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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Nov 02. 2022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알게 된 것들!



올해 8월 초 '브런치 작가' 승인 메일을 받았다. 이전에도 '브런치'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잘은 몰랐다. 평소 노트에 끄적이는 걸 좋아해 몇 년 전 작가 신청을 했지만, 거절 메일을 받고 까맣게 존재를 잊고 있었다.


지난 7월 약속시간까지 이삼십 분이 남아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다. 간혹 오가는 길이면 한 번씩 들러 신간을 보거나 읽고 싶은 책을 사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낯선 광경을 보았다. 브런치 작가들의 책 공간이 그것이었다. 올해가 열 번째라 하는데, 지난 십 년 동안 왜 한 번도 기억에 꽂히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굳어진 삶의 테두리 속에서 다른 세계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서였던가, 아니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늘 운명이 비껴가듯 엇갈리게 스쳐갔기 때문이었나.



브런치 활동에 익숙해진 지 석 달 남짓.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뒤,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을 정리해 보았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알게 된 것들!



먼저, 작가 신청의 거절과 축하 메일의 차이. 브런치 작가를 신청할 때는, 남과 다른 내 인생의 스토리를 정확히 표현해야 했고, 쓰고 싶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했다.

이전 두 번의 거절 메일을 받았다. 첫 번째 지원은 2020년. 회사 다니며 취미 삼아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만 어필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걸 쓰고 싶은 지는 숨겼다.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제대로 쓴 글 하나 없이 '앞으로 쓰고 싶다'는 욕심만으로 신청서를 냈다. 결과는 당연했다, 거절이.

올해 두 번째 작가 신청 역시 첫 번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랜 근무한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것과 블로그에 끄적인 일기 같은 글들을 연결해 신청했는데, 역시 거절. 이때도 나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블로그에 연결된 글들은 브런치와 결이 맞지 않았다.

글을 써서 누군가와 함께 읽고 싶다는 욕심이 바람으로 바뀌며, 그 공간이 간절해졌다. 세 번째 신청은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작성했다. 나의 굵직한 삶의 스토리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정확히 기입했다. 경험한 삶을 선명히 표현했다. 또한, 글의 주제를 정한 뒤 이 글이 도움이 될 사람들(독자층)을 정했다. 이렇게 하여, 주제는 20여 년 간 B2B 전략마케팅팀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B2B 마케팅과 기업 전략에 대한 내용으로 정했다. 누구를 타깃으로 할 것인가? 취업을 염두에 둔 대학생들에게 내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브런치 작가 승인을 검토할 때, 궁금한 사람, 알고 싶은 내용, 도움이 될 것 같은 글에 초점을 두고 작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드디어 축하 메일! 그제야 깨달았다. 나와 내 글을 구체적으로 차별화해 어필해야 한다는 것을. '브런치 작가가 되면 그때 생각해서 써야지'라는 이전 생각들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두 번째로 글과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글 쓰기를 좋아해 자주 썼지만, 내가 아닌 타인을 생각하며 쓴 적은 없었던 듯하다. 혼자 일기장에 생각과 고민을 털어냈고,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한두 장 기록을 남겼고, 노트북에 다양한 주제로 쓴 글이 많았다. 하지만, 나를 위한 글이었고 막연한 누군가를 상상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 글들은 상품으로써의 가치, 즉, 누군가 시간을 내 읽기에는 부족한 글들이었다. 이제 와 다시 읽어보니 제대로 완성된 글이 한 편도 없었다.

이전에 쓴 글을 수정하고 편집해 브런치에 글 하나 발행하는데 대략 4~5시간이 걸렸다. 이전 써놓은 내용을 활용했음에도 말이다. 어렵고 힘들었다.

자연스레 글과 관련한 생활을 돌아보았다. 공대 대학 시절과 직장인으로 일하던 시간까지 제대로 완성된 문장들의 글을 써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가장 빈번히 쓴 글은 업무용 이메일이었는데, 회사 업무의 대부분인 메일은 장문보다는 단문 위주였다. 장문보다 단문이 커뮤니케이션에 유리했고 무미건조한 표현이어야 했다. 하나의 주제로 구성을 갖춰 생각을 전개한 긴 글이 생활에 필요하지 않았다.

