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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퇴한 트레이너 Dec 13. 2020

나는 취업준비생을 낳았다

대한민국 교육 환경

이 나라는 특이하게도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무슨 직업을 가지고 생계를 꾸려갈지 걱정하고 정해주려고 한다.


아들이 생후 6개월 때 많이 아팠어서 매우 힘든 나날을 보냈었다. 그러다 어느덧 첫돌이 다가왔고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친인척들도 초대해서 뵐 겸 돌잔치를 하게 되었다. 돌잡이를 하는데 아들이 무명실을 잡았다. 재미로 하는 거지만 안 그래도 아이가 아파서 걱정이 많았는데 무병장수의 상징물을 잡으니 은근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사회자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다시 하겠느냐고 물어본다. 그런 반응을 보니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취업준비는 시작되는 것이다.


유치원에 가기도 전에 뒤처질까 봐 선행학습을 시키고, 초등학교 갈 때도, 중고등 학교를 진학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대학 입시를 위한 교육을 20살이 올 때까지 20년 가까이한다. 명문대에 진학을 하기 위한 이유는 결국 좋은 직장을 위한 것이다. 학문 연구에 뜻을 품고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취업을 위해 거의 30살이 될 때까지 10년 가까이 연장된다.


국가나 기업 입장에서는 능력 있는 준비된 인재를 채용하게 돼서 좋겠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노력과 능력에 비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다들 비슷한 길로 비슷한 목표를 향해 노력하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격동의 사춘기도 유야무야 넘겨버리고, 연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취미생활을 가질 시간이나 자신과 미래에 대한 사색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저 문제 해결 능력과 경제력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힘쓸 뿐이다.  그러면서 많은 문제들이 파생되어 생겨난다.



1. 사춘기의 부재

대부분 사춘기에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한다. 인생의 중요한 가치판단이나 행동 결정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유사한 경험이 많고 그런 상황에 대해 미리 고민해보고 생각해봐야 바르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유리하다. 그렇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대세에 다르기 쉽고, 주체적이지 못한 삶에 대한 후회나 세상에 대한 비관이 생기기 쉽다.


계속 증가하는 정신적인 질병이나 범죄 문제와 매우 관련이 크다고 생각한다.



2. 연애의 부재

연애 경험이 많으면 상대에 대한 배려나 이해의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사랑 외에도 희생, 봉사, 의리, 전우애, 동질감, 연민, 그리움, 분노, 속박 등 다양한 감정에 대해 깊이 있게 알게 된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과 매력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같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러운 일인지 알게 된다.


요즘 세대가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이혼율이 높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제대로 된 연애를 많이 해봐야 외모나 경제능력 이상의 인간관계에 대한 본질을 체험해 볼 수 있다.



3. 내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해봐야 자신에게 맞는 일이 뭔지 알 수 있다. 내가 직업으로 가졌을 때 적성에 어떤 것이 맞는지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막상 해보면 생각이나 들은 것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


좋아하는 일은 매번 바뀌지만 그 일에 심취하면서 얻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추억으로 남아 나의 삶이 가치 있었다고 기억하게 해 준다.



이런 것들이 10대와 20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건너뛰고 있다가 취업을 하고부터 한꺼번에 시작된다. 안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데 새로운 정보들에 대한 피드백을 정리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그것들을 경험하고 소화해내는 시간이 채 오기도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여러 번 몰려온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바르고 후회 없는 결정을 하기에는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본인이 져야 한다.


이런 사회가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 아이에게 이런 입시교육 사회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자라게 해주고 싶다. 그러려면 이사를 가야 한다.


내가 수업하던 회원 중에 외국에서 오랜 기간 살다가 다시 오신 분이 있었다. 자녀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한국 입시교육을 시킬 생각이 없어서 학원을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예상 밖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부모들이 항의를 한다는 것이다. 학업분위기를 해친다며 왜 학원에 안 보내는지 묻고, 싫은 티를 많이 내면서 거리를 둔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녀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없게 되었다.


또 다른 회원은 두 명의 초등학생 자녀를 기르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에게 촌지를 준다고 했다. 단순히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액수가 매우 컸다. 그러면서 자녀가 친구와 싸워도 무조건 내 아이 편을 들어준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학부모 회의를 가면 부모들끼리 노골적으로 통장 까보라며 싸우면서 경제력을 내세운다고 한다.


내 아이는 그런 환경에 살고 있지 않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남의 얘기라고 생각한다면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자녀는 차별받으며 지내고 있을 확률이 매우 크다.


입시와 학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가족은 바이러스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 수밖에 없다. 기업중심의 교육 말고 사람중심의 교육을 하는 곳. 여기저기 알아보는 중이다.



부품을 양산해 내는 공장 같은 교육에서 개인의 삶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을 위한 삶을 산 것이 아니고 부품이 되기 위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오지 못한 마음이 공허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고, 자녀를 사육하는 행위가 하루빨리 근절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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