있어 거품이 터지게 된다. 거품 붕괴이다. 17세기 튤립가격 폭락이 바로 이렇게 진행된 것이다.
 요즘 일본에서 벌어지는 트레이딩 카드가 젊은 층의 투기 대상이 되고 있다는 소식은 일본의 유동성이 지나치게 팽창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취약한 부분이 트레이딩 카드인지 다른 것(주식 또는 부동산)인지 미리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일본의 유동성 팽창이 머지 않아 어느 한 부분의 거품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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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2023.09.23.

** 에드워드 챈슬러, 금융투기의 역사,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020.

*** 조선일보, 자본주의 최초의 버블, 튤립 투기, 202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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