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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손 Jan 25. 2021

페리도트

지구에 역병이 돌았다.

그리고 나의 지구는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인가를 절절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쌓아온 나름의 신뢰며 기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화가 나기는 커녕 무기력함에 어쩔 줄 몰랐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잘못한게 있나 고민하다, 어차피 중요한건 '잘못하고 잘못하지 않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걸 금방 깨달았다. 어떻게 행동해야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역시 금방 깨달았다. 누구의 잘못도 없고, 그렇다고 뾰족한 해결책도 없다. 눈앞에서 많은 것을 잃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디까지 하찮은가.


나의 지구가 거꾸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새로운 자동차들은 끊임없이 나왔다.

'이걸 나오네. 헐, 대박사건.' 정도의 리액션으로 유튜브 보는 중학생처럼, 감정의 동요없이 손가락으로만 새 차들을 감상했다. 각종 커뮤니티의 댓글들을 읽어가며, 방구석 전문가들의 의견에 혀를 끌끌차며. 어차피 면허증도 없을거라고 정신승리를 이어가다 이내 진지해졌다. '지구가 거꾸로 도는 이 와중에 신차따위가 중요하다고?'

믿을 수 없었다. 믿고싶지 않았다. 나는 앉아서 죄없이 망해가는데, 8천짜리 3시리즈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 심지어 없어서 못팔만큼 많다니. '좆같다.' 소리내어 또박또박 발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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