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위의 아이들
이재명의 '제목이 확 끌리는데' 발언으로 나도 제목이 확 끌려서 보게 되었다. 게다가 무료라니. 소설까지는 열정이 없었고 , 접근성이 좋은 웹툰을 보았다. 그림체도 좋다.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대기업 직장인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는 간접체험 마인드로 재밌게 보던 중 댓글에 작가의 100% 실제 경험담이라는 글을 보고 더욱 유심히 몰입해서 보게 되었다.
작가가 본인이 욕먹을걸 알면서도 경험담이라고 밝힌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마도 본인이 당시에 있었던 상황들에 대해 이해가 잘 안 갔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이 일들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가감 없는 의견을 듣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오피스 누나 이야기'라는 이 웹툰을 보고 느끼게 된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스포 내용이 대부분이니 안 보신 분들은 보고 오시길 바란다.
1. 안책임이 손책임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이유
이 웹툰을 보면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바로 '안책임은 왜 손책임을 좋아할까?'였다. 다행히도 마지막 부분에 그 이유를 안책임이 직접 이야기해준다.
처음 손책임을 본 사건은 카페에서 넘어지는 아이를 손책임이 도와준 것. 이것은 엄마로서의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모성애의 감정과 아버지를 일찍 여읜 딸로서의 감정이 아이에게 투영된 것이라고 보인다. 나도 저렇게 누군가가 도와주고 지켜줬으면 하는.
안책임은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인데, 그런 상황에서 감정들이 크게 다가와 개인적인 호감을 만들어 낸 것이다. 평범한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런 장면을 목격했다면 호감은 있었겠지만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정말 대단했어요 정도.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장소는 회사 주차장. 엘리베이터로 가는 입구에서 문을 잡고 기다려준 것. 여기서 안책임은 첫인상의 호감에 더해 손책임이 배려있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면서 이성적인 감정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두근', '어머' 이렇게.
나도 아이를 안거나 손을 잡고 상가나 오피스텔 입구를 많이 드나들었는데 그때 느꼈던 충격을 아내와 공유했던 적이 있다. 의외로 문을 잡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놀랍게도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30대 남성이다. 아마도 이 시기에는 매너라는 강박이 크게 자리 잡아서 그런 듯하다.
젤 얄미운 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 아이를 잡고서 힘겹게 문을 열고 있으면 그 틈새로 쏙 하고 혼자 빠져나간다. 정말 많다. 가서 뒤통수를 날려주고 싶다. 너도 나중에 아기 낳아봐라.
그런 현실에서 손책임의 작은 배려는 안책임에게 호감의 불을 지피는데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그리고 운명적인 TF에서의 만남과 둘만의 데이트 같은 시간이 마치 연애를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안책임에게 유사체험으로 다가오고, 이는 손책임에게 마음을 주는 키 역할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해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랑을 날려버린 손책임은 진짜. 손책임이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2. 손책임이 연애 고자인 이유
전반적으로 내용을 보다 보면 손책임의 행동들이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실상 대학생 때 만났던 여자 친구 말고는 연애를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손책임은 연애경력이 매우 부족하다. 첫 연애 내용도 들어보면 유치하기 그지없다. 꼭 중학생 이야기 같다. 손책임 스스로도 찌질했다고 회상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뭐가 됐던 그렇지만 연애라는 것도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여러 번의 경험이 쌓이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을 알게 되고, 나의 어떤 행동이나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도 알게 된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성격, 습관이나 버릇 등도 연애하는 상대에게 들어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연애를 하는 상대에게는 내면의 민낯을 보여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연애는 물론이고 다른 인간관계도 잘하게 된다.
안책임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말하기를 20대에 자신은 별로라고 했으니까. 40 가까운 나이에 과거를 돌이켜 보기에는 철부지라고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서 혼자 키우고 극복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성숙하게 된 거 같다. 생각이 깊어지고 모성애가 생기면서 마음이 따뜻해진 경우인 듯하다.
그런 안책임이 손책임에게 많은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데 이는 크게 다섯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역지사지로 본인 스스로 받고 싶은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것. 자신이 받지 못한 것을 타인에게라도 해주고 싶은 심리. 둘째는 전남편에게 해주지 못한 미련의 대용품. 셋째는 모성애. 넷째는 내 남자는 뭘 해도 멋있다. 우쭈쭈.
