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만족과 만족의 차이
대학생 때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나중에 차로 누군가를 집에 내려줄 일이 생기면 집 앞까지 완전히 데려다 줘. 그냥 집 근처 큰길에서 내려주면 좀 그렇더라. 그것도 고맙긴 한데 뭔가 좀 아쉬움이 남는 거 같아. 물론 골목길까지 들어가면 차 돌려서 나오기 힘든 건 아는데, 그래도 조금 더 고생해서 너무 고마운 거랑 그냥 좀 고마운 거랑 많이 다른 거 같아."
내가 좋아했던 친구여서 그런지 아직도 그 말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정확한 단어까지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맥락은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나도 비슷한 일을 겪으니 또 그 말이 생각났다.
상대방은 나의 사정을 다 알면서 이전에는 해주던 배려들을 한 단계 낮춰서 해줬다. 배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권리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행동은 그 이상의 배려는 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다가왔다. 나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거 같아 속상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사람 마음이란 것이 참 그렇다.
자신이 생각하던 관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 속상하고 서운하다.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는 행동은 내가 생각하는 관계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 연인 간에서 나타나기 쉽다.
반대로 관계 이상의 호의와 배려에는 감동하고 고마움을 느낀다. 처음 보고, 앞으로도 다시 볼일 없는 사람에게 나오는 나를 위한 행동과 말은 나와 매우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나타났을 때 눈을 마주치고 일어나서 마중을 나오며 격한 반응으로 반갑다며 환영을 해준다면. 내가 먼저 일어날 때 하던 일을 멈추고 밖에까지 함께 나가면서 배웅을 해주며 아쉬움을 드러내며 인사를 해준다면.
친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한다면 어색하고 부담스럽지만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친밀한 관계의 사람이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서운하게 느껴질 것이다.
마음이나 감정도 수치화하는 임계점이 있는 것 같다. 별점으로 치자면 4점과 5점의 차이랄까. 평점으로는 소수점까지 점수가 나타나지만, 막상 주거나 받을 때는 자연수로만 표기되는 것이, 내 마음의 경계와도 많이 닮아 보인다.
아주 조금의 만족감이 모자라서 4점이 되기도 하고, 그 작은 만족감이 더해져서 5점이 되기도 한다. 친밀한 사이거나, 관계가 진전되기를 바라는 사이라면, 또는 기왕 마음먹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면 조금 더 노력해서 만점을 받는 게 여러모로 노력 대비 효과가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억이 더 강하게 남고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