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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주 Sep 08. 2023

여자, 바다에서 이기다!

딱 두 컷만 리뷰하기 1 – 영화 <밀수>

주의!!! 영화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3년 여름 극장 대전에서 순항 중인 영화 <밀수>.

같은 텍스트를 보아도 100인 100색일 터이니, 러닝타임 129분 중 내 눈에 딱 꽂힌 두 컷에 대해서만 말하려 합니다.     


최애 씬은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이 서로의 손을 잡아끌며 그 추진력으로 움직이는 장면이다. 짧게 지나가는 씬이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류승완 감독이 이 여성 서사 영화를 바라보는 지점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고편에도 들어있던 게 아닐까 싶다.      

수직으로 화면을 분할한 것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넘어 특별한 의미가 느껴진다. 보통 수직 구조는 상승과 하락을 의미하여 갈등이나 경쟁, 패배 등 부정적인 느낌을 담고 있다.

그러나 <밀수>의 이 수직 장면은 경쟁이 아닌 연대가 느껴지고, 서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지지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발을 받쳐주는 지지는 한쪽의 희생과 양보가 깔려있기 마련이지만, 손을 잡아끌어 상대방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내 힘을 나눠주는 지지는 엔진이 되어 주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건진 이후에 춘자와 진숙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 수 없다. 오해가 해소된 만큼 앞으로의 행보(밀수)를 함께 할지 아니면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할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을 통해 두 친구가 서로의 선택을 지지할 것으로 믿는다.     


차애 씬은 권상사(조인성)가 병원에서 밥을 먹는 장면이다. 생사를 다투며 끝내 다이아몬드 가방을 건져 낸 춘자는 회복 중인 권상사를 찾아간다. 까만 김에 다이아몬드 한 알이 올려지는 순간 속으로 박수를 쳤다. 와, 대비를 이렇게 아름답게 할 수 있구나 싶었다. 바다에서 캔 ‘김’ 위에 육지에서 캔 ‘다이아몬드’를 올린다니 너무 멋진 데코레이션이 아닌가. 바다에서 종횡무진하던 춘자가 다이아몬드까지 손에 넣으면서 육지에서 힘을 쓰던 권상사와의 서열관계가 앞으로는 달라질 것임을 느끼게 한다.    

사진 출처 영화 <밀수> 공식 포스터


육지에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졌다. 아버지의 배를 뺏기고(진숙), 면도칼에 피를 보고(춘자), 뺨을 맞았다(옥분). 마음이 약하고, 물리적인 힘이 부족해서 졌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달랐다. 더 넓은 세상에서 그녀들은 강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전복을 칼처럼 휘둘렀다(진숙). “나 모르냐?”며 변명하지 않는 진심을 보여주었다(춘자). 너는 커피나 타오라며 세관 계장이 무시하자 “같이 죽자.”고 바다로 몸을 던졌다(옥분).      


많은 문학작품과 신화 속에서 바다는 여성을 상징한다. 나는 바다에서 여성(해녀들)이 이기는 이 이야기가 아주 호쾌하다. 류승완 감독의 만듦새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자들의 연대를 보여주던 오래된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이 떠올랐다. 부디 영화가 흥행해서 제작자들이 여성 서사 영화가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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