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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손 Aug 18. 2020

굳이, 하필, 왜, 또 커피집인가.

이유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하고싶었다. 그게 다였다.


저녁 여덟시, 아무도 없는 매장 앞모습.


대한민국에서 '커피집'을 차린다는건 둘 중에 하나다. 엄마가 차려줬거나, 아주 높은 확률로 멍청하거나.

수 백번, 수 천번 꼼꼼하게 생각해 볼 수록 '장사'로서의 장점이 거의 0에 가깝다는 뜻이다. 나의 경우에는 엄마가 차려준건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후자에 가깝다. 아니, 확실히 멍청하다.


물론, '있어보여서'로 대표되는 커피집사장에 대한 로망이 있는것도 아니었다.


대학다니면서 처음 시작한 장사가 커피집이었다. 전역하고 스물 네 다섯쯤의 나는,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던 평범한 미대오빠였다. 가난한 집 아들이었으니 비싼 미대 다니려면 4년내내 쉬지않고 일해야 했는데, 안타깝지만 당연하게도 만나는 아르바이트 사장놈들이 하나같이 '쓰레기'같았다. 일 시키고 돈 안주는 놈부터, 자기 여자친구 수발들라고 시키는 놈까지, 누가 시킨것 처럼 다양했다. 신년맞이 맥주먹다가 술김에, 더럽고 치사해서 '우리가 사장하자!'를 외치고는 친구놈과 노가다판에서 몸을 굴려 스물다섯에 커피집을 창업한 불꽃남자였다.


친구들이 알바몬에 이력서 쓸 때, 대전 대흥동에서 가장 어린 사장이 되었다는 '나만아는' 자랑스러움은 약 한달쯤 갔다. 하루에 열 두시간씩 손님도 없는 커피집에 앉아 똑같은 음악을 들으며, 허리아픈 자세로 책이나 읽고 멍이나 때리는 생활을 3년 넘게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사가 꽤 되는 집이었고 나름 그 무렵에는 이름난 가게였으나 월말에 돈백만원 한 번 만져본적이 없었고, 겨울에 두꺼운 파카 한 번 사 입어본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두번 둘이서 소주나 한 잔씩 하는게 유일한 사치였다.


이게 무슨뜻이냐면, 좋은 자리에 좋은 머신에 좋은 직원 써서 '못망하게' 하던가, 아니면 돈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취미삼아' 유지만 될 수 있게 하던가. 이 둘중에 하나가 아니면, 먹고살기 상당히 곤란한 업종이라는 뜻이다. 물론 실력으로 이 모든 조건을 이겨내는 사람들도 봤지만, 아주 드물다. 정말 드물다.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한 커피집 사장들도, 소주한잔 먹어보면 속이 새까맣게 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좋아보여서, 있어보여서 시작했다기엔 이게 얼마나 별로인 직업인지 아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킴키 보고있나? 젊었다, 젊었어. 가게이름이 무려 청춘다방이었다.


머리써서 생각해보면, 지금 이 시점에 커피집 같은 건 안하는게 맞다.

전 세계적으로 역병이 돌고, 앞으로 일 년, 한 달을 예상할 수 없는 시점에 번화가도 아닌 어릴 때 살던 주택가 한 가운데에 커피집을 낸다는 건 본격적으로 굶어죽겠다는 선언과 비슷하다. 이걸 다 알고 진행했으니, 굶어죽어도 꼭 해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어야 할테지만, 사실 그런거 없다.


오픈 전날 밤에, 전면 유리창에 가장 먼저 적었다. since 2011, 청춘다방으로 부터.


지금 서른 넷이니까, 그때부터 거의 십년이 지났다. 당연히, 그때보다 덜 멋있고, 더 야비해졌다.

사장생활 십주년을 맞이하며 뒤를 돌아봤는데, 사람이 하나도 안 멋있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라는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부터 이 모든 것들이 시작되었는데, 십년 내내 우물쭈물하기만 했다. 매번 가슴뛰는 쪽을 선택했다면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쫒고있다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 기억도 하지 못 할 만큼 찌들어있는 돼지 한 마리만 남아있었다.


이유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하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굳이 찾자면,

내가 언제 반짝였었나 돌아봤더니 유일하게 그 때 뿐이었을 뿐이다. 언제 외롭지 않았나 돌아봤더니 그 때 뿐이었을 뿐이다. 더 늦으면 다시는 나로 살지 못할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실행'했을 뿐이다. 내 장래희망은 부자로 사는게 아니라, '나로 잘 먹고 잘 사는 것' 임을 깨달았을 뿐이다. 지금보다 덜 치사하고, 덜 비굴하게 살고 싶어졌을 뿐이다. 커피집 하나 차린다고 삶이 달라질꺼라고 믿은게 아니다. 앞으로 나로 살려 노력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뿐, 조금 더 쓸만한 인간이 되고싶다고 마음먹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랑받았으면, 내가 나를 덜 미워하고 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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