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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Nov 09. 2022

해외 출장 III : 나만의 에피소드


이번에는 지난 20년 동안 해외 출장 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한다. 담당 제품의 고객들이 대부분 해외에 있어 매년 한두 번의 출장 기회가 있었다. 이전 글 '해외 출장 I: 화려함 속의 고단함', '해외 출장 II: 사진으로 남은 기억'에서 이미 이야기한 적도 있다.


11화 해외 출장 I : 화려함 속의 고단함 (brunch.co.kr)

12화 해외 출장 II : 사진으로 남은 기억 (brunch.co.kr)


출장을 다닐 때면, 큰 사건부터 작은 사건까지 끊임없는 이슈가 생기고, 충분히 예상했던 문제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해 항시 긴장을 놓을 수 없다. 

하루는 '아, 이 맛에 해외 출장을 다니지' 했다가도, 다음 날은 '아, 이제 그만 다닐 때가 됐나 보다'라며 씁쓸했던 때도 많았다. 




지난 경험들 속 찬찬히 떠올려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나만의 에피소드들이다. 


먼저 가장 서러웠던 출장이 떠오른다. 입사 9년 차쯤 책임 초반, 미국 뉴욕 전시회에 영업 담당자와 나, 이렇게 둘이서 출장을 갔다. 옆 회사는 수십 명의 직원들이 전시회에 참석해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반해, 전시 부스도 없던 우리는 너무나 초라했다. 

당시 부서장은 전시회 출장 결재를 승인하며, '무엇이든 비즈니스를 만들어오면 된다'라고 간단하지만 어려운 미션을 주었다. 

함께 간 영업 담당자도 평소 친분이 있던 사람이 아닌지라, 더 막막했다. 사실 지금은 누구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전시장에서 지나가다 만나면 잠깐 얘기하는 정도였고 오롯이 혼자 돌아다니고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다. 도착 첫날부터 심적 부담에 압박감을 잔뜩 느꼈다.

식사도 늘 혼자 해야 했다. 아침은 호텔에서 먹었지만, 점심, 저녁은 샌드위치를 사서 전시장 야외 한편의 시멘트에 엉덩이를 붙이고 먹었다. 홀로 보내는 시간 속에 잔뜩 움츠러들었다. 

반대로, 바쁘게 움직이며 활력 넘치는 옆 회사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적극적으로 여기저기 찾아가 얼굴을 드 밀어도 비즈니스가 만들어질까 말까 한데, 낯선 회사 부스에 방문해 명함을 건네는 것도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다.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첫날, 호텔방 원탁 테이블에 앉아 출장보고서를 작성하려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짧은 시간 뒤 울음소리까지 내며 한참을 펑펑 울었다. 여기 왜 온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서장의 미션을 달성할 자신도 없었고, 출장 복귀 후 성과는 무엇이라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의지할 곳도 의지할 사람도 없던 상황이 너무 서러워 울음을 멈출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면 이런 적이 꽤 있다. 일 마치고 호텔방에 있으면 쓸쓸하고 적적한 기분이 몰아치는 날. 딱히 할 일도 없고, TV는 모르는 프로그램이라 그냥 소리일 뿐이고, 낯선 도시 밤길 산책은 무서웠고. 멍하니 호텔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한참 기분을 가라앉게 했다. 


최근은 OTT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있어 호텔에서 재미있는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저때는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이었다. 

최근에는 출장 갈 때면 소설책이나 탭을 가지고 다녔다. 호텔방에서 적적할 때나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를 위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 업무 외 시간에 외로움은 많이 줄었다. 



내가 다닌 출장의 대부분은 고객 미팅이 목적이라, 고객사 사이트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거의 매일 이동해 평일은 업무 외 별다른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공항-고객사-호텔을 비행기와 차로 끊임없이 이동해 다녀야 했다. 

그렇지만, 주말은 자유다. 주변 관광지도 둘러보고, 현지 맛집도 방문하고, 쇼핑도 하고. 그렇게 원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2주 출장은 한 번의 주말, 3주는 2번의 주말을 보낼 수 있어, 그리 많은 기회는 않지만. 주말 이동이 있는 때는 하루를 또 날려버리기도 한다. 

출장 경험이 쌓이며, 최근에는 금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새벽 이동으로 동선을 짰다. 주말은 쉬거나 가벼운 관광 겸 산책으로 시간을 보냈다. 주말 자유 시간을 보낼 때면, 회사 돈으로 해외여행 왔다 생각했다. 대신 평일에는 오롯이 출장 업무 성과에 집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주말은 두 번 있다. 책임 초기, 부서 부장님과 함께 간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주말과 설 연휴에 혼자 간 스톡홀름에서의 주말이다.