노트북에 저장된 그동안 끄적인 글들은 명확한 독자나 목적이 없다 보니 그냥 글자들의 조합에 불과했다. 왜 이 글을 썼는지, 누가 읽기를 원한 건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지금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무언가 숨기고 쓴 듯한, 솔직하지 못한 글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렇게 알게 된 내 글은 촉촉한 감성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했고 무미건조한 사실 전달에 초점을 두고 있었고, 문장 표현이 정갈하지 못했다. 글 쓰기를 좋아했지만 아직 원하는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번째로 놀라기도 하고 알게 된 건, 글에 진심이고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TV나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들어오며 글은 계속해 뒤로 밀려났다. 어릴 때도 어른이 된 지금도, 책이 생활에서 계속해 멀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SNS들은 소통에 짧은 글이나 사진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글보다는 짧은 단문이나 이미지로 나를 표현하고 있고, 책보다는 동영상으로 정보 취하는 일상이 더 익숙한 것으로 되고 있다. 또한, 최근 2~3년 기억을 더듬어, 지인들과 모임에서 책이나 글이 대화 소재가 된 적은 없었다. 특히나 글에 대한 대화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과만 가능한 내용이었다. 점점 글 쓰기와 책이 세상의 한 켠으로 밀려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요즘이다.

예전 글 쓸 때면 내용이 이상하고 구성이 엉성해도, '작가도 아닌 직장인인데 뭘' 하며 애써 핑계를 삼았다. 전업 작가가 아닌 이상 글을 써놓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생각했다. 지금은 퇴직 후 시간적 심적 여유가 생겨 그나마 글을 쓸 수 있는데, 일하며 글 쓰고 있는 분들을 보니 나를 질책하게 된다. 글 쓰기가 꼭 필요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임에도 경험과 생각을 멋있게 펼쳐낸 글들을 보면 한없이 작아졌다. 그동안 핑계로 회피했던 현실과 마주하며 조금은 아팠다.

브런치 글을 통해 느껴지는 작가들은 모두 글에 진심이었고, 그것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글 속에 진심을 담아 남에게 얘기하지 못하는 아픔을 적어낸 글 속에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접하지 못한 직업군이나 생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접할 때면 세상은 넓고 참 다양하구나를 새삼 느끼게 된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본 것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 내용이 남아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면 내용과 표현에 감탄을 하게 된다. 출간 작가나 전업 작가들의 글을 실시간으로 읽으면 내용에 빠져든다. 브런치 글을 통해 작가도 만나고, 선생님도 만나고, 직장인도 만나고, 형사도 만나고, 변호사도 만나고, 디자이너도 만나고...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시간은 즐겁고 유익하다. 



네 번째로 알게 된 건 요즘 서점의 신간 트렌드이다. 브런치 북 출간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서점에 여러 차례 들러 신간들과 전시된 책들을 둘러보며 요즘 책의 트렌드를 알게 되었다. 가장 최근 9월에 들렀을 때 느꼈던 건, 경영 서적 부분에 마케팅 관련 서적이 없어졌다는 것. 이전에는 경영ㆍ마케팅 분야의 책들이 넓직히 전시되었는데, 이번에는 전시대에서 마케팅 관련 책은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왜일까? (전적으로 내 의견으로) 지금이 불황기라는 걸 대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마케팅은 분야가 넓지만 그중 판매 촉진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일부에서는 둘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시장 호황기에는 마케팅의 판매 촉진 활동이 기업 성과에 직접 기여하지만, 불황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심이 낮아진 것이다.

그러면 지금은 무엇이 인기가 있는가, 다시 전시된 책들을 둘러보았다. 단연, 에세이였다. 가장 많은 전시 공간을 차지한 것도 에세이, 신간이 가장 많은 곳도 에세이 쪽이었다. 소설이나 인문학 책도 전시가 되기는 했지만, 공간의 크기에서 비중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신간이 많지 않았다. 에세이에 비하면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유명한 소설가도 에세이 신간을 내 에세이 전시대에서 볼 수 있었고, 십여 년 전 출간된 인문학 책도 에세이 공간에서 볼 수 있었다. 에세이가 대세였다. 그러면 왜 에세이인가? (전적으로 내 의견으로) 많은 사람들이 삶에 지쳐있고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에세이 글의 키워드는 공감과 감동이다. 내가 생각한 것을 글을 통해 만나 공감하는 시간,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글을 읽다 보면 가슴 뭉클하게 감동하는 순간. 지금 이 시대에 숨 쉬는 현대인들에게는 학자들이 수년 연구한 이론과 지식보다, 작가의 상상을 통해 재창조한 스토리보다, 인생과 삶에 대해 복잡하게 설명하는 인문학보다, 일상에 더 가깝고 이해하기 쉬운 에세이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복잡하고 피곤한 삶의 시간 속을 걷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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