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그 원작- 먼 훗날 우리

과거는 컬러, 현실은 흑백 - 먼 훗날 우리의 색채 미학

중국 영화라는 편견을 깨고 만난, 우리 모두의 20대

2026년 초 구교환과 문가영 주연의 『만약에 우리』가 개봉했다.

구교환과 문가영. 두 배우의 연기를 좋아하는 나는, 예고편을 보자마자 설렜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원작은 어떤 영화일까? 2018년 중국에서 개봉한 『먼 훗날 우리(后来的我们)』.


솔직히 기대는 크지 않았다. '중국 영화'라는 막연한 편견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건 단순한 중국 영화가 아니었다.


20대의 사랑을 지난 사람들이라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감독 유약영의 섬세한 연출, 주동우라는 배우의 눈빛과 연기, 그리고 남자 배우와의 케미.


2000년대 후반 춘절에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 풍경, 베이징으로 상경한 청춘들의 현실, 그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까지. 이 영화는 단순한 멜로를 넘어선 웰메이드 영화였다.



폭설 속 비행기 결항, 그리고 시작된 회상

영화는 2018년, 비행기 안에서 시작된다.

1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 린젠칭(林见清)과 팡샤오샤오(方小晓).


그들은 같은 고향 사람이었다. 한때 사랑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이제 둘 다 결혼한 몸.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순간, 폭설로 비행기가 결항된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어쩔 수 없이 함께 공항을 빠져나온 두 사람. 항공사측에서 제공해준 호텔에서 둘은 과거를 떠올린다.


그리고 영화는 10년 전으로 되감는다.

2007년 춘절.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
그곳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


기차 안에서 시작된, 친구라는 이름의 설렘

린젠칭은 게임 개발을 꿈꾸는 대학생이었다.
팡샤오샤오는 베이징에서 자리 잡으려 애쓰는 활발한 여성이었다.

고향으로 가는 기차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좌석도 없이 통로에 쪼그려 앉거나, 짐 사이에 끼어 서 있는 사람들.


그 북적이는 기차 안에서 팡샤오샤오는 표를 잃어버려 당황하고 있는데 린젠칭은 재치있게 표를 제시하며

"이 거 그쪽 표 아니에요?." 그렇게 두 사람의 각자의 삶이 교차하게 된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둘은 조금씩 이야기를 나눴다. 고향 이야기, 베이징에서의 삶, 꿈 이야기.

그렇게 춘절을 보내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팡샤오샤오는 여전히 베이징에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남자친구를 찾고 있었고, 린젠칭은 여전히 게임 개발의 꿈을 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친구.

그 단어는 안전했다. 남자와 여자가 선을 지키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거리. 하지만 우리는 안다. 친구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친구 이상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을.


동거, 그리고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팡샤오샤오의 실연의 상처. 갈 곳 없는 그녀. 린젠칭은 자신의 좁은 자취방에 그녀를 들였다.

그렇게 남녀 친구사이의 동거가 시작됐다.


샤오샤오는 거리에서 불법 DVD를 팔았고, 젠칭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루하루. 칸칸이 구분된 좁은 방, 방음조차 되지 않는 방 그리고 낡은 이불,

하지만 둘은 행복했다.


저녁이면 함께 라면을 끓여 먹고, 베이징 도시를 가로지르며

"언젠가 우리도 저 빛나는 곳에 설 거야"라고 속삭였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걱정하고, 선을 지키려 애썼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춘절을 앞둔 밤

팡샤오샤오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자

서로 위로와 응원을 한 껏 해주던 밤,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방에서, 둘은 서로를 안았다.

하지만 그날 밤, 둘은 친구가 아니었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친구에서 연인으로 - 20대 사랑의 날것 그대로

친구였던 관계가 하룻밤 만에 바뀌면, 어색해질 수 있다.

사랑이 깊어질지, 아니면 친구 관계마저 끊어질지.

그래서 팡샤오샤오는 린젠칭과 달리 다음날 그를 떠나 잠적하게 된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남녀가 친구가 될수 있을까? 한 사람의 마음이 커질 수록 친구가 될수 없다. 그 균형을 절묘하게 잘 맞추어야 한다. 각자의 이별을 맞을 때마다 술자리에서 위로를 해주지만 그 빈자리를 채울수도, 아니 채워서도 안된다. 그래야 친구가 된다.