평소 깐깐하고 차가운 부장님인데, 주말 숙소를 오스트리아 빈에 잡으셨다. 토요일 오전 느지막이 출장자 서너 명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부장님이 '출장 와도 주말은 좀 쉬어야지. 주변 관광이나 하자.' 하셨다. 그제야 긴장이 풀려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도시가 정말 예뻤다. 몇 백 년 전 건물이 그대로 남아 고풍스럽고 우아했다. 아이보리색 베토벤 하우스도 방문하고, 크지 않은 도시를 한참 거닐었다. 마치 여행 온 것처럼 기분이 가뿐하고 즐거워졌다. 여유 있게 유럽 도시를 산책하니 중세도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기분이었다.


5~6년 전 설 연휴를 낀 출장 중, 월요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고객 미팅이 잡혔다. 금요일 오후 다른 고객사 미팅을 끝내고 저녁 공항으로 이동해 밤늦게 스톡홀름으로 넘어갔다. 주말은 처음 방문하는 스톡홀름에서 보내기 위해서. 

토요일 오전, 시내로 가기 위해 무작정 호텔을 나서 어렵게 어렵게 버스를 탔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으로 도로변을 뛰듯 달리며 버스 정류장을 찾아갔는지 싶다. 요 근래는 구글맵을 이용해 해외에서도 무척 편리하게 다니지만, 이때는 구글맵의 존재를 알기 전이었다. 

스톡홀름 시내에 도착해 건물을 둘러보는데 가슴이 쿵쿵 뛰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서유럽의 건물과 달리, 북유럽은 웅장하고 장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동안 북유럽 도시인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모두 평일 출장지로 다녀 문화를 직접적으로 느낄 겨를이 없었다. 노벨 박물관과 아바 박물관에도 들러보고, 맛집을 찾아가 식사도 하고, 작은 상점들이 모여있는 길을 걸었다. 늦은 저녁까지 여행 같은 주말을 보냈다. 

지금까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북유럽 도시를 걸어 둘러본 때이다. 이제는 퇴사해 출장 기회는 더 없을 것이다. 개인 유럽 여행은 늘 파리나 로마가 우선순위인지라, 서유럽에서 북유럽까지는 꽤 먼 거리라 쉽게 갈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꽤 오랫동안 이 출장에서 스톡홀름 방문했던 게 북유럽 도시를 본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이 외 자잘한 에피소드들도 있다. 

입사 5년 차에 미국 출장을 갔는데, 고객사 미팅만 생각해 구두를 신고 비행기 탔다. 내릴 때 발이 퉁퉁 부어 구두를 신으니 발이 너무 아팠다. 내리자마자 마트로 이동해 운동화를 샀던 적도 있다. 이후는 공항 패션은 무조건 편한 걸 추구하게 되었다.

또, 애플 로드쇼 때 로비 직원에게 '화이트 페이퍼'를 부탁했는데, 한참 못 알아듣더니 '아, 와잇트 페이퍼'하며 A4 용지를 건네주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콩글리쉬 발음이지만 주니어 시절은 더 심했나 보다.

3년 전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스타벅스 신제품을 처음 마셔본 일. 현채인이 미국에서도 신제품이 가장 먼저 출시되었다며 자랑스레 사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입에 맞지 않았다. 마음 없는 리액션이 안 되는 성격이라 그냥 '하하하' 웃기만 했다. 감탄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는다.

그리고, 현지 마트 쇼핑을 너무 많이 해, 그 가방을 들고 출장지 이동하느라 진땀 뺐던 일도 있다. 물건 사는 걸 좋아해 쇼핑몰에 들르면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데로 샀는데, 가방의 무게와 이동을 생각지 못했다. 이제는 한국을 떠날 때는 가방의 70~80% 정도만 채운다. 혹시나 모를 쇼핑을 대비해서.

한 번은 공항에 도착해 캐리어를 기다리는데 다른 도시로 가버린 적도 있다. 노트북과 여권만 들고, 정말 아무 짐 없이 호텔에서 하룻밤 보냈던 일도 있다. 물론 항공사 실수이기 때문에 다음 날 다시 공항에 들러 찾기는 했다. 




이렇게 돌아보니 심적으로 힘들었던 출장도 많았다. 늘 따라오는 기대치와 성과는 부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 돈으로는 다 경험하지 못할 곳들도 많이 방문해 보았고 여행과는 또 다른 기억을 남겨주었다.

한동안 해외 출장 기회는 없을 거다, 앞으로 한참은 여행으로만 해외를 가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지난 이런 기억들, 경험들은 더 소중하고 감사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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