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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커피 Sep 10. 2024

6층 아파트 방은 12개

엄청엄청 반가운 인사

"선생님~!"


점심시간이면 나는 인성이를 만난다. 인성이는 머리 위로 손을 크게 흔들며 반갑게 뛰어온다. 3학년이 된 인성이는 작년보다 제법 키가 많이 컸다. 


"인성이, 밥 맛있게 먹었어?"

"네! 저 어제 머리 잘라서 모자 쓰고 왔어요!"


"선생님~! 오늘 탕수육 맛있었죠?"

"인성이 많이 먹었어?"

"네!"


"선생님! 저 지금 친구 찾으러 가요!"

"그래~! 뛰지 말고 걸어서 가."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아이고, 그래, 인성아, 인성아, 인성아~"


매일같이 나를 반기는 인성이를 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나는 언제 누가 저렇게 반가웠었나 기억을 되짚어 본다. 


인성이는 작년 우리 반 학생이었다. 꼼꼼하고 반듯한 성격으로 수업시간에 9살 꼬마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 아이다. 사교육에 크게 노출되지 않아서인지 수업시간의 모든 것들을 매우 흥미롭게 여기며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맞춤법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인성이는 2학년이 끝나갈 때쯤엔 맞춤법을 거의 틀리지 않고 일기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반에서 가장 바른 글씨를 쓸 수 있었으며, 뒤판에 걸린 작품은 눈에 띄게 완성도가 높았다. 문제를 풀고 답을 쓰는 연습을 조금 하자, 인성이의 학습지는 틀린 문제가 거의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큰 성장을 보여준 인성이가 참 눈부셨다. 


인성이가 눈부셨던 건 학습적인 성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성이는 마음에도 눈부신 보석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내가 목이 아파 목이 잠겼을 때는 먼저 나에게 와서

"선생님, 감기 걸리셨어요?"

물어봐주기도 하고,


내가 평소보다 조금 늦은 날엔

"선생님, 오늘 무슨 일 있으셨어요?"

걱정도 해주었다.


가끔 내가 새로 산 옷을 입고 가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에게 귓속말로 예쁘다고도 해주었다.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고 예쁘다고 해주다니.


인성이 덕에 구겼던 인상을 펴는 일이 참 많았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런 인성이의 보석은 시간이 갈수록 빛이 났다. 관계가 좋아질 수밖에.


2학년을 마무리하는 날, 인성이는 가장 늦게 교실을 나갔다. 아이들과 스킨십이 조심스러워진 요즘이지만, 나는 인성이를 꼭 안아주었다. 


"선생님, 3학년 돼서도 선생님 학교에서 볼 수 있죠?"


빨개진 눈으로 올려다보며 인성이가 물었다.


"그럼~ 우리 학교에서 만나면 엄청 엄청 반갑게 인사하자!"


그래서일까. 점심시간에 잠시 마주치는 인성이는 엄청엄청 반갑다.


그 인성이가 지난 스승의 날을 앞두고 자그마한 편지를 주고 갔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많은 선생님들께서 작년 담임 선생님께 편지 쓰는 활동을 하셨나 싶었다. 작년 학생들이 우리 반에 많이 다녀갔고, 오랜만에 만나는 학생들과 즐겁게 인사도 나누고 즐거웠다. 인성이도 친구들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학급활동으로 한 편지를 내밀고 갔다. 



아이들의 선물들은 다채로웠다. 빨간색 스포츠카, 맛있는 케이크~ 귀여운 그림과 함께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여러 선물들 터트린 인성이의 선물이었다.


녀석, 내가 부동산 투자를 꿈꾸는 어떻게 알아서. 나를 꿰뚫고 있군.


왜 하필이면 6층인지, 방은 왜 12개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도 방 12개짜리 6층 아파트에 살고 싶어졌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나에게 거창한 목표까지 만들어주다니.


그래, 인성아. 선생님 방 12개짜리 아파트에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볼게.


우리 내일 또 엄청엄청 반갑게 인사하자!


**인성이는 가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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