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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Sep 25. 2022

퇴사: 기쁠 때 떠나기

  

  12~3년 차 즈음 입사 3년 차 후배가 묻는다. 

  "책임님은 언제 회사 그만두고 싶어요?"

  "응, 난 매일~“


  농담반 진담반으로, 직장인은 가슴 속에 사직서를 안고 출근한다고 한다. 예전 입사 3년 차 후배가 물었다. 언제 퇴사하고 싶었냐고. 그때 내 대답은 "매일"이었고, 퇴사하기 전까지 그 대답은 변함없었다. 그렇게 20년을 다니고 '그날'을 지나 왔다. 주변 90퍼센트의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였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급여 수준도, 복지도, 인지도도 국내 최고 중 하나인 곳에서 나오려는 의지를. 제 3자가 되어 바라보는 입장이더라도 누군가의 퇴사를 만류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왜 퇴사했냐고 묻는다면, 콕 찝어 한 가지 이유로 설명은 어렵다. 어느 순간 퇴사 결심을 하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해 보니 복합적인 이유와 상황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내부 의지와 외부 상황이 맞닥뜨리는 시점이 내게는 20년 차에 왔다.


  '매일' 퇴사를 바랬던 날 중 왜 하필 그날이냐? 

  과거의 '매일'은 조직에서 미래에 얻을 가치가 이직하여 얻을 것보다 더 크게 가늠되었다. 승진, 미래 월급, 복지 제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성장의 기회 등. 인내하고 근무하면 더 나은 날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20년 다니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어느 순간 내가 갖고 싶은 미래보다 회사에서의 미래 기대치가 훨씬 낮을 수 있다는 불안 내지 불만 때문이었을까.


연령, 연봉, 성과 연관 그래프

        

  이는 기술경영대학원 인사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이다. 한국 노동력의 연령에 따른 성과와 연봉 연관성 그래프이다. 한국은 과거에 일본을 따라 호봉제(연차가 높아질 수록 급여가 상승)를 기본으로 임금 구조가 설계되어 있다. 나이와 직급이 올라갈수록 대체로 연봉 또한 파란색과 같이 지속 상승 경향을 가진다.


  연령과 성과 관계를 보면, 'Ⅰ' 구간은 연봉>성과의 시기이고, 'II' 구간은 연봉<성과가 되고, 'III'은 다시 연봉>성과가 된다. 변화가 적은 경영 환경에서는 전체적으로 플러스가 되었는데, 지금처럼 변화가 심하고 경쟁이 큰 기업 환경에서, 회사 입장에서는 두번 째 구간이 가장 남는 장사임에 틀림없다. 

  첫 번째 구간인 A 지점까지는 주로 신입에서 쥬니어 시절이고, 두 번째 B 지점까지는 중간관리자급, 세 번째는 부장 중반부 이후로 일반적으로 나눌 수 있다 했다. 

  B점을 지나면 조직에서 내가 기여하는 성과보다 연봉이 많아져, 조직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고 경영 성과가 좋지 않을 때 정리의 1순위가 된다. 요즘 기업들이 두 번째 구간에 위치하는 경력 사원 채용이 늘었고, B 구간 지나면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회가 급격히 줄고, C 지점 근처를 지나면 임금피크제(더이상 임금이 상승하지 않고 하락하기 시작)를 시행하게 된 것이라 한다.


  조직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인가, 20여 년이 지나 나이가 많아지고 직급도 높아지니, 미래의 내가 얻을 수 있는 기대는 낮졌고, 조직에서 가치 또한 낮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인정되지 않지만 차츰 피부로 부딪힐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년 후 명예퇴직하거나 권고사직을 받더라도, 그때까지 익숙하고 안정적인 조직에서 월급받는 직장생활을 선호하는 동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가진 삶의 가치관 역시 존중하고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었다. 나이 순으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심정으로 인생을 보내는 건 참 별로라 생각했다. 활기차게 일하고 성과를 내, 나의 가치를 키워 더 큰 보상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5년 후 '내 일'을 하기로 결심하였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이직하였다. 

  한편으로는 아주아주 힘겹게 퇴사를 결정하였지만, 나와보니 또 별 거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밀려서가 아니라, 내가 원할 때, 내가 다른 걸 할 수 있을 때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싶다. 이십 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울며 떠나고 싶지 않았고, 웃으며 기쁘게 나오고 싶었다.


  누군가 퇴사나 이직을 준비한다면 세 가지는 꼭 고려해보라 조언하고 싶다. 내가 주인공인 퇴사 혹은 이직 사유. 예를 들면, 더 높은 연봉, 다양한 업무 경험, 혹은 커리어 패스를 따라... 이와 같이 '나를 위한 확실한 이유'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타인이 주인공인 이유는 반복되는 걸 많이 봤다. 조직 내 싫은 사람 때문이라거나, 막연히 알려진 기업을 찾아 가는 건 불만족할 확률이 높다. 시간이 지날 수록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져, 철새처럼 또 이직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포기한 것을 명확히 하고, 뒤돌아 아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의 경우는 '내 일'을 하기 위한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기 위함이고, 그를 위해 복지 혜택과 워라밸을 포기하였다. 미리 포기했지만 여전히 한 번씩 아쉬울 때는 있다. 그러니 무엇을 스스로 포기했는지 명확히 알면, 이후 따라오는 후회에 대처하기가 훨씬 용이할 것이다.

  세 번째는 전 직장을 나오고자 했던 절실한 마음을 기억해 주면 어떨까 한다. 막상 이직했는데 예상하고 기대한 것과 많은 면에서 다를 수 있다. 새 직장에서 얻고자 한 것을 생각하여, 스스로 마음을 괴롭혀 힘들어하는 시간이 없기를 바란다. 

  퇴사는 입사보다 더 큰 인생의 선택 중 하나이다. 회사는 밥줄(생계), 사람 인연 그리고 나의 일상이 모두 엮여 삶에서 비중이 제법 된다. 그러니 쉽게 결정되지 않았고 그 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 



  퇴사한 지 1년, 이렇게 퇴사해서 만족하느냐? 솔직히 백 프로 만족하지는 않는다. 아주 가끔 '그냥 다녔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하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직은 제 2의 커리어를 찾아 가는 여정에 있기 때문에, 처음 의지와 각오만큼 굴러가고 있지는 않다.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혀 헤매는 날도 있고, 조직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나로서 가치를 만들어 인정받는 게(돈을 버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 한숨이 나기도 한다. 

  여전히 남은 인생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회사 다닐 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보낸다.


  하지만, 한 번 뿐인 인생, 내 의지로 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 순간은 정말 좋다. 아직은 조금더 힘을 내 버텨야 할 시기이다. 나의 선택에 집중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 애쓰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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