그렇게 서로의 많은 이별을 위로하면서 친구로 남는다. 그래야 그 위로의 자리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앞에서 엎드려 울고 있는 친구에게 마음을 표현하면 다음에 이 자리 마저도 이 시간 마저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친구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에 깊은 슬픔을 더 짙게 드리고 온다.


감옥, 그리고 사랑의 확신

불법 DVD 판매로 린젠칭이 수감됐다.

춘절이 다가오는데, 그는 고향으로 갈 수 없었다.

팡샤오샤오는 혼자 고향으로 내려갔다.


린젠칭의 아버지와 지인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그녀는 그의 빈자리를 채웠다.

"젠칭이는 베이징에서 일이 있어서요."
"그래? 너라도 와줘서 다행이다."

아버지는 팡샤오샤오를 진심으로 대했다.


교도소에서 나온 린젠칭.

팡샤오샤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고, 조심스럽게 관계를 발전시켰다.

비록 꿈만 있고 현실은 부족하더라도, 그렇게 시작하는 사랑은 너무 아름다웠다.


20대의 사랑은 날것 그대로가 아름답다.

잘 모르고, 돈이 없고, 미래가 어둡더라도, 둘만 있으면 너무 찬란하게 빛나는 그때만의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의 의미를 그 때는 몰랐다. 미래가 불확실했고 만나러가는데 돈이 부족해서 좋은 레스토랑 가는것도 부담이었다. 그렇지만 그저 같이 걷기만해도 좋아할 수 있었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하늘에서 별을, 바다에서 진주를" - 사랑의 시작과 기대

린젠칭은 예전에 팡샤오샤오에게 말했다.

샤오샤오가 다른 남자친구를 만날 때마다,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내가 하늘에서 별 따주고, 바다에서 진주 따줄게."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라서 그 사랑이 우여곡절없이 영원하길 바란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색채의 미학 - 과거는 컬러, 현실은 흑백

영화를 보며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과거 장면은 컬러로, 현재 장면은 흑백으로 그려진다.

보통 영화는 반대 아닌가? 과거는 흑백, 현재는 컬러.

하지만 이 영화는 거꾸로 간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알 것 같았다.

현재의 그들에게, 지금은 죽은 시간이다.

2018년, 비행기 안에서 재회한 린젠칭과 팡샤오샤오. 둘 다 결혼했고, 각자의 삶이 있다.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사랑했던 사람은 곁에 없다. 꿈은 바랬고, 현실은 차갑다.

그래서 현실은 흑백이다.


입김이 시리게 나오는 추운 현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반면 과거는?

가난했지만 함께했던 그 시절. 좁은 방, 불법 DVD, 아르바이트. 미래는 불안했지만, 둘은 살아있었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꿈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라는 희망이 있었다.

두사람이 헤어지면 세상은 무채색이 된다.

그래서 과거는 컬러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영화의 색채와 온도의 미학.
이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 -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영화 내내, 과거는 컬러, 현재는 흑백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변화가 일어난다.

팡샤오샤오가 린젠칭과 마지막 이별을 한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그리고 그가 만든 게임을 켠다.

게임 속에는 그녀가 있었다. 린젠칭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게임 속에 담아냈다.

"미안해."

게임 속 메시지를 읽으며, 팡샤오샤오는 조용히 운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그 순간, 화면이 컬러로 바뀐다.

드디어 과거와 현재가 만난 것이다.

현실에서 그 사랑과 아픔을 끌어안고서야, 과거와 현재가 하나가 된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그녀는 이제 과거를 놓아줄 수 있다. 그렇게 "Us"를 "Them"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

그리고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

색채의 변화.
그 미학의 정점이 여기 있었다.


사랑의 시작은 컬러로, 그리고 우리는

『먼 훗날 우리』의 첫번째 이야기는 사랑의 시작을 그린다.

춘절 기차 안 우연한 만남.
베이징 단칸방에서의 동거.
친구에서 연인으로.
20대의 날것 그대로인 사랑.

그 모든 순간이 컬러로 화려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아름다운 시작이, 결국 흑백의 현실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없다.

20대의 사랑에서 가난은 함께 넘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린젠칭의 게임 개발 실패, 경제적 압박,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

남자가 원한 성공, 여자가 원한 사랑. 그 차이.


그리고 팡샤오샤오가 말합니다.

"우리 헤어지면 다시는 보지 말자."

정말 사랑할 때만 할 수 있는, 그 단절의 다짐.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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