그중에서도 마지막 다섯 번째가 제일 커 보이는데, 프레임 효과가 적용된 걸로 보인다. 한번 호감이 들고 멋있어 보이면 뭘 해도 멋져 보이는 것이다. 그런 안책임에게 손책임은 많은 위로와 응원을 받고 자신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 그나마 효과를 주었던 것이 짧은 메시지 정도. 행동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결혼하자고 고백했던 타이밍도 최악이다. 정작 자신은 가족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함께 했을 때 이겨나가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하나도 안되어 있었다. 그걸 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호르몬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은 뱉어버린다. 그러고도 왜 헤어졌는지도 모른다.
최악의 쇄기를 박는 사건은 미국 출장 중 만나서 그냥 아는 누나로라도 지내면 안 되냐고 한 것이다. 마지막 남아있는 정까지 깨끗하게 다 떨어지게 하려고 한 말이라면 대성공이다. 안책임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손책임에게 마음을 주고 점점 의지해 가고 있었지만 결국은 자신의 상황이 손책임에게 버겁고 이겨내지 못할 것이 보이기 때문에 가슴 아프지만 스스로 손을 놓았다. 그런 그녀의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 혼자 좋자고 아는 누나로 편하게 지내자고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그대로 또 뱉는다.
업무능력과 연애능력은 정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다. 손책임은 30대 중반의 대기업 직장인이지만 연애는 이제 한 번밖에 경험이 없는 완전 초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한 결과이고 손책임의 잘못이 아니다. 바로 이 사회가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3. 현시대 대한민국의 사회풍조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 10대와 20대에 연애를 정말 많이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죄를 짓는 것처럼 여겨진다. 공부와 취업만 바라고 보고 사는 아이들은 다른 분야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인간관계와 연애.
연애를 하면서 인간은 자신 감정의 밑바닥을 볼 수 있다. 매우 다양하고 극과 극의 치우친 감정들을 처음 접하면 어쩔 줄 모르지만, 10년, 20년의 내공이 쌓이면 그 감정들을 차근히 바라보면서 인정하고, 충분히 느끼고, 대처하는 방법들을 조금씩 깨달아 가게 된다. 이론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절대 체험의 영역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그중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연애인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대인 관계가 서투르고 전화통화를 어려원한다? 왜 그런지는 뻔하다. 당연히 안 해봐서 그런 거다. 모태솔로와 연애 고자가 넘쳐나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10대부터 연애를 많이 해서 찌질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타인과 싸우고 화해하는 방법과 사과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 사람 보는 눈도 생겨서 인간관계가 편해지고 나와 잘 맞는 연애대상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20년의 내공이 쌓이면 약간이나마 30대의 멋지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10대에 스킵하고 지나간 아이의 정신에서 30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오피스 누나 이야기'에서 손책임의 생각과 행동이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근데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상태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의 문화가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유교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굉장히 보수적이고 부모에게 순종적인 문화이다. 게다가 손책임의 집안은 기독교 집안이다. 다른 종교도들도 마찬가지로 종교라는 문화가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재정상황이 넉넉한 중산층 가정이다. 기득권 계층의 특성상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잘 지키고 유지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방어적으로 될 확률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거나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일을 특히 두려워한다.
거기에 베이비부머 세대의 과도한 교육열이 삐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심지어 예전 어느 방송에 나온 교육 전문가는 가능한 한 빨리 자녀의 진로를 정해주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걸 왜 부모가 정해주는가. 초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장래를 결정하고 준비한다면 효율적이기는 할 수 있다. 다만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과정의 의미와 교훈,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녀의 감수성과 인성에 소홀하기가 쉽다.
아이와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유모차를 타고 나온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근데 이상하게도 충분히 걸을 수 있어 보이는 큰 아이인데도 유모차를 타고 있는 경우가 꽤 있다.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자고 있기도 하지만, 깨어있는 아이들을 보면 눈에 초점이 없다. 그저 엄마가 끌로가는대로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그게 많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다.
20년간 공부만 한 아이들은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소비하며 경제적인 성공과 효율성을 우선순위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정신적,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독립적이지 못하며 눈치를 보고 있다. 마치 손책임처럼. 손책임은 100번 다시 태어나도 같은 행동과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다면 말이다.
쉬운 예로 미국을 들어보자. 손책임과 안책임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반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의 자녀였다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만나서 결혼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피스 누나 이야기'는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수많은 손책임들은 아직도 유모차 위에서 부모의 손에 이끌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게다가 그 손책임들이 손에 새로운 유모차 손잡이